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 나선金重權前 대통령비서실장

정순태   |   2003-03-10 | hit 1339

4·13 총선 때 경북 울진·봉화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했던 金重權(김중권) 前 대통령비서실장은 영남지역을 강타한 「反DJ 태풍」을 맞고 16표 차로 낙선함으로써 동서간 벽의 높이에 상처를 입은 대표적 인물로 상징화되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8·30 전당대회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 대의원들에게 『영남 최고위원 뽑아야 정권 再창출 된다』는 話頭(화두)를 던져 놓고 있다. 전체 대의원 중 65%를 湖南系가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과연 이번 경선을 통해 全國정당화의 모양을 갖출 수 있을지, 그 여부가 곧장 2002년 大選(대선) 고지의 변수로 작용하게 된다. 기자는 지난 8월10일 오후, 서대문 임광빌딩 10층에 포진한 金重權 후보의 경선 캠프를 찾아가 지역갈등의 실상과 국민통합 문제 등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었다.

―최고위원 출마 동기는 무엇입니까.

『총선 낙선이 저한테 준 타격이 너무 심각해서 처음엔 (경선에) 나서지 않으려 했지요. 저는 집권 전반기에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습니다. 집권 후반기에는 당에서라도 대통령을 보필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金大中 대통령이 역사에 남는 대통령으로 되는 데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이것이 비서실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선 출마의 캐치프레이즈로 「민주당의 全國정당화」를 내거셨더군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 비뚤어진 영남 民心을 누가 바로 세울까, 영남 사람 이외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영호남 화합을 위한 「전도사」라는 닉네임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런 현상을 좌시할 수 없었습니다. 영남의 민심과 낙선 위원장들의 뜻을 중앙에 전달하는 다리가 되려고 합니다』


『湖南편중 人事說은 과장』


―말씀 중에 「비뚤어진 영남 민심」이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그렇습니까.

『무조건 反DJ라면 지역감정 아닙니까. 그것이 비뚤어진 정서입니다. 대통령은 영남에 애정을 갖고 동서화합을 열망하고 있고, 예산 배정도 영남에 훨씬 많이 했습니다. 또 저같은 사람을 비서실장으로 뽑지 않았습니까. 역대 대통령들 중에 비서실장을 동향 사람이 아닌 사람으로 뽑은 일이 (金大中 대통령 이외에는) 없지 않습니까. 지난 총선 결과는 지역감정의 발로였다고 확실하게 써주십시오』

―「金重權 대통령비서실장」이란 人事(인사)는 확실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金大中 정부는 IMF 위기극복 등으로 경제부문에서 비교적 괜찮은 성적표를 받고 있으면서도 인사와 利權 편중으로 욕을 먹고 있습니다. 많은 영남사람들은 『저희들끼리만 다 해먹는다』는 절대적 박탈감에 젖어 있으며, 호남사람들까지도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준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그 질문 자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전제가 맞지 않습니다. 지난날 통계를 보면 호남과 영남은 2 대 8이나 3 대 7의 불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요직을 영남 쪽에서 싹쓸이하다 보니 호남사람들이 살기 위해 똘똘 뭉쳤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날 어떠했는가를 반추해 보아야 할 겁니다』

―과거의 잘못을 거울 삼아 되풀이하지는 말아야겠지요. 요즘 현상을 하나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서울시내 경찰서장이 거의 대부분 호남사람입니다. 이런 사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의 人事정책은 큰 틀에서 지역 균형과 안배의 원칙에 의해 객관적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비서실장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통령을 보좌해 온 제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50년간의 편중된 인사정책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인사편중이라는 오해가 다소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야당의 정치적 의도로 과장된 측면도 있는 겁니다. 영남 인사가 줄고 호남 인사가 늘면서 體感(체감)되는 증감비율이 실상보다 다소 크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어떻든 현실로 존재하고 있는 지역감정의 해소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역감정의 극복을 위해서는 정말 한없는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실천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인사정책과 예산의 배정 등에 있어서는 물론이고 인적 교류, 문화 교류에 있어서도 정치권과 행정부 그리고 시민단체가 주도적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 아직은 준비단계입니다만, 저 자신도 여러 전문가들을 모시고 동서화합 관련 연구소를 만들어 東西갈등 해결에 한 알의 밀알이라도 될 생각입니다』

―영남 민심은 어떻게 보십니까.

『아시다시피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은 영남 65개 지역구 의석 가운데 하나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영남사람은 극도의 소외의식을 갖고 있고 민주당을 이해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저는 東西화합을 통한 국민통합을 위해 우리 당의 全國정당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東西화합을 이루자면 우리 黨 지도부가 전국정당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떨어진다면 누가 박수치겠습니까』


―호남 대의원이 전체의 65%를 차지하는 판도에서 몇 등을 하실 것 같습니까.

『그건 대의원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全國정당화를 통해 정권 再창출을 해야 한다는 저의 명분이 진실하다면 대의원들이 호응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떨어진다면 누가 박수를 치겠습니까. 한나라당은 우리 당이 지역정당으로 전락했다고 쾌재를 부를 겁니다. 현명한 대의원이라면 이같은 절박한 상황을 이해해 줄 겁니다』

―호남의 韓和甲 지도위원과 東西연대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영호남의 화합 없는 全國정당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니까 자연발생적 연대라면 바람직한 일이지요. 韓和甲 위원은 민주화 투쟁 때부터 보필하여 대통령께서 집권하는 데 노력한 분이고, 저는 집권 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습니다. 어떻든 대통령을 보필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같고 어느 누구보다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李仁濟 상임고문과 만나 무슨 얘기를 하셨습니까. 權魯甲 상임고문의 주선으로 회동이 이루어졌다는 說까지 나돌고 있는데요(韓和甲 지도위원과 가까운 金重權 지도위원이 韓위원의 라이벌인 李仁濟 상임고문과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합종연횡의 경선 상황에서는 화젯거리가 되었다).

『李仁濟 고문의 요청으로 만났습니다. 權魯甲 고문이 주선한 일은 없습니다. 李仁濟 고문과는 1인4표제의 의미를 살리는 데 대한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협의했습니다. 우선 대의원이 지역에 집중된 투표나 한 후보에게만 기표를 해서는 안 된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이런 투표는 1인4표제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인이 4표를 찍지 않은 투표용지는 무효로 처리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곧 당무회의에서 우리 두 사람의 요구가 관철되었습니다』

―경선 출마를 결심하면서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습니까.

『대통령께서 이미 공정 경선에 대한 의지를 밝히셨는데, 출마하기로 결심한 제가 만났다, 안 만났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청와대에 있을 때나 떠난 이후에나 대통령의 의중이나 국정통치 개념을 벗어나 제 행동을 결정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東西화합을 통해 민족내부 역량 강화』


―金大中 대통령과 어떻게 만났습니까.

『13代 국회에서 제가 법사위원장을 맡았는데, 날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화와 토론을 거친 후 표결한다는 원칙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때 平民黨(평민당) 총재였던 대통령께서 저를 굉장히 칭찬하시더라구요. 그후 정무수석으로서 盧泰愚 대통령의 심부름으로 동교동을 몇 번 방문했습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느끼신 金大中 정부의 성격은 무엇이었습니까.

『19세기 말 우리 민족은 급변하는 세계사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내부 분열로 결국 우리 민족문제의 주도권을 외세에 넘긴 채 좌절과 통한의 20세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20세기 말, 또다시 변화와 도전의 거대한 물결이 밀어닥쳤습니다. 그러나 전임 정권은 역사의 흐름을 직시하지 못한 채 결국 IMF 사태라는 국난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시대와 국민이 분단체제에 기반한 낡은 국가운영의 틀을 깨고, 구태의연한 낡은 껍질을 벗는 발상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가운데 50년 만에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것입니다. 金大中 대통령께서는 정권교체의 의미를, 국민의 바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지속적인 개혁으로 새로운 국가운영의 틀과 관행을 정착시키고 계층간, 세대간, 성별간 갈등을 극복하고, 東西화합을 통해 민족 내부의 역량을 강화하는 가운데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것이 金大中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청와대 안과 밖에서 보고 판단한 金大中 정부 전반기의 실적과 후반기의 과제는 어떤 것입니까.

『현 정권 출범 때 IMF 위기로 나라 살림은 부도 직전이었습니다. 외환보유고는 39억 달러에 불과했던 것이 당시의 모습이었습니다. 사회 각 부문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대통령의 경제 회생을 위한 노력, 그리고 남북 화해를 위한 열정은 옆에서 모시는 제가 보기에도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말이 쉬워서 구조조정이지 모두가 총론에 있어서는 그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일로 다가오게 되면 정말 엄청나게 반발하고 저항하는 게 상례였습니다. 오죽하면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 개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개별 정책의 수행에 있어서는 다소 혼선과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겠지만, 큰 흐름에 있어서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이루어 왔고, 이제 집권 후반기를 잘 마무리한다면 우리나라는 분명히 21세기에는 한 단계 도약,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가 자주적, 능동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