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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독재자 킬러」 自任 金泳三、 「돌격 준비 끝」

정순태   |   2003-03-06 | hit 2016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이 對北(대북)협상에서 일방적으로 북한에 의해 끌려 가는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이와 같이 한국의 보수층은 최근 건국이념이 퇴색되는 가운데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는 모양에 대해 대단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타이밍(기회) 포착의 명수」 金泳三(김영삼) 전 대통령은 金大中 대통령과 북한 국방위원장 金正日(김정일)을 동시에 비판함으로써 일부 보수층의 불안과 불만을 파고드는 명분을 선점하고 있다.

YS(김영삼 前 대통령)는 또한 남북협상 정국에서 소외당하고 있으면서도 뚜렷한 목소리를 내는 데 실패한 李會昌(이회창) 체제의 한나라당을 압박함으로써 2002년 대권정국을 이념 대결의 鮮明構圖(선명구도)로 만들려 하고 있는 듯하다.

巨山(金泳三 전 대통령의 아호)은 지난 9월8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전혀 변하고 있지 않은데, 대한민국만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 『북한의 속임수에 넘어간 金大中씨 때문에 한국의 大혼란의 시대가 목전에 닥쳐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上道洞(상도동)을 찾아가 YS와 요담했던 한 재야인사는 YS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시국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金大中 정권 이후 좌파가 득세한 가운데 신문 방송 등 상당수의 언론이 북한을 찬양하는 태도로 기울고, 통일지상주의의 좌파단체들과 金大中 정권이 유착하여 國體(국체)가 훼손당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파 노선을 걸었던 일부 관변단체들까지 그 해바라기 성향 때문에 金大中 정권에 동조하는 경향이 드러나고 있으며, 6·15 평양회담 후 우리 사회에서 金正日 우상화 풍조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YS는 DJ(金大中 대통령)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절충 움직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즉 『남북연합 혹은 연방은 北에 의한 대한민국의 흡수 병합 전략이며, 北은 金正日에게 장악된 가운데 南은 北의 지원을 받는 좌파에 의한 우파의 고립을 초래하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상부에 남북국가연합이나 연방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럴 경우 대한민국과 人共(인공) 모두가 유엔에서 탈퇴하고 국가연합 또는 연방으로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소멸될 가능성이 있다』 면서 『이것은 국민과 국가를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이렇게 巨山이 金大中 대통령과 金正日 위원장 간의 남북 협상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그 行步(행보)는 향후 남북관계의 모습과 국내정치에 상당한 충격을 가하는 변수가 될 것 같다. YS의 발언은 이제 언론에서 가십거리가 아니라 스트레이트 기사로 정면 취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제1야당의 李會昌 총재가 타이밍을 놓쳐 거론하지 못했던 보수층의 요구와 불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조용한 다수」 보수층을 先占(선점)한 그는 이미 정치무대의 한복판으로 뛰어올라 從屬變數(종속변수)가 아니라 常數(상수)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최근 上道洞을 방문한 인사들 중에는 『YS가 2·12 총선 때처럼 대전환을 기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들에 따르면 YS는 앞으로 그가 전개할 「민주주의 수호 국민 총궐기대회」와 「金正日의 반민족적 범죄를 규탄하고 고발하는 2000만 국민 서명운동」의 성공에 대단한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등산화 끈을 졸라 매는 까닭


당초 정가에서는 YS의 行步와 관련하여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을까』라는 유의 회의론이 우세했다. 특히 6·15 남북공동선언 합의문 발표 직후 YS가 『金正日은 절대로 서울에 올 수 없다』고 예언적으로 언명했을 때 그의 발언은 곧장 통일 열기의 환호성 속에 파묻혀 버렸다. 그러나 이후 갈수록 『金正日은 아웅산 테러사건, KAL기 폭파사건 등을 저지른 장본인으로서 그가 서울로 들어오려면 먼저 사과하고 재발방지의 약속을 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힘을 얻어가면서 대중동원에 성공할 경우, 金正日의 서울방문은 연기·취소 또는 변형(제주도 방문 식)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국 정치의 地形(지형)은 통일의 깃발을 든 DJ세력과 자유민주주의 깃발을 잡은 YS세력이 충돌하는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궐기대회와 서명운동을 전개할 만한 대중동원조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YS는 『民山(민산:민주산악회)이 얼마나 잘 조직되어 있는지 아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YS는 민주산악회를 발판으로 金大中 대통령과 金正日의 「蜜月(밀월)구도」를 깨버리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민주산악회의 재건은 남북한 정권 모두에 대한 도전이다.

1985년 2·12총선에서 YS는 新民黨(신민당)을 창당, 당시의 제1야당 民韓黨(민한당)을 붕괴시키고 全斗煥(전두환) 대통령의 5共 정권과 정면대결 구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때도 YS는 등산화의 끈을 매는 것으로써 鮮明(선명)투쟁의 시동을 걸었다. 당시 新民黨은 표면적으론 YS의 上道洞系와 DJ의 東橋洞系(동교동계)의 연합전선인 민주화추진협의회(약칭 民推協)가 모체가 되었다고 했지만, DJ가 渡美(도미) 중이어서 실질적인 투쟁세력은 YS의 행동조직인 민주산악회였다.

2·12 총선 직전에 귀국한 DJ는 YS와 金相賢(김상현: DJ의 부재중 동교동계의 대표)씨 중심으로 급조된 新民黨의 성공 가능성에 회의, 오히려 「관제야당」 民韓黨의 원내의석과 법통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후 新民黨의 주도권을 YS에게 넘기고 말았다.

민주산악회는 1981년 6월9일, 1년 만에 연금에서 풀린 YS에 의해 결성되었다. 이 날 YS는 金東英(김동영:작고), 崔炯佑(최형우), 文富植(문부식:작고), 金德龍(김덕룡)씨 등과 서울 삼각산으로 山行을 한 데 이어 南山 외교구락부에 집결, 민주산악회를 전격 발족시켰다. 이후 민주산악회는 YS의 정치투쟁을 지원하는 행동조직으로서의 힘을 발휘했다.

1983년 5월18일, 다시 연금상태에 있던 YS가 민주화 관철을 위한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했을 때 그 전위세력은 민주산악회였다. 이때 민주산악회 회원들은 全斗煥 정권의 언론통제로 전혀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YS의 투쟁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해 감시 속에서도 유인물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하는 등 행동력을 과시했다. 民山의 활동으로 YS의 단식투쟁이 外信에 보도되고 그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자 당시 국내언론은 이를 「재야인사의 식사 문제」라고 표현했다.

민주산악회는 1992년 大選 때 회원수가 250만에 달하는 전성기를 누리며 YS캠프의 사조직 나라사랑본부(나사본)의 주력이 되었다. 그러나 YS의 집권 직후 군부內의 사조직이었던 하나회, 「6共의 실력자」 朴哲彦(박철언)씨의 사조직이었던 月桂樹會(월계수회) 등이 정리되던 과정에서 함께 해체되었다. 이런 민주산악회가 지난 8월31일을 기해 재건되고 있다. 기자는 9월9일 민주산악회 吳景義(오경의) 회장과 만나 YS의 意中(의중)과 민주산악회의 향후 진로를 탐색했다.


『金正日은 不義집단의 수괴』


吳景義 회장은 파괴력이 강한 「YS부대의 행동대장」 답지 않게 오히려 단아한 선비형의 모습이다. 1940년 경북 安東(안동) 태생으로 한국민속씨름협회 부회장과 13代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문민정부 때는 韓國馬事會(한국마사회:1993~96년)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처음 뵙지만 마치 구면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1980년대 초반에 민속씨름이 한창 뜰 때 吳회장께서 TV중계방송의 名해설가로서 제게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씨름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길래 해설을 맡게 되셨습니까.

『제가 지금은 이렇지만(요즘 장사들처럼 몸집이 크지 않다) 젊을 때 安東에서는 제일 가는 씨름 장사였습니다. 1983년 민속씨름협회가 발족되면서 부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만,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기가 뭣 해서 현장에 나가 해설을 했는데 뜻밖에도 인기를 좀 모았던 것 같습니다. 1985년 신민당 안동-의성지구당 위원장을 맡게 될 때까지 열심히 씨름 해설을 했습니다』

―민속씨름의 방식을 경상도 式인 「왼씨름」으로 하는 바람에 경상도 장사에게 유리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이 그러합니까(왼씨름은 삽바를 오른쪽 허벅지에 차는 씨름이며 오른씨름은 그 반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오른씨름을 해온 곳은 호남과 경기도 일부지역뿐이었습니다. 북한 지역에서도 「왼씨름」을 했습니다.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 묘사되어 있는 씨름도 왼씨름입니다』

―민주산악회를 재건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군사정권의 최루탄과 곤봉을 맞아가며 민주주의를 쟁취해 놓았는데 요즘의 정치가 다시 독재로 되돌아가고 있고, 자칫하면 한반도에 金正日을 「통일 대통령」으로 하는 남북 지방정권이 들어설 수도 있는 국가적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時國觀이 정반대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결국 두 분(YS와 DJ)의 한판 씨름인데, 누가 더 애국하고 救國하는 것이냐에 대해 냉엄한 심판을 받아 보자는 것입니다.

金日成-金正日 집단은 不義(불의)의 집단입니다. 金日成은 6·25를 도발하여 남북의 산하에서 수백만 명을 죽게 했고, 金正日은 아웅산 폭탄 테러사건과 우리 중동 근로자가 탄 KAL기를 폭파시킨 사건의 배후 지령자입니다. 不義집단의 수괴가 「통일 대통령」을 자처하는 모양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正義가 이긴다고 확신합니다. 어른(YS)께서는 보통 결심으로 나선 것이 아닙니다』

―어떤 까닭으로 民山의 회장을 맡으셨습니까.

『民山이 해체되고 난 후 전국으로 흩어진 동지들끼리 연락이나 하자는 취지에서 제가 작년 8월31일 여의도에다 30평짜리 사무실을 얻어 「道山同志會」(도산동지회)라는 친목단체의 간판 하나를 걸었었습니다. 이것이 만 1년 만에 民山 재건의 産室(산실)이 된 것입니다』

―民山의 재건 작업은 잘되고 있습니까.

『재건의 깃발을 세운 그 날(8월31일)은 태풍이 전국을 덮친 날이었습니다. 그 비바람을 맞으면서 전국 곳곳에서 상경한 500여 명이 民山을 재건하는 모임에 참가했습니다. 당초 사발통문을 은밀히 돌려서 참가하라고 요청한 사람은 15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 배 이상의 동지들이 달려온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여비를 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식사 한 끼만 대접했는데, 대성황을 이뤘습니다』


『민주산악회 회원들은 용감한 사람들』


―民山의 회원들은 어떤 성향의 사람들입니까.

『우리 民山 동지들은 전국 골골 촌촌 면면에 박혀 있습니다. 처음엔 30~40代가 많았는데 그동안 세월이 흘러 이제는 50~60代가 되었어요. 거의 대부분 생업에 종사하여 밥은 먹는 분들입니다. 앞으로 젊은층을 많이 참여시킬 생각입니다. 民山은 산행 때 모자를 돌려서 저마다 형편 닿는 대로 얼마씩 넣게 하여 모은 돈으로 가동되어 온 조직입니다. 따라서 돈이 돌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다른 조직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民山 동지들은 최루탄 가스를 마시고 진압 방망이로 얻어맞고 무참히 쓰러져 군화에 짓밟힌 경험을 가진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여성 동지 중에는 최루탄을 맞아 허벅지가 검게 탄 분도 있습니다. 저 자신도 그때 어깨뼈가 부러져 지금도 날만 궂으면 온 몸에 통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민주산악회 회원들이 巨山을 추종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巨山의 용기와 정직함을 존경하여 그 지도노선을 따르는 것입니다. 民山에게는 民山의 전통과 윤리가 있습니다. 1983년 1월1일 民山 회원들이 上道洞으로 세배를 갔는데, 그때 巨山은 2차 연금을 당하고 있어서 내방객의 출입이 봉쇄된 상태였습니다. 골목길에서라도 세배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한 끝에 경찰기동대가 잠시 등을 돌리게 한 다음 회원들 모두가 눈 내린 땅바닥에서 세배를 했습니다. 당시 民山의 李敏雨(이민우) 초대 회장은 「회장님은 총재님(YS)보다 연장자인데 어떻게 큰 절을 하시냐」는 회원들의 물음에 「巨山은 지도자이니까 절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전통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民山은 문민정부 때 대통령을 만든 친위조직으로서의 영예를 누리지 않았습니까.

『民山은 1985년 2·12 총선 이후 지금까지 100명이 넘는 국회의원을 배출했습니다. 문민정부 때 民山의 지도부에 있던 분들에겐 이런저런 배려가 다소 돌아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동지들에 대해선 별로 챙겨주지를 못했습니다. 이번 民山 재건 모임에 참가한 한 여성 동지는 「각하, 우리는 5년 동안 칼국수 한 그릇 얻어 먹지 못했지만, 참 그리웠습니다」라고 말합디다. 코가 찡했습니다』

―과거의 民山은 「우리가 대통령을 만든다」는 목표가 있어 활성화되었지만, 지금은 그런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회원들의 사기는 어떻습니까.

『동지들의 사기가 대단합니다. 「됐나?」 하고 물으면 대번에 「됐다!」 하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길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확신하는 겁니다. 民山의 정신은 어떤 경우에도 正義입니다. 정의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람에겐 누구도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事必歸正(사필귀정) 아닙니까. 「밥」 얻어 먹으려는 짓이 아닙니다. 자신 있습니다』

―문민정부 때도 李仁模(이인모)씨를 北으로 보내지 않았습니까.

『인도적 차원에서 비전향 장기수 한 둘 보내는 것이야 어떻겠습니까. 문제는 비전향 장기수를 63명이나 보내고 국군포로 한 명, 납북선원 한 명 데리고 오지 못한 것입니다. 문민정부 때는 이인모가 북한 체제 선전으로 악용되자 그런 일을 당장 그만두었어요. 또 어른(YS)께서는 대통령 재임시 쌀 10만t을 보내려 했다가 3만t을 싣고 간 선박의 선원 한 사람이 (북한 항만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한 것에) 트집을 잡혀 북한당국에 의해 일시 억류당하자, 대번에 나머지 7만t의 지원을 중단해 버렸습니다. 우리가 전국의 도정공장을 하루 24시간 풀가동시켜 도와준 것인데, 북한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그러자 당시 金泳三 대통령은 고마움을 모르는 북한과의 협상을 즉각 중단해 버렸습니다』

―金大中 대통령이 북한의 속임수에 넘어갔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북한 방송과 신문에서는 金大中 대통령과 金永南(김영남) 위원장이 頂上회담을 하고, 金大中 대통령과 金正日의 만남은 「평양 상봉」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건 金正日이가 金大中 대통령보다 한 단계 위에 서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닙니다.

북한의 신문이나 방송은 자유언론과는 달리 金正日의 사유물로서 金正日의 주장과 생각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수모를 당합니까? 金正日이 도대체 뭔데 평양을 방문한 우리 언론사 사장들에게 「통일은 내가 마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호언장담을 합니까. 그래서 어른(YS)께서 「金正日을 회장, 金大中 대통령을 전무」에 비유한 것입니다. 지금 남북협상의 구도는 대단히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노벨평화상 빨리 탔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잘 모르지만, 노벨상 때문이라는 풀이가 나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金大中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끌려 다니기만 하면 우리 대한민국이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金泳三 전 대통령이 金大中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비난하고 4·13 총선을 「사상 유례가 없는 부정선거」라고 규탄하는 근거가 있습니까.

『TV방송 3社가 金大中 대통령을 홍보하는 녹화 프로그램을 한날 한시, 그것도 프라임타임에 내보내는 사례와 5共 때의 「땡全뉴스」와 무엇이 다릅니까? 4·13 총선은 폭력이 난무했던 1960년 3·15 부정선거, 3선개헌 의석 확보를 겨냥한 1967년의 6·8 부정선거와 더불어 3大 부정선거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4·13 총선은 돈놀음, 돈싸움이어서 입후자들이 당락 간에 속골병이 들었습니다. 특히 경합지역구에서 집권당은 융단폭격 식으로 선거자금을 뿌렸습니다. 그래 놓고도 이번에 걸려든 것을 보면 여야 모두 경량급 입후보자들이었습니다. 어른은 항아리를 깨도 괜찮고, 아이는 접시만 깨도 매 맞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특히 야당은 조금만 잘못해도 피할 길이 없는 형편입니다』

―DJ와 YS의 관계만큼 애증이 격렬하게 교차하는 사이도 없어 보입니다. 韓光玉(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이 상도동을 방문하고, 부부동반 만찬도 함께 하고, 출국하는 YS를 정부-여당 인사가 환송하는 등 한동안 밀월관계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요.

『근본적으로는 金正日을 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입니다. 6월19일 청와대 오찬 때 두 분이 서로 틀어진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전직 국가원수를 (金日成 사망 때) 「조문도 하지 않은 역적놈」이라고 비방하는데, 오찬석상에서 金大中 대통령은 이런 상식에 벗어난 북한의 비방에는 의사 표명 없이 남북 頂上회담의 「성과」만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金大中 대통령은 평양에서 金正日과 한 차에 타고 1시간 가량 대화를 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아무런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답니다. 어른께서는 그 부분에 대해 의아심을 갖고 계십니다』


『李會昌 총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


―만주산악회를 재건하면 집권당의 희망사항대로 야권이 분열하는 것 아닙니까.

『民山은 정당활동이 아니라 국민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애당초 4·13 총선 前에 재건하려 했는데,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총선 앞두고 이래서야 되겠느냐」 해서 총선 후로 미룬 것입니다. 李총재도 民山 재건의 뜻을 이해하고 함께 투쟁대열에 서 줄 것을 바랍니다』

―李會昌 총재 측에서 참가를 막았는지 혹은 李총재의 눈치를 살폈는지 모르지만, 民山 재건 모임에 한나라당 소속의원, 특히 구 民主系(민주계)의 참석이 부진하지 않았습니까.

『전현직 의원 20여 명만 참석했지요. 오겠다고 했던 국회의원들이 끝내 오지 않고 몸을 사립디다. 李총재측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발목을 잡으려고 뭔가 작용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李총재가 巨山을 不可遠不可親(불가원불가친)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쪽보다 그(李총재)쪽에서 확신을 갖고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적대시하는 것은 오판이며, 결국은 구국적인 차원에서의 큰 일을 방해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李총재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李총재에게 부족한 것은 용기입니다. 얼마 전 李총재가 연세대에 갔다가 한총련 학생 몇십 명이 「통일 방해세력」이라며 대들자 서둘러 빠져 나오지 않았습니까. 巨山 같으면 설사 돌멩이를 맞더라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정문으로 나왔을 겁니다』

―YS는 李총재를 어떻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巨山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십디다. 「글쎄, 두고 보라니까. 李會昌 총재도 국가이익과 명분이 있는 데로 갈 거다. 우리하고 李총재가 연대하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다」 巨山께서는 李총재가 결국 당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투쟁대열에 함께 설 것으로 판단하시는 것 같습니다』

―「金正日의 반민족적 범죄 행위를 규탄하는 2000만 국민 서명운동」과 국민총궐기대회는 언제부터 막이 오르는 것입니까.

『오는 10월 대구 팔공산에서 첫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이어 부산 대회를 가진 다음 북상할 예정입니다』

―경북지역은 吳회장님의 정치적 홈그라운드입니다. 요즘 YS에 대한 TK(대구-경북)의 정서는 어떻습니까.

『지난 대선에서 李會昌 후보를 밀지 않고 李仁濟 후보를 은근히 내세워 金大中 후보가 당선되도록 했다는 오해가 상당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오해가 풀린 것 같습니다. 巨山의 노여움 때문에 李仁濟씨는 상도동에 오지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야당이 할 말을 못하고 있으니까 국민들은 巨山이 할 말을 해주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YS를 「나라 망친 대통령」이라고 비난하고 있지 않습니까.

『IMF 사태의 책임에서 문민정부가 면탈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근본 원인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했던 것입니다. 특히 저는 IMF 외환위기에도 금융법과 노동법 개정을 극한투쟁으로 반대하여 對外信認度(대외신인도)를 추락시킨 DJ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金大中 정부는 불필요하게 너무 많이 國富(국부)를 유출시켰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巨山이 民山의 재건으로 대중동원을 위한 행동조직은 가지게 되었지만, 브레인 조직은 어떻게 갖출 생각입디까.

『그동안 정권을 운용하는 모양을 보니 저쪽(金大中 정부)에도 「큰 머리」는 없는 것 같습디다. 어른(YS)께서는 향후의 사상논쟁에 대비하여 대학교수 등 전문가들로 보좌그룹을 갖출 생각입니다. 民山에도 지식인들을 많이 영입하려고 하는데, 자발적인 참여자가 많습니다』

―정권측에서 가만 있을까요.

『그들은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걱정은 하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민주산악회를 재건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국민운동을 전개함으로써 「한반도의 독재자」를 청산하겠다는 YS의 行步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그러나 YS의 정치역정에서 드러난 그의 파괴력만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예컨대 YS의 대통령 재임시 남북 頂上회담을 앞둔 북한의 독재자 金日成이 急死(급사)했고, 全斗煥, 盧泰愚 前 대통령은 부패사건으로 투옥됨으로써 사실상 정치생명을 상실했다. 또한 朴正熙 대통령이 피살된 궁정동 安家 현장에서 車智澈(차지철) 청와대경호실장과 범인 金載圭(김재규) 정보부장 간에 벌어진 언쟁의 시발도 YS의 新民黨 총재직 가처분신청사건과 그로 인해 촉발된 釜馬사태의 처리를 둘러싼 서로의 異見 때문이었다.

지난 8월 이후 YS는 다음에 全載(전재)하는 金正日 범죄 규탄 선언문 등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만약 그가 추진하는 국민운동이나 서명운동이 그의 정계 복귀를 위한 정당 창당으로 변질되지만 않는다면 그는 향후 한반도 문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 보수세력의 중심에 위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YS는 「조심스런 보수」가 아니라 「목소리가 크고 행동력도 갖춘 보수」이기 때문이다.



金泳三의 金正日 범죄 고발·규탄 선언문(9월13일)『국가안보의 토대를 해체하려 하고 있다』


金大中 대통령은 지난 6월 평양회담에서 反民族 전쟁범죄자인 金正日과 만나 민족통일의 잘못된 방향에 합의하는 크나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수많은 국민들에게 고통과 눈물의 세월을 안겨다준 金正日은 통일의 파트너가 아니라 민족통일의 최대 장애물이자 통일과정에서 반드시 단죄되어야 할 민족반역자입니다.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858기 폭파, 申相玉 부부 납치, 어부 납치, 외국인 납치, 국군포로 억류, 수백만 북한동포의 餓死(아사)에 직접 책임이 있는 金正日과 손잡고 민족통일의 大業을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위험한 사기극이 지금 대한민국을 일대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간교한 金正日에게 이용당한 金大中 대통령은 지금 냉전구조 해체란 명분하에서 자유와 正義의 가치관, 반공태세, 국가보안법, 韓美동맹 등 대한민국이 그동안 쌓아올린 국가안보의 토대를 해체하려 하고 있습니다. 金大中 대통령은 헌법상의 반국가단체 수괴인 金正日에게 朝貢(조공)을 바치듯이 굴욕적인 경제지원을 약속하여 우리의 경제를 북한의 운명과 한덩어리로 묶으려 하고 있습니다.

민족사의 이단세력인 金正日이 정통 자유세력인 대한민국을 赤化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오늘의 상황을 방치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독재자들에 의해 농락당하고 우리 후손들의 운명은 아우슈비츠 같은 정치수 수용소에 맡겨질지도 모릅니다.

한반도의 巨惡(거악)인 金正日이 서울을 방문하여 환영을 받고 돌아간다면 수백만의 희생으로 지켜냈던 대한민국의 가치관은 무너질 것이고, 공산화의 길은 넓게 열릴 것입니다. 우리는 뉘우침이 없는 국제테러집단의 수괴로서 全인류의 공적이기도 한 민족반역자 金正日을 국내법정과 국제사회에 규탄, 고발하고 그의 서울 방문을 저지하는 2000만명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운동은 독립운동, 건국운동,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애국운동입니다. 수많은 희생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 바로 자유와 正義가 보장된 통일로 가는 길입니다. 이 운동은 북한민주화 운동으로 연결되어 북한의 독재자들을 끝장내고 한반도 전체를 자유화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상황은 지금 우리의 애국적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호국영령들도 우리의 용기와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자유를 위해, 정의를 위해 천하의 독재자 金正日을 고발하고 규탄하며 그의 서울방문을 저지하는 대열에 동참합시다. 이것은 제2의 3·1운동입니다.




金泳三의 9월8일 기자회견문『공산독재정권의 수괴가 하루 아침에 평화애호가로 둔갑』


지금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국가 존망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金正日이 남한을 적화통일하려는 야욕을 버리지 않고 전혀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재자 金大中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북한에 의해 이끌려 가는 굴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는데 대한민국만 급속히 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상황이 이처럼 급박하고 심각하게 진행될 경우 대한민국은 적화가 될 것이라는 불안과 우려를 금치 못합니다.

북한의 속임수에 넘어간 金大中씨 때문에 한국의 大혼란의 시대가 목전에 닥쳐오고 있습니다. 가치관이 전도되어 어느 것이 진실인지 어느 것이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얼마나 통탄할 일입니까?

金大中 대통령은 한국에서 전쟁의 위기가 멀리 사라진 것처럼 선전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참된 평화가 도래했다」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에서 미군이 철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망발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국민은 이러한 환상에서 하루 빨리 깨어나야 합니다. 오히려 오늘날 한반도의 위기는 크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통일된 이후에도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헌법을 파괴하고 있으며, 대다수 국민들이 적화에 따른 생명과 재산의 위협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중차대한 국가 존망의 위기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국가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우리는 「民主主義 守護 國民 總蹶起大會」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이 궐기대회에는 대한민국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각계각층의 모든 세력과 국민이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공산독재정권의 수괴가 하루 아침에 평화애호가로 둔갑을 하면서 남한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적화하려 하고 있는 오늘의 현 상황을 저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습니다. 金正日은 아웅산 테러사건, KAL기 폭파사건, 남한과 일본에서의 수많은 사람들의 납치사건 등 엄청난 反민족적 범죄를 저지른 장본인으로서 국제사회로부터 테러리스트로 지목받고 있으며, 전혀 사과나 재발방지 약속을 하지 않고 있는 이상 이러한 국제적 反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관련 있는 모든 국가 및 국제사회에 고발하여 응분의 대가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일을 앞장서 추진해 나감과 동시에 뜻을 같이 하는 국민적 지지를 확인하고 동참을 촉구하기 위하여 「金正日의 反民族的 犯罪行爲를 糾彈하고 告發하는 二千萬 國民 署名運動」을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저는 통일을 원합니다. 그러나 결단코 공산통일은 원치 않으며, 자유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통일을 원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혀 두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金泳三의 民山 재건 집회(8월31일) 연설문『남한 언론은 정부가 쓰라는 대로 쓰고 있다』


吳景義 회장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모인 民主山岳會(민주산악회) 동지 여러분!

오늘 이 순간까지 韓國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여러 갈래의 수많은 투쟁과 노력 그리고 크나큰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軍政(군정)을 終熄(종식)시킨 가장 큰 세력은 民主山岳會였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암울하고 캄캄했던 全斗煥 군사독재 정권 시절, 이에 결연히 맞서 싸웠던 民主山岳會가 없었더라면 軍政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民主山岳會를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간 여러 차례 야당은 야당다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작년에 民主山岳會를 再發足(재발족)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總選(총선) 이후로 留保(유보)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우리나라가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뒤에 서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金大中 대통령이 잘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전혀 능력이 없고 너무나 부패하고 不道德(부도덕)한 정권일 뿐만 아니라 지난 4·13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사상 類例가 없는 亡國的인 부정선거를 저질렀습니다. 썩은 냄새가 나는 부패한 金大中 독재정권에 대해 나마저 침묵한다면 역사와 국민에 대한 크나큰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세계적인 權威紙(권위지)인 LA타임스는 「南韓 언론은 정부가 쓰라는 대로 쓰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현실입니까? 나는 평생을 이 나라의 자유와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나는 민주주의가 最高의 價値라고 생각합니다. 民主山岳會 동지 여러분들도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民主山岳會의 발전과 同志 여러분들의 健勝(건승)을 기원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金泳三의 8월25일 기자회견문『金大中 정권은 헌법을 위반하여 통일문제 접근』


최근 남북한 관계의 진전을 지켜보면서 심각한 우려를 금치 못합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왔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훼손될 수도 있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는 데 대해 5년 동안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했던 사람으로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반드시 지적해야 하고 또 시정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남북 頂上회담 이후 남북간의 평화논의는 찾아볼 수 없고 통일논의만 무성한 가운데 북한의 논리와 주장에 이끌려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남북관계의 현주소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頂上회담에서 발표된 합의사항 중에는 「남한의 연합제 안과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 부분이 있는데, 이는 1국가 2체제를 인정한다는 의미로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개념을 규정한 우리 헌법 제4조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며, 金大中 정권의 헌법을 위반한 통일 접근 태도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金大中 정권이 남북문제에 있어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와 동의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독선적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국민을 불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金大中 대통령 자신도 불행해진다는 것을 경고해 둡니다. 아울러 북한도 남한에 대한 적화통일 야욕을 포기하고 인도적이고 민족적인 차원에서 남북한이 공존공영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金正日 위원장의 서울방문을 거론하기 전에 수백만의 동족이 살상되었던 6·25전쟁의 도발에 대한 분명한 시인과 사과, 그리고 국제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KAL기 폭파사건, 아웅산 테러 사건 등에 대한 분명한 사과가 있어야만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북한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철저한 공산 독재국가로서 주민을 억압해 왔습니다.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는데 우리 남한만이 변하고 있습니다. 저는 통일을 원합니다. 그러나 공산 통일은 원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