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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史」의 저자 任桂淳은 누구인가

정순태   |   2003-03-06 | hit 2118

임계순 교수는 淸史 전공의 학자로서도, 맹인을 돕는 사회사업가로서도, 세 아들을 잘 키운 어머니로서도 성공한 인물이다. 任박사는 현재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동아시아경제연구원 원장직도 맡고 있다. 인터뷰 직전, 조선일보 데이터 베이스의 인물란을 검색해 보니까 任교수와 관련한 기사가 의외로 많고 그 내용도 대단히 「모범적」이었다. 상당히 빡빡한 인터뷰가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처음 만난 금년 56세의 任교수는 수수한 옷차림 때문인지는 몰라도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가는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우선 任교수가 왜 매스컴에 각광을 받았는지 소개해야 할 것 같다.

1999년 12월29일자 일간신문들을 보면 任교수는 생활개혁실천협의회(의장 李世中 변호사)가 「건전한 가정의례를 치른 사회지도층 인사」로 선정한 7인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 그 까닭은 알아보니 「그런 방법도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결코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

아들의 결혼식 때 청첩장 같은 것은 아예 돌리지 않고 신랑과 신부 양가를 합쳐 75명의 친지만 초청해서 조촐하게 예식을 올림으로써 허례허식에 물든 우리 사회에 모범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任교수와 함께 이름이 공개된 인사는 고건 서울시장, 손길승 SK회장, 황규환 아리랑TV 사장, 주성호 목사 등이었다.

任교수의 부군은 현재 명지대학교 부총장직을 맡고 있는 趙伯濟(조백제) 박사이다. 趙교수는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회계학 박사로서 1993년 한국통신의 사장으로 영입되어 1기 임기 동안 경영개혁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다음 미련 없이 학계로 되돌아온 인물이기도 하다.

2000년 5월11일자 조선일보에는 『미국에서 「촉망받는 차세대 과학자」로 뽑힌 한국인 젊은이가 「합법적으로」 군대를 빠질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한국 육군에서 2년간 복무, 현재 만기제대를 10여 일 앞두고 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기사의 주인공이 바로 조백제 부총장과 임계순 교수의 장남 趙상준 박사로서 그는 1998년 5월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신경과학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귀국, 육군에 입대하여 백골부대의 兵으로 복무했다.

趙상준 박사는 1970년 미국에 유학중이던 趙교수와 任교수 사이에서 태어나 언제라도 미국 국적을 선택하기만 하면 屬地主義(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주위에서는 『첨단 과학을 하는 젊은 연구자로서 2년의 공백은 치명적』이라면서 그의 입대를 만류했지만, 그는 『스스로 떳떳하고 싶다』며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군 복무중이던 1999년 5월, 그가 「미국과학자연구명예학회」(Sigma-X)에 의해 「차세대 과학자」로 선정돼 그 학회의 회원이 되자, 백골부대 장병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또 영광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는 제대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분자생물학 분야의 권위자인 예일 대학 제나 바우나 교수가 진행중인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任교수는 남을 돕는 데도 헌신적이다. 그녀가 장애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일리노이 대학에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하게 장애자 학생들과 함께 대학기숙사 1층에 입주하여 그들과 가까이에서 생활했던 것이 남을 돕는다는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그녀는 외국인으로서 영어문장의 한계 때문에 대단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는데, 아무런 대가가 없는데도 논문작성에 도움을 주던 옆방 학생의 봉사정신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귀국 후 任교수는 우리 사회의 저소득 맹인들을 돕기 위해 「사랑의 빛」이란 책을 써서 가톨릭출판사에서 3판까지 발간하여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는가 하면 동창생인 이화여대 음대 교수로 구성된 자선음악회의 정기적 개최를 지난 7년 동안 주도해 왔다. 그 수익금은 수억원에 이르렀는데, 모두 맹인의 재활 교육과 自立기금으로 사용되었다.

任교수는 1967년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同대학원에서 중국사 전공으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에는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중국사의 세계적 권위자 로이드 이스트만 교수의 지도 아래 「淸朝八旗駐防의 興衰(1644~1911)」란 독특한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과 국교가 수립되기 전인 1991년 8월부터 1992년 8월까지 북경대학 역사학과에서 한국 교육부의 파견교수로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河南省(하남성) 洛陽大學(낙양대학)에 출강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 체류중 박사학위 논문을 보완하여 저술한 「청조팔기주방성쇠사」는 중국의 세계적인 출판사인 三聯書店(삼련서점)에서 1993년 중국어로 출판되었다. 이 저서는 전문서적임에도 재판되었으며, 편집인은 중국정부로부터 편집인상을 받았다.

任교수는 전문적인 논문과 저서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중국관계 서적의 저술로도 명성을 얻었다. 1994년 김영사에서 출판되었던 「한국인의 짝사랑 中國」은 베스트셀러 제4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직전인 1997년에는 저서 「중국의 如意珠 홍콩」을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출판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 저서는 1994년 6월, 미국의 잭 켐프 상원의원을 수행하여 북경, 상해, 광주, 홍콩 등지를 방문하면서 만난 중국 고위관료와 학자들의 발언과 그동안 수집된 자료를 종합하여 집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