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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김씨의 출발점을 찾는 답사

정순태(작가)   |   2016-12-11 | hit 8001

필자에게는, 청해성에서 기련산맥(祁連山脈)을 넘어 감숙성(甘肅省)의 하서주랑(河西走廊)를 달려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 하나는, 대비천 전투에서 설인귀(薛仁貴)의 당군을 대파한 토번군이 기련산맥을 넘어 실크로드의 핵심구간인 하서4진(河西四鎭: 감숙성 소재)을 위협함으로써 당군의 동정(東征)을 사실상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나당전쟁 前後 河西4진과 安西4진은 당&#8231 토번 간에 쟁탈의 요충이었지만, 안록산(安祿山)의 반란(755년) 발발 이후에는 모두 토번의 영토가 되었다.

또 하나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김씨(新羅金氏)가 흉노 휴저왕(休屠王)의 태자인 김일제(金日&#30974)의 후손이라는 주장이 학계에서 제기된 지 이미 오래 되었고, 휴저왕의 본거지가 하서주랑(河西走廊)의 제1번 도시인 무위(武威)이기 때문이다.

2010년 4월11일 오전 8시30분, 필자 일행 5명은 대형 지프를 타고 청해성의 성도(省都)인 서녕(西寧)을 출발해, 황수(湟水)의 발원지인 청해호 북방 대통(大通)산맥의 협곡을 뚫고, 기련산맥(祈連山脈)을 넘어 실크로드와 연결되는 하서4진(河西四鎭)과 흉노 휴저왕의 본거지를 찾는 답사에 나섰다.

흉노 등 기마민족의 핵심거점이었던 폭 300km, 길이 800km의 기련산맥. 그것은 청해성과 감숙성(甘肅省)의 분수령, 또는 서역으로 연결되는 ‘하서주랑(河西走廊)의 등뼈’ 등으로 불린다. 청해호의 서쪽에 위치한 차이담 분지를 거쳐서도 실크로드와 연결되기는 하지만, 그 길의 높낮이가 구간에 따라 매우 격렬하고, 기후변화도 극심해 통행하기 어렵다.

기련산맥의 최고봉 기련산은 표고 5547m. 서녕∼장액(張掖) 간을 연결하는 국도 227호 구간에는 표고 4000 m 안팎의 고개가 많다. 청해성의 아보진(峨堡鎭)과 감숙성의 민락(民樂) 구간 74km 가 가장 험한 코스였다. 그 중도의 아박진(峨博鎭)에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길가 식당 몇 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 문을 잠궈놓고 음식을 팔지 않았다. 우리는 건빵&#8231 과일 등 비상식량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굶을 염려는 없었다.

기련산맥의 산간 마을 왕도반(王道班)과 남풍(南豊)을 잇는 구간의 고갯길에서 심한 눈보라를 만났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해발 4000m 전후의 고갯길은 대낮인데도 10m 전방이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 대형 트럭이 사고를 일으켜 길가에 널부러져 있었다. 우리를 실은 지프 운전사는 전조등(前照燈)을 켜고, 도로의 노란색 중앙선을 따라 거북이 걸음으로 조심조심 운전했다.

민락(民樂)에 다가갈 무렵에야 눈발이 약해지고, 시계(視界)도 훨씬 밝아졌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민락현의 십리도향촌(什里稻香村)에 들러 점심을 해결했다. 민락현 주변에는 대마영(大馬營)&#8231 군마팔대(軍馬八隊) 등 말과 관련된 지명(地名)이 많다. 흉노 지배 시절부터 청조(淸朝)에 이르기까지 이곳에는 대규모 군마(軍馬) 목장이 있었다.

마침 민락현 출신인 지프 운전사는 “나도 얼마 전까지 이곳 목장에서 일했지만, 지금 목장엔 말이 없고, 양(羊)과 야크만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와 탱크의 등장으로 이제 말의 쓰임새가 옛날보다 훨씬 줄어들었는 데다, 말의 성격이 워낙 까다로워 사육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은 민락에서 국도를 버리고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가 청남현(靑南縣)의 마제사(馬蹄寺)를 들렀다. 함박눈이 내리는 마제사 입구는 절경이었다. 굳이 이곳을 찾은 것은 기련산맥의 눈 녹은 물이 이 근처에서 흑하(黑河)란 강물을 이룬 후 오아시스 도시인 장액(張掖)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장액을 감싸고 도는 흑하는 다시 서북진하다가 사막을 뚫고 내몽골에 이르러 거연택(居延澤)이라는 거대한 호수를 이룬다. 거연택은 마르코 폴로의 &#10218東方見聞錄&#8231 동방견문록&#10219에도 소개되는 유목민의 젖줄이었다.

흑하의 흐름과 동행하여 밤늦게 장액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을 실은 지프가 이날 하루 달린 거리는 600km 에 달했다. 하차하기 전, 난코스를 무난하게 돌파한 중국인 운전사의 노고에 감사하는 큰 박수를 보냈다.

장액의 옛 이름은 감주(甘州)이다. 감숙성이란 이름은 감주와 숙주(肅州: 지금의 酒泉)의 첫 글자에서 따왔다. 장액은 연간 강우량 300mm 정도의 오아시스도시다. 간밤에 내린 눈비를 제외하면, 지난 3개월간 강우량은 제로(0)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