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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上海港과 세기의 대결을 벌이는 釜山港의 Mega 허브 포트 戰略 현장

정순태   |   2003-08-07 | hit 6886

동틀 무렵, 부산 앞바다의 장엄한 모습이 뮤직 비디오 형식으로 펼쳐진다. 뒤이어 최신예 겐트리 크레인으로 하역작업 중인 컨테이너 부두의 역동적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영상 시나리오」는 이내 다음 臺詞(대사)와 어우러진다.

『바다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해양질서와 물류혁신을 요구하는 新해양시대. 여기 동방의 끝, 대한민국 부산항이 그 중심이 됩니다. 동북아의 중심항, 해양강국의 전초기지가 될 대한민국 부산 新항만. 바로 메가 허브 포트(Mega Hub-Port·대형 中心港) 부산 新항만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가 열립니다』

위의 「영상 시나리오」는 부산신항 건설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15분짜리 필름의 序幕(서막) 부분인데, 필자에게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부산新港의 건설 현장을 답사하기 전에 기존 부산항의 현황을 간단하게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부산항은 현재 6개의 컨테이너 터미널(부두)에 총 21개의 船席(선석: 배를 부두에 대는 자리)을 갖추어 작년 한 해에 945만TEU의 컨테이너 화물을 처리했다. 부산항은 2000년 이후 홍콩·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제3위의 항만으로 떠올랐다(표1 참조).

〈여기서 잠깐! TEU란 영문자만 나오면 골치 아파하는 분도 있으니까, 이것 한 가지만 설명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TEU란 길이 20피트(6.06m)짜리 컨테이너를 표시하는 단위다. 길이 40피트짜리 컨테이너는 FEU로 표기되는데, 1FEU는 2 TEU로 환산된다. 이 글에선 가능한 한 TEU를 그냥 「개」로 표기할 것이다〉

그렇다면 부산항이 세계 제3위의 컨테이너 화물 처리 항만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 일본, 「세계의 공장」 중국, 세계 제10위권의 무역국인 한국이 위치한 東아시아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全세계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부산항이 바로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부산항은 天惠(천혜)의 자연적·입지적 조건을 두루 갖춘 세계적 良港(양항)으로서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그렇다면 이런 세계적 항만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왜 부산新港의 건설을 서둘러야 하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부산, 일본의 고베·도쿄·요코하마, 중국의 홍콩·上海(상하이), 대만의 카오슝, 항만 국가인 싱가포르 등은 東아시아의 허브 포트, 즉 중심항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앞으로 適期(적기)에 하드웨어를 구축하지 못한 항만은 경쟁에서 밀려 난다.

東아시아 5개국이 모두 컨테이너 물동량을 先占(선점)하기 위해 2011년까지 항만시설을 2배 이상 확충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표 2 참조).

따라서 앞으로 5∼10년이야말로 부산항의 成敗(성패)를 가늠할 결정적 시기이다. 부산이 東아시아 중심항의 위상을 먼저 차지하지 못할 경우 周邊港(주변항) 또는 支線港(지선항)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 上海港의 급부상(전년 대비 2002년의 컨테이너 화물 처리 증가율 34%)과 대규모 개발계획(2011년 74개 船席 목표)은 위협적이다. 내년쯤이면 물동량에서 부산항을 추월할 전망이다. 금년 들어 벌써 이런 조짐이 가시화되고 있다. 상하이항은 1월과 4월의 컨테이너 화물 처리실적에서 부산항을 앞질렀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시 쓰는 일

부산 新항만의 건설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로 쓰는 일」이라고 표현될 정도의 大役事(대역사)이다. 지난 6월24일 오전 9시30분, 필자는 부산 신항만의 건설 현장 답사에 同行하기로 약속한 부산시 홍보정책보좌관 姜南薰(강남훈)씨를 그의 사무실(부산시 청사 18층)에서 만났다. 姜보좌관은 부산 국제신문의 해운·항만 출입기자와 정치부장을 거친 언론계 출신이다.

둘은 부산신항 건설현장에 접근하기 위해 우선 부산시청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오전 10시20분 지하철 하단역(동아대학역)에서 내려 출구로 나오니 부산 신항만의 民資(민자) 부두 축조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삼성건설 현장소장 양상용씨가 보낸 지프가 필자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낙동강 본류의 하구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하구둑길」로 접어드니 그 아래로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乙淑島(을숙도)의 갈대밭이 펼쳐진다. 이 갈대숲은 부산권 청춘남녀의 데이트 코스다.

을숙도를 지나면 낙동강 하구의 삼각주로서 1989년 부산市에 편입된 명지평야와 西낙동강 하구다. 여기에 걸린 다리를 건너면 남해안을 따라 신호공업단지와 녹산공업단지가 펼쳐져 있다. 녹산공업단지의 바로 서쪽 해안(진해市 안골동)과 건너편 부산市 관할 加德島(가덕도) 사이의 해역에 부산 신항만이 들어서고 있다.

오전 11시, 부산 신항만 건설현장의 홍보관에 도착했다. 안전환경팀장인 양권열 삼성건설 차장이 필자 일행에게 부산新港 건설 현황을 브리핑했다. 부산 신항만 사업은 컨테이너 부두 30개 船席(선석)을 단계적으로 건설하는 것이다. 사업비는 민자 3조7000억원, 정부재정 3조8000억원으로 모두 7조5000억원이며, 사업기간은 1995년부터 2011년까지다.

民資로 개발되는 1단계 北컨테이너 부두 13개 선석은 2008년에 완공되고, 정부 재정으로 개발되는 2단계 南컨테이너 부두 17개 선석은 2011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10km에 이르는 부두, 200만 평의 컨테이너 야드와 115만 평의 배후부지가 조성되는 부산 신항만이 완공되면 연간 800만 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民資(민자)로 건설되는 北컨테이너 부두의 사업주체는 부산신항만주식회사다. 부산신항만주식회사는 三星(지분율 27.5%), 現代(지분율 13.75%), 韓進(지분율 12.5%)을 비롯한 국내 24개 업체들의 공동출자로 1997년 6월에 설립된 회사다.

그러나 자본참여 회사 중 동아건설산업(주)과 현대산업개발(주)이 2001년 3월 자본참여를 포기함으로써 초기 자본금 조성에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참여회사 가운데 도산한 기업의 지분 등은 미국의 항만운영 회사인 CSX월드터미널社가 부산新港 컨테이너 터미널의 운영을 맡는다는 조건으로 인수했다.

정부가 컨테이너 부두를 먼저 개발한 다음에 나머지 개발부분을 민간업체에 맡겨야만 신항만 건설이 순조로울 터인데 투자의 순서가 바뀜으로써 부산 신항만 1단계 사업은 투자자금 조성 면에서 여전히 불안요인을 안고 있다. .

1988년부터 운영에 들어간 光陽港(광양항)의 경우 1단계 사업 4개 선석을 모두 전액 정부예산으로 건설했으며, 2008년까지 완공되는 15개 선석도 정부예산으로 건설된다.


투자재원의 원활한 조성이 관건

양권열 팀장은 民資로 건설되는 부산 新港 北컨테이너 부두의 규모와 공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北컨테이너 터미널에는 2005년 말까지 3개 선석, 2006년 말까지 3개 선석, 2008년 말까지 7개 선석을 순차적으로 건설하여 완공 후엔 대형 컨테이너선 13척이 동시에 接岸(접안)할 수 있게 됩니다. 民資 부두의 완공을 1년 정도 앞당길 계획입니다. 工期(공기)를 앞당겨야 건설비가 크게 절감되거든요. 문제는 경기후퇴로 참여 회사들의 재정상태가 나빠져 어떻게 원활하게 투자재원을 조성하느냐는 것입니다』

이어 필자 일행은 약 20분짜리 「부산 신항만 홍보 영상 시나리오」를 시청했다. 「영상 시나리오」는 한계점에 달한 부산항의 현황과 21세기 허브 포트를 지향하는 부산 신항만의 건설 방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었다.

『21세기 항만은 단순한 하역 장소가 아닙니다. 종합 물류기지이자, 국제교류의 場(장)이 되어야 합니다. 최적의 지리적 환경 위에 부산항은 세계 수준급의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국내 컨테이너 물동량의 80% 이상을 처리하며 물류 경제의 요충지 역할을 다해 왔습니다. 그러나 항만시설의 부족, 교통 혼잡, 협소한 배후부지, 대형 선박의 수용시설 미비 등은 허브 포트로 더 큰 도약을 꿈꾸는 부산의 성장 잠재력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화면에는 부산항의 교통 혼잡, 부족한 시설 등이 클로즈업된다. 「시나리오」는 이어 새로 건설되는 부산 신항만의 운영시스템 등에 대한 설명에 이어 세계 물류경제의 새로운 중심 부산 신항만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대한민국에서 세계의 모든 바닷길이 열리는 新해양시대, 그 희망의 시대가 바로 부산 신항만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아시아의 메가 허브 포트, 부산 신항만. 물류경제 해양강국의 꿈을 부산 신항만이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홍보 영상 시나리오」의 에필로그였다. 일찍이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필자는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부산 신항만 건설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欲望山(욕망산) 전망대에 올랐다. 욕망산이라는 이름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세계를 향한 지구촌의 關門(관문) 부산 신항만의 꿈이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고 있는 까닭이다.

욕망산은 7부 능선쯤에 트럭이 지나다닐 만한 도로가 나고 곳곳이 채석장으로 변해 있었다.

바로 눈앞으로 다가오는 가덕도(부산市)와 안골동(진해市) 사이의 얕은 바다에 부산 신항만이 건설되고 있다. 부산신항만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 1997년 12월에 착공한 방파제는 정부재정으로 이미 작년 말에 완공되었다.

얕은 바다 가운데로 뚫린 임시 통로를 따라 신항만 건설현장으로 진입한 대형 준설선에서 채취된 진흙을 10리 밖의 매립지로 긴 파이프를 통해 포탄처럼 쏘아 보내고 있었다. 현재의 수심 5m 정도를 16m로 준설하는 작업이었다.

대형 바지선 몇 척도 「쿵쾅」거리며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바지선 위에는 35m 높이의 쇠파이프가 세워져 있었다. 이 쇠파이프를 통해 뻘층 아래에다 모래기둥을 박아 넣고 있었다. 부두 호안시설의 밑바닥을 다지기 위한 기초공사다. 부산신항만(주)이 추진하는 民資 부두 공사는 6월 말 현재 10% 정도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李舜臣의 전승지에 건설되는 부산신항

욕망산에서 부산신항 건설현장을 조감한 필자 일행은 인근 횟집에서 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후 답사에서는 부산신항 건설현장에 다가가 관찰하기로 했다. 건설현장으로 향하던 길에 양권열 팀장이 임진왜란 때의 전적지 安骨浦(안골포)에다 지프를 잠시 정차시켰다.

안골포엔 임진왜란 당시의 造船所(조선소) 터가 남아 있다. 당시 목조선의 건조 또는 수리 때 연기로 船體(선체)를 말리는 것은 필수과정이었다. 그때 연기에 그을린 차돌들이 시커멓게 변색된 채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다.

400여 년 전, 李舜臣(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무찌른 전승지 안골포 狹水路(협수로)에 최신예 新港(신항)이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임진왜란 때 조선군 최대의 승전은 1592년 7월8∼10일에 전개된 한산도-안골포 대첩이었다.

한산도 앞바다 해전에서 왜선 60척이 격파되었다. 일본 水軍 사령관 와카사카 야스지(脇坂安治)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김해 방면으로 도주했다. 이순신 장군은 추격전을 벌여 안골포에서 적선 42척을 무찔렀다. 왜선은 모두 깨지거나 불타고, 살아남은 왜적들은 육지로 올라 도망쳤다.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와 구키 요시다카(九鬼嘉隆)가 지휘한 안골포의 敵船은 와카사카를 지원하기 위해 나섰다가 한산도 해전의 패전 소식을 듣고 안골포로 숨어든 끝에 전멸했던 것이다.

한산도-안골포 해전의 승리로 왜군의 수륙병진 전략은 파탄을 빚었다. 평양까지 진출한 일본 육군은 병참선을 유지할 수 없어 敗勢(패세)로 몰리게 된다.

다시 지프에 올라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신항만 건설현장을 돌았다. 욕망산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아기자기한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망망한 황야를 방황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곳곳에 항만 호안 축조용 테트라포트(삼각뿔 모양의 블록)와 부두 축조용 케이슨(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대형 구조물)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부산 신항만의 물동량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한 진입도로 및 배후도로 공사도 진행 중이었다. 新항만-가덕 인터체인지(IC) 간 3.8km 구간의 진입도로 개설공사는 2005년 9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이 진입도로는 가덕도-거제 간 巨加대교와도 연결된다. 배후도로인 가덕IC-김해시 초정IC 간 23km 구간은 2006년까지 개설된다.

또한 신항만 부두-삼량진 간 38.8km 구간의 철도가 신항만 개장 시기에 맞춰 새로 부설된다. 부산 신항만 조성공사가 모두 끝나는 2011년에는 부산항 전체의 컨테이너 화물 처리량은 1600만 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진해市 안골동 75번지에 소재한 삼성건설 부산 신항만 현장 사무실에 들러 양상용 소장을 다시 만나 「大役事(대역사) 현장 답사」의 기회를 베풀어 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양권열 차장이 지프를 손수 운전하여 필자 일행을 지하철 하단역까지 바래다 주겠다고 나섰다.

지프에 올라 부산·진해의 경계구역까지 나오니 삼국유사의 駕洛國記(가락국기)에 기록되어 있는 望山島(망산도)가 보였다. 망산도는 주변 바다의 매립으로 이제는 육지에 바짝 붙어 있다. 그런 망산도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金首露王(김수로왕)은 야유타국의 공주 許黃玉(허왕옥)이 배를 타고 그에게 시집을 오던 날, 아홉 촌장 중 하나인 유천간에게 명하여 輕舟(경주: 가볍고 빠른 배)를 가지고 망산도에 가서 기다리게 했다. 거북이 엎드린 형상의 큰 바위 주위에 수림이 울창한 망산도는 규모는 작으나 매우 신비스러웠다.

망산도는 부산市와 진해市의 경계지점인 공유수면에 위치해 있어 관할권이 불명확한 상태다. 두 市가 그 관할권을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붐비는 부산 北港

오후 4시25분 지하철 남포동역에서 내려 자갈치시장 쪽 출구로 나왔다. 부산시항만관리사업소의 관리담당 林德漢씨가 약속대로 필자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뱃머리로 가기 위해 자갈치의 건어물시장 앞길로 들어섰다.

건어물의 찝질한 냄새가 물씬거린다. 바다 쪽으로 건어물시장을 뚫고 나가면 곧 자갈치 부두. 필자가 승선하기로 된 부산시 항만관리소 소속 「부산 501호」는 영도다리 밑 남항 쪽 뱃머리에 접안하고 있었다.

오후 4시30분, 「부산 501호」에 오르자 선장은 곧 발동을 걸었다. 안내선은 물살을 가르며 영도다리 밑을 지난다. 영도다리를 경계로 부산 북항과 남항이 갈라진다. 해양수산부 관할의 북항에는 외항무역선, 부산시 관할인 남항엔 원양·근해 어선들이 정박한다. 그러나 지난 5월 부산항만공사법안이 제정·공포됨으로써 2004년 1월1일부터 북항을 비롯한 부산항 전체의 관할권이 사실상 부산시의 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안내선은 보세창고가 즐비한 영도해안 쪽으로 붙었다.

영도땅은 蓬萊山(봉래산)과 그 자락이 전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시민은 봉래산을 「고갈산」이라고 불렀다. 나무 없는 벌거숭이 산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숲이 무성하다. 아쉬운 것은 고층 아파트가 너무 많이 들어서 봉래산의 거의 7부 능선까지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었다.

오늘날 부산항이 세계 제3위의 항만으로 도약한 데는 영도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바깥 바다의 거센 물결과 바람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안내선은 부산항의 港內와 港外의 경계선인 오륙도에 거의 접근해서 좌회전했다. 神仙臺(신선대) 컨테이너 터미널이 마주 보인다. 이름에 값할 만큼 아름다운 부두다. 신선대 컨테이너 부두에 이어 감만동 컨테이너 부두가 펼쳐져 있다.

신선대 부두와 감만동 부두는 14∼15m의 수심을 유지, 두 부두 모두 5만t급 컨테이너선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다. 겐트리 크레인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클로즈업된다. 5만t급 컨테이너선 두 척이 선석을 잡지 못해 부두 바깥에 대기 중이었다.

안내선은 이어 우암 컨테이너 부두와 자성대 부두에 차례로 접근했다. 과연 듣던 대로 부산 북항은 자기 능력보다 두 배의 일을 하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항구였다. 그야말로 하루 24시간 풀가동되는 항만이다. 안내선은 북항을 한 바퀴 돌고 1시간20분 만에 자갈치 뱃머리로 되돌아왔다.


국가경영의 리더십 不在로 맞은 위기

부산항은 현재 우리나라 전체 컨테이너 물동량의 83%를 처리하는 곳이다. 부산北港을 둘러본 필자는 그동안 부산항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왜 이렇게 인색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부산 北港이 자기 능력보다 두 배의 일을 하고 있다면 부산新港은 진작 건설되었어야 했다. 시기적으로 뒤늦게 시작된 국가적 사업인 부산新港의 건설에도 民資가 먼저 투입되고 있다.

한반도의 서해안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양자강 하구 이북 해안에도 지형적·입지적으로 현대적 항만이 들어설 수 없는 곳이다. 北중국의 컨테이너 화물이 피더船(子船·feeder ship)에 실려 부산 北港까지 와서 환적되고 있는 것도 北중국의 大連港(대련항)·天津港(천진항)·威海港(위해항) 등에서는 컨테이너 母船(모선)이 기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부산항의 환적화물 처리량은 전체 물동량의 40%에 달하는데, 그 절반 이상이 중국 화물이다.

그러나 부산항의 골격은 일제시대에 개발된 이후 거의 그대로이다. 1970년대 이후 전개된 세계적인 컨테이너 수송혁명에 따라 부산 북항內에 컨테이너 터미널을 몇 개 증설하는 데 그쳤다. 더욱이 1980년대 이후엔 「국토의 균형개발」이라는 정치적 논리가 득세하여 부산항에 대한 투자는 극히 저조했다.

여기서 부산항의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부산항은 1876년 강화도조약의 체결과 더불어 부산포란 이름으로 개항했다. 1906년부터 1944년까지 북항의 제1, 제2, 중앙, 제3, 제4 부두가 개발되었다. 이렇게 외항선 전용港인 부산 北港의 골격은 일제시대에 건설되었던 것이다. 1945년 8·15 광복 이후에는 정세의 혼란과 6·25 전쟁과 그 후유증을 겪는 가운데 항구로서의 개발사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에 따른 해상 물동량의 급증세로 부산 北港의 확충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더욱이 1966년 미국 제1의 船社 「시랜드」에 의해 해상화물의 컨테이너化가 추진되고, 이것이 글로벌 스케일로 확대되자 부산항도 컨테이너 전용부두를 개발하는 등 수송혁명의 물결을 타게 되었다.

정부는 세계개발은행(IBRD)의 차관을 얻어 부산 북항에다 제5, 제7, 제8 부두의 증설, 港內의 수심 유지를 위한 준설작업, 하역장비의 개선을 통해 항만의 현대화를 추진했다. 이후 부산 북항의 자성대 부두, 우암동 부두, 감만동 부두, 신선대 부두 등 컨테이너 전용 부두가 건설되었던 것이다. 부산항은 컨테이너 화물 처리량에서 1985년 세계 제12위에 오른 이후 한 단계씩 발돋움해 왔다.

그러나 땜질식으로 버텨 온 부산 北港은 이미 개발의 한계점에 도달했다. 배후부지가 협소한 데다 5만t급 이상의 대형 컨테이너선이 부두에 접안하는 데 필요한 수심 15m 이상의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저가 암반으로 되어 있는 부산 北港에 대형 컨테이너선이 입항하기 위해선 해저를 폭파시켜야 할 상황이다.

하루 60척 이상의 외항선이 입항하는 부산항은 돈을 잘 버는 항만이다. 관세수입이 4조원에 육박하고, 항만 관련 산업체의 매출액이 27조원에 달하며, 부산지역경제 부가가치 생산액의 40%를 점한다. 5000TEU급 컨테이너선 한 척이 들어와 지역경제에 떨어뜨리는 돈은 약 10억원이다.

부산新港의 건설은 진작부터 서둘렀어야 할 국가적 사업이었다. 2002년의 경우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율은 전년대비 17.1% 수준이다. 2003년 부산항은 당초 예상을 3년 앞질러 1000만 TEU의 컨테이너 화물을 처리해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국가경영의 리더십 不在로 이런 증가세에 대비한 항만투자가 저조했던 것이다.


부산항에 몰리는 北중국과 일본의 환적화물

6월25일 오전 10시30분, 金正洙 부산시 항만정책과장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현재 건설 중인 부산신항을 차질 없이 완공하기 위해서는 民資로 계획된 컨테이너 부두를 정부재정사업으로 전환시켜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합니다. 급증하고 있는 환적화물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북쪽 부두와 남쪽 부두의 동시개발이 필요합니다』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급증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중국이 「세계의 공장」 아닙니까. 물동량은 늘어나는데, 상하이(上海) 이북의 항만은 수심이 얕아 현대적 항만을 개발할 수 없어요. 부산과 상하이는 北중국의 환적화물을 놓고 세기적 대결을 벌이고 있습니다. 부산항에서 처리하는 환적화물 가운데 중국 화물이 6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환적화물도 급증하고 있죠.

『일본 혼슈 서부와 규슈의 중소 항만들도 요즘 부산항에서 출발하는 피더船의 기항항이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카다, 시모노세키, 니가타 등 일본 중소 항만 관계자들은 최근 우리 사무실까지 찾아와 서로 「환적화물을 우리 항구에 내리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로비를 벌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중소 항만 관계자들이 왜 경쟁적으로 그런 로비를 벌입니까.

『(컨테이너 본선이 입항하는) 일본 큰 항만에서 (컨테이너 화물을) 내려 차에 실어 가는 것보다 부산항에서 하역하여 피더船에 싣고 자기들의 중소 항만으로 들어가면 물류비가 싸게 먹히기 때문이죠. 이런 일본 화물이 부산항 전체 환적화물의 20%를 웃돌고 있습니다』

―환적화물 수입은 어느 정도입니까.

『부산항 부두에 접안한 컨테이너 母船에서 피더船에 옮겨 실려 제3국으로 운송되는 환적화물의 경우 20피터짜리 컨테이너 한 개를 처리하면 약 220달러의 수입이 발생합니다. 부산항은 지난해 390만 개의 환적화물을 처리했습니다. 승용차 한 대를 수출할 경우 평균 稅前(세전) 이익이 300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환적화물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환적화물 유치에 따른 효과는 항만수입 증가, 고용 창출, 관련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효과 이외에도 포장, 가공, 조립, 수리, 보관, 저장, 상표 부착 등 간접효과를 얻고, 해상운송업, 항만운송사업, 조선업을 활성화하는 원동력이 된다.

―컨테이너 차량들 때문에 北港 주변의 도로가 몸살을 겪고 있습디다.

『환적화물 때문입니다. 조그마한 배(피더船)에게는 선석을 안 주니까 컨테이너 본선에서 내린 컨테이너 화물을 피더船이 접안한 일반 부두까지 이동시키다 보니 부산 도심의 도로가 꽉 막히는 겁니다』

―무엇보다 물류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의 혼잡이 문젭니다. 지금 전국의 신설·확장된 고속도로, 4차선 국도 가운데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곳이 수두룩합니다. 「국토의 균형개발」이란 정치적 논리 때문에 투자의 우선순위가 무시된 것 아닙니까.

『항만 가까이로 와야 물류비를 절약할 수 있어요. 지난 5월의 화물연대 파업으로 삼성전자는 물류비에서 1조원 이상의 손해를 보았다고 합디다』

―부산 북항은 배후부지가 너무 협소하지 않습니까.

『4∼5년 전만 해도 부두의 배후부지에 대한 개념이 없었어요. 심지어 주택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부산 북항을 메워 아파트를 짓자는 어처구니없는 논의까지 벌어졌습니다. 부두 배후에 가공·조립단지 같은 것을 만들어 關門經濟(관문경제)를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못 한 거죠』


컨테이너선의 대형화·고속화로 중심항 육성 불가피

오후 3시, 필자는 영도구 동삼동 아치섬(朝島: 조도) 부두에 정박 중인 한국해양대학교 원양실습선 한나라號(3640t) 선장실에서 文成赫 교수를 만났다. 공학박사인 文교수가 바로 한나라號의 선장이다.

―요즘 부산·광양의 「투 포트 시스템」이니, 「부산항의 중심항 육성」이니 하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심항이란 무엇이며, 왜 중심항을 키워야 합니까.

『예컨대 A, B, C, D라는 네 개의 항구가 가까이에 있고, 그 항만의 연간 처리 화물량이 A항 50만TEU, B항 50만TEU, C항 30만TEU, D항 20만TEU라고 가정합시다. 최근까지 대형 컨테이너 母船의 기항 형태는 4개 항만을 다 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컨테이너 선박이 고속화·대형화하면서 운항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컨테이너 母船은 네 곳의 항만 중 한 곳에만 기항하고, 나머지 세 항만의 화물은 기항항에서 子船(자선: 피더船)으로 이동시키는 이른바 거점항만 서비스 체제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 항만은 중심항이 될 수밖에 없고, 나머지 세 항만은 자연스럽게 支線港(feeder port)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선박회사에 의해 중심항으로 선택될 경우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까.

『예컨대 연간 처리 화물량이 똑같은 A, B 항만 중에서 B항이 중심항으로 선택되었다면 B항은 C, D항은 물론 A항에 비해서도 질과 양적인 면에서 압도적인 강세를 보이게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를 숫자로 나타내면 이렇습니다. B항은 기존의 수출입 화물 50만TEU에다 A, C, D 세 항만으로 갈 환적화물인 100만TEU를 더 처리하게 됩니다. 이러한 환적화물은 부두에서 이중 처리(양화·적화)되기 때문에 항만의 실제 처리 하역량은 100만TEU×2=200만TEU가 되어 B항의 연간 처리 물동량은 기존의 50만TEU와 합쳐 250만TEU가 되는 것입니다』

―컨테이너 船社는 어떤 항만을 중심항으로 선택하게 됩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선박의 在港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고, 항만 서비스가 가장 좋은 곳을 선택하는 겁니다』

―항만의 입장에서 더 많은 컨테이너 母船의 기항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효율적인 관리 시스템의 구축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3세대 항만 개념에 입각한 항만 개발을 통해 하드 웨어적인 기초기반시설(인프라 스트럭처)을 확충하는 것입니다. 선박이 접안하여 하역작업을 할 수 있는 기초적인 항만시설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 이상의 다른 논의는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투 포트 시스템은 국가적 낭비

―1980년 이후 부산항의 물동량 증가에 대응한 정부의 항만투자가 매우 인색했습니다. 그 결과 부산항의 항만시설 확보율이 51.4%라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2002년의 경우 컨테이너 처리 시설능력(486만TEU)의 2배인 945만 TEU(일반 부두 처리량 263만TEU 포함)를 처리했던 것입니다. 세계 제18위의 항만시설로 세계 제3위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해 온 부산항은 상습적인 滯船(체선)·滯貨(체화) 현상을 빚어 왔습니다.

『그래서 2011년까지 30개 船席 규모의 부산신항이 건설되고 있습니다만, 8000 TEU를 적재하는 대형 컨테이너船이 국내 조선소에서 이미 건조되었고, 머지않아 1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船까지 등장하게 될 것인데, 지금 건설 중인 부산신항도 이런 항만 수요에 부응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부산신항 1단계 사업(북쪽 부두 건설)은 民資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2단계 사업인 남쪽 부두 건설은 1단계 사업의 완공 후 정부재정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올바른 방향입니까.

『연간 1조원이 투입되는 대형 항만 건설사업이라면 民資보다 정부재정으로 추진하는 것이 안정적이죠. 또한 급증하는 환적화물의 수용을 위해서는 新港의 북쪽 부두와 남쪽 부두의 동시개발이 필요합니다』

―지금 정부는 부산항과 광양항을 동시에 육성하는 투 포트(Two Port) 시스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정책입니까.

『지속적인 개발을 추진하지 않으면 부산항은 지선항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렇다고 부산으로 들어오던 컨테이너 母船이 광양항으로 갑니까. 아닙니다. 상하이항이나 고베항으로 가 버립니다. 투 포트 시스템의 추구는 국가적 낭비입니다』

―광양항의 2002년도 컨테이너 처리 물량이 100만TEU를 돌파했다고 큰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정부는 광양항을 현재의 선석 8개에서 2011년까지 정부재정사업에 의해 33개로 늘릴 계획입니다.

『광양항을 부산항의 보조항으로 육성한다면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광양항에서 100만TEU를 처리했다는 것이 축제를 벌여야 할 일이 아닙니다. 광양항을 부산항처럼 가동했다면 360만TEU는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항만 수요의 예측을 잘못한 관계당국에 대한 문책이 있어야 할 일입니다. 컨테이너 화물 증가량을 보아 가며 부두시설을 늘려야 비용 對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광양항의 컨테이너 화물은 대부분 피더화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