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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岐路에 선 한국 언론」의 반성문 관훈클럽의 韓國言論報告書 요약

정순태   |   2003-02-24 | hit 2124

현재 한국의 언론 자유는 어떤 수준에 있는가? 매년 세계 각국의 언론 자유의 실태를 조사하여 발표하는 美國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는 한국을 「언론이 자유로운 국가」의 범주로 분류했다. 1997년의 경우 조사대상 187개국 가운데 38위로, 1999년에는 조사대상 193개국 중 27위로 평가된 것이다.

그러나 프리덤 하우스는 『한국의 언론은 金大中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언론의 자유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한국)신문은 공보처가 직접 전화를 걸어 특정한 제목을 요구하거나 기사게재를 요구했던 과거보다 교묘한 방법으로 압력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신문편집인협회(IPI)는 2000년 3월에 발표한 세계언론자유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우 언론과 정부 간에 수차례 충돌이 발생함에 따라 언론과 金大中 대통령이 긴장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연례보고서는 또 『한국 언론에 대한 주요 위협수단으로 명예훼손 고소, 고발이 떠오르고 있으며, 언론사 매출에 대한 세무조사가 양측의 긴장관계를 악화시켰다』고 분석했다.


한국언론 2000년 위원회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언론인들은 金泳三 정부 아래서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공보처의 간접적인 정치적 압력행위 및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한 압력 등의 사례를 들어 정부의 간접적 언론통제를 증언했다. 언론에 대한 金泳三 정부의 非공식적 통제는 金大中 정부에서도 유사한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협조」라는 형식의 非공식적 통제와 언론사의 인사에 개입하는 등 간접적 통제가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언론재단(연구원)이 1999년도에 조사한 결과를 보면 언론 자유 저해요인은 (1)大광고주의 압력 (2)社內 압력 (3)정부의 영향, 통제 (4)언론법제, 정책의 順으로 나타났다. 매체별로 보면 1999년 조사에서 大광고주의 영향력이 제일 크다고 지적한 매체는 신문인 반면 중앙방송사 종사자들은 정부의 영향과 통제를 제1차적 저해요인으로 꼽았다.

한국 신문기업의 광고판매수입 의존도는 80%를 웃돈다. 높은 광고판매수입 의존도는 언론기업에 대한 광고주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든다. 특히 IMF 관리체제와 기업들의 구조조정 이후 언론기업의 광고판매수입이 격감한 것을 계기로 더욱 더 광고주의 영향력이 증대된 것으로 보인다.


기획광고기사는 기자가 기업의 광고를 취재해 일반기사처럼 위장, 기획기사로 게재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기사로 받아들여 읽게 한다. 광고주의 영향력을 배제해야 할 언론기업이 이윤을 위해 스스로 광고주의 영향력을 끌어들이는 행위는 「언론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다.

언론인과 정치권력의 유착도 언론의 자유를 저해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1999년 10월 鄭亨根(정형근) 의원이 국회 對정부 질문에서 폭로한 「성공적 개혁 추진을 위한 외부환경 정비 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파동이 그러한 우리 언론의 현실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중앙일보 문일현 기자가 작성해 집권당의 李鍾贊(이종찬) 부총재에게 건네준 이 문건을 평화방송 이도준 기자가 李鍾贊 부총재의 사무실에서 복사해 鄭亨根 의원에게 제공해 일어난 이른바 「언론장악 음모 보고서」 사건은 우리 언론인의 직업윤리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서 언론인 스스로 언론 자유를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만들었다.


자기 권리도 찾지 못하는 언론



그뿐만 아니다. 한국 언론은 스스로 언론의 자유를 누릴 권리 자체에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정 선거법안 속에 選擧記事(선거기사)심의위원회를 두어 불공정 보도에 대해 「사과문 또는 정정보도문 게재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불응한 발행인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조항이 들어 있는 것을 심의과정에서나 국회에서 통과되고 대통령이 공포한 뒤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선거기사심의위원회가 구성된 첫 회의에서 위헌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0년 2월8일 법안이 통과된 뒤 20여일이 지나서야 그 같은 사실을, 자신도 아닌 선거기사심의위원회의 지적으로 알게 된 신문들은 3월1일 사설에서 일제히 「야바위 언론규제 선거법」 「신판 언론규제법」 「언론규제 발상은 시대착오」 등등 비난을 퍼부었지만 허공에 대고 화풀이하는 형국에 지나지 않았다. 언론은 언론 자유라는 자기 권리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기자들은 사주나 경영진의 간섭이 언론자유를 제약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밝힌 바 있다. 2000년 위원회 전문위원들의 연구에서도 소유 및 경영이 편집에 간섭하고 있는 현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2000년 위원회는 기본적으로 편집권 독립을 위한 장치는 법률에 의한 획일적인 강요가 아니라 개별 언론사의 소유형태, 역사와 전통, 이념과 목표, 경영철학에 따라 자율적으로 적합한 방식을 고안해 실천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적합한 장치가 자율적으로 마련되지 않을 경우 타율적으로 그러한 장치를 제도화하려는 논의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언론사들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언론사의 소유집중을 해소하고자 하는 요청을 요약한다면 이른바 족벌에 의한 언론지배를 규제하기 위해 지배주주의 지분한도가 일정한 범위를 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편집권의 독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편집권의 독립을 위해 언론노조와 언론개혁시민연대 및 民辯(민변)은 지분한도를, 100분의 30을 초과할 수 없게 규정한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청원했다.

그러나 외국이나 국내 언론의 역사를 볼 때 私的 소유인 신문이 언론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다하는가 여부는 누가 얼마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누가 신문을 소유하고 경영하는가라는 사람의 문제에 달려 있다고 본다. 또한 소유지분 한도를 정하는 입법은 헌법의 재산권 보장과의 관계에서 「과잉금지의 원칙」을 충족시키기 어려우므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

일부 언론운동 시민단체나 학계 인사들은 어느 한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이 30% 이상, 심지어는 20% 이상이면 시장지배적 지배자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국의 현실은 특정 몇 개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이 65% 내외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매체시장의 점유율을 되도록 낮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해 규제하려는 것은 매체의 양적 다양성만 강조하는 것이 된다. 그와 같은 주장은 자칫 특정 신문사들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의도로 오해받을 소지마저 있다.

2000년 위원회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하기 위한 시장 점유율 한도를 공정거래법(어느 한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3 이하의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의 합계가 75% 이상의 경우에 적용)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발행부수, 매출액 등 중에서 무엇으로 할 것인가도 문제다. 발행부수가 공표되지 않고, 광고와 판매비율이 구분되지 않은 채 분식된 결산서의 신뢰도에도 문제가 있다.


한국 언론인의 恥部:촌지와 향응


언론인이 금품수수 및 향응을 제공받는 행위는 한국 언론의 가장 큰 恥部(치부)다. 이른바 「촌지」로 상징되는 非윤리적 행위는 국내외에서 지탄을 받아 왔다.

2000년 위원회 전문위원의 조사결과를 보면 취재원과 거의 접촉할 기회가 없는 교정, 편집, 전국부 등 소속기자를 제외한 377명의 응답자 중 약 48%가 현금 위주의 촌지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편집국 부서별로는 경제, 정치, 사회, 문화부의 順으로 높게 나타났다.

촌지는 어떤 경우에 제공되는 것일까? 기자들은 별다른 요구 없이 관행적으로 준다고 가장 많이 응답했다(43.6%). 그 다음으로 취재원이 긍정적인 보도를 요청하거나 부정적인 내용을 삭제, 축소해 달라는 부탁을 할 때 제공된다는 응답률이 높았으며(35.4%), 취재원이 유사시를 대비해 준다는 응답(19.0%)도 있었다. 이 같은 조사결과를 미루어 볼 때 촌지 수수는 한국 언론의 관행으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해당사자로부터 금품이나 향응 등 경제적 혜택을 받는 것에 대해 언론인들은 어떤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조사결과를 보면 우리 언론인들은 일반적으로 10만원 미만 가격의 경제적 혜택은 받아도 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7년 한국언론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윤리강령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언론인이 32.6%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신문발행인들은 부부동반으로 현대그룹이 후원하는 금강산 관광을 했다. 현대 측의 금강산 무료관광은 일반기자들에게도 베풀어졌다. 1998년 11월 금강호와 봉래호가 200여 명의 기자를 태우고 금강산으로 향한 이후 청와대를 비롯한 여러 부처 등의 출입기자와 일부 사진기자들이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다. 이런 방식으로 금강산을 다녀온 기자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현대그룹 실무자는 1500명 이상으로 추산했다(기자협회보, 1999년 3월8일).

회사의 생존을 위해 회사의 광고수주나 부수 확장 요구에 묵묵히 따라주고, 전면광고를 위해 자신이 확보한 지면을 빼앗겨도 용납하는 현실은 기자의 책임을 회사의 책임으로 모두 환원시킬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만든다. 언론을 위해 기자직을 수행하는 것이라기보다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기자직을 선택하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금품이나 향응을 받는 문제만 해도 그렇다. 취재비용을 해당 언론사가 부담하고 일탈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히 불이익을 당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과다한 부채와 借入경영:부채비율 1000 %의 현실


신문경영을 논의함에 있어 먼저 지적할 점은 한국 신문기업, 특히 중앙 일간신문사들이 보여준 기업적 고도성장이다. 1990년 이후 4大 주요 신문사들은 평균 20% 안팎의 자산 및 매출액 신장을 보여주어 일반 제조업의 성장률을 훨씬 능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제 신문사들의 제반 경영지표와 시장 행위에서 나타나는 과당경쟁의 모습들, 그리고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아래서 드러난 신문사의 기업적 취약성은 지금까지 한국 신문산업이 「기업은 있지만 경영은 없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리 합리적이지 못했다.

첫째, 신문사 자본구성의 열악성과 과다한 부채 규모를 들 수 있다. 1999년 현재 주요 신문사들의 부채 총액과 차입금은 2조474억원에 이르며, 중앙일간지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1996년 679.3%, 1997년 1641.4%, 1998년 929.7%에 달한다. IMF 구제금융 상황을 지나면서 이러한 과다 부채비율과 차입경영은 금융비용 증가로 인한 경영난을 심화시켰다(편집자 注-한국언론보고서에서는 신문사 社主 또는 경영자가 과다한 부채 때문에 정부의 이른바 「협조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운 오늘의 메커니즘에 대해선 분석하지 않았다).

중앙 종합일간지 시장의 매출규모는 1998년 1조3727억원으로 1995년 1조8183억원과 비교하면 25%의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전체적인 매출액 감소추세는 IMF 관리체제를 맞이하여 광고수익과 구독자 수가 감소한 데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신문사들이 이렇듯 경영상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 이유는 IMF 관리체제라는 구조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좀더 본질적인 원인은 그 동안 신문기업들이 시장에서 펼쳐온 과당경쟁이나 非정상적인 시장거래 등과 같은 경영형태의 非합리성에 있다.

과다한 分공장 설치와 高價의 윤전기 도입에 따른 상환금 부담이나 수입원자재 원가상승에 따른 추가비용 역시 신문사 경영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원화의 불안전성에 기인한 환차손, 원화 평가절하에 따른 수입원가 상승, 이에 따른 채산성 악화, 高금리 유지로 인한 운영자금 부족과 자금난 가중 등 한국경제가 당면한 4重苦를 신문업계도 같이 겪어야 했다(편집자 注-한국 신문들은 전산화 작업을 위해 막대한 시설투자를 감행한 직후에 IMF 금융위기가 닥쳐와 더욱 심한 충격을 받았다).

과도한 판매비용도 경영악화의 主요인으로 꼽힌다. 부수 확장을 위해 無價紙(무가지)를 대량 살포하고 경품으로 高價(고가)의 뻐꾸기 시계와 에어컨式 선풍기 등을 제공해 온 판매전쟁은 경영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판촉유사비용 규모가 수백억원에 이르고, 매출액 대비 판촉유사비용의 비율이 15% 이상인 신문이 많으며 최고 24.8%를 판촉비용으로 투자하는 신문사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 언론산업의 광고시장 규모는 1999년 현재 4조6206억원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평균 15% 전후의 지속적 성장추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광고시장은 1996년 이후 경기 하강으로 성장이 둔화되어 1997년에는 처음으로 4.2%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IMF 관리체제를 본격적으로 맞이한 1998년에는 1997년도 대비 총 광고가 35.2%나 감소했다. 1997년의 경우 TV의 광고수입은 2.5%가 줄어든 반면 신문은 8.3%가 감소하여 라디오, 잡지를 포함한 4大 매체 중 신문광고시장이 가장 급격히 위축되었다.

불합리한 광고료 산정기준과 거래방식 또한 정상적인 시장기능을 왜곡하고 있다. 광고단가의 책정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비싸게만 책정되거나 정확한 발행 부수에 근거하여 차별적으로 책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문사마다 지면수준이 다르고 발행 부수가 차이가 있음에도 주요 신문사들이 책정하는 광고단가는 거의 차이가 없다.

발행부수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광고효과 분석이나 합리화를 위한 기본자료이다. 그러나 한국신문들은 발행 부수의 공개를 기피하고 있다. 발행부수를 정확히 객관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ABC제도(발행부수 공시제도)가 도입되어 가입한 회원사는 많지만, 실제 부수 公示(공시)에 참여하여 조사에 응하고 있는 신문사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취재의 현황과 문제점:통조림 뉴스


한국 언론인의 취재관행의 중 문제의 하나는 이른바 「發表(발표)저널리즘」이다. 발표저널리즘이란 언론인이 사실확인과 사실에 대한 분석 및 해석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고 취재원이 제공한 정보와 그러한 정보에 대한 분석 및 해석, 취재원이 규정한 현실을 그대로 보도하는 행태를 말한다.

조사에 따르면 취재원의 약 93%가 취재기자들에게 「통조림 뉴스」를 제공한다. 기자들은 통조림 뉴스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기사화하기도 하는데, 그 속에 어떤 독소가 포함되어 있는지 점검하지 않은 채 보도하는 것은 독자들을 誤導(오도)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발표저널리즘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기자직의 私事化(사사화) 현상과도 연관되어 있다. 기자직의 私事化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이기적 私事化로서 가족 지향적이며 개인적인 성향을 말한다. 예컨대 기자들이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보다는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기자직을 선택하고 수행하는 성향을 말한다. 이럴 경우 기자직에 필요한 고발정신, 문제의식, 비판의식이 약화된다. 다른 하나는 자기 보존적 성향으로 자기라는 존재의 보존을 위한 안전만을 따져 움직이는 성향이다. 이 같은 성향이 만연하면 사회正義에 대한 무관심을 조장하여 不義를 보고도 외면하고 만다.

이러한 기자직의 私事化 현상은 오랜 군사독재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순치된 制度(제도)언론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일반기업체의 사원채용과 같은 절차를 밟아 기자를 충원해 온 기자충원제도와도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언론 취재 시스템의 근간은 출입처 제도다. 대부분의 취재원은 모든 기자에게 개방되어 있는 歐美(구미)의 취재 시스템과는 달리 日本의 경우처럼 정부나 공공기관 및 기업과 같은 취재원 모두에 취재기자를 고정 배치해 배타적 취재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출입처의 기자단은 기본적으로 기자들의 취재 경쟁을 유발한다기보다는 서로 협력한다는 의미에서 담합의 성격이 강하다. 대부분의 신문 지면들이 획일적이거나 주목을 끌 만한 특색 있는 기사들이 적은 소위 「발표 저널리즘化」한 것은 출입처와 기자단이 너무 의존하는 데서 비롯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IMF 관리체제가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재경부의 발표에 전적으로 의존한 나머지 위기의 경고자로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출입처 제도와 기자단은 취재의 효율성을 보장하고 기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지만, 자유로운 취재를 제약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출입처라는 視空間的(시공간적) 테두리를 벗어나는 기자들의 발굴과 보도를 억제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수 있고, 기자들 간의 담합과 자율 검열을 정당화시켜 소위 「떼거리 저널리즘」을 유도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출입기자단의 병폐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8년 5월 한국은행기자단 13개 회원사 기자들은 기자단 해체를 결의했다. 그러나 기자단이 해체하면서 취재, 보도와 관련된 기자단의 純기능도 사라지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과거 기자단의 집단적인 요구에는 정보를 제공했던 취재원이 기자 개인의 요구에는 정보공개를 거부했고, 쓸모 없는 과열 취재경쟁으로 부정확한 추측기사가 남발돼도 이를 조정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자질이 의심스러운 기자들까지 마구 기자실을 드나들어 기자들의 취재질서가 엉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은행기자단은 1989년 10월 부활했다.

기자들의 해외취재나 기자실 운영비용을 취재원이 부담하는 관행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에 있다. 이 같은 추세에 맞추어 동아, 조선, 중앙, 한국 등 각 언론사들도 기자실 운영경비 등 취재비용을 언론사가 부담하기로 속속 결정해 취재와 관련된 비용을 취재원이 부담하던 관행이 곧 사라질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출입처 기자단 운영의 개혁의지는 다시 후퇴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출입처 기자단이 가까운 시일 안에 해체될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2000년 위원회 전문위원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조사대상 기자의 약 52%가 기자단의 존속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이다. 특히 근무경력 10년 미만 기자들의 경우 기자단이 필요하다는 응답률이 약 57%에 달했다.

이에 출입처 제도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1995년부터 우리 언론의 시스템에 팀制와 전문기자 및 대기자가 출입처 제도를 보완하는 형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 대한 보도의 실패는 언론사 자체가 자생적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自省論(자성론)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사는 박사 연구자들의 전문적인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 박사급 기자를 채용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보편화하지 못했다.

박사급 전문기자제가 한계를 보인 것은 박사의 전문성이 기자의 전문성과는 기능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기자의 전문성이란 박사와 같은 이론가적 자질을 요구하기보다는 현장의 구체성을 감지한 문제제기와 취재능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기자는 취재경험이 없는 어느 한 분야의 학위를 가진 사람보다는 기자 가운데 전문성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한국 신문의 質:정확성의 결여


그렇다면 한국 언론은 얼마나 정확할까? 2000년 위원회의 간담회에 참석한 전·현직 언론인들은 모두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정확성의 결여를 들었다. 한국 언론의 부정확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오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언론은 외국 언론으로부터 「오보체질」이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평가를 공공연하게 받기도 한다.

심지어 오보를, 취재보도 과정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라고 정당화하려는 시각마저 있다. 현역 간부 언론인은 지나치게 속보경쟁에 집착해서 구체적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을 때도 남보다 조금 앞서가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보도된다고 했다.

신문의 文體(문체)는 기사의 질을 가름하는 중요한 요소다. 신문의 문체는 간결하고 명확해야 하지만 또한 좋은 문장이어야 한다. 세계 유수의 신문들은 자기 신문의 文體가 모국어 사용의 모범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표제어 가운데 組暴(조직폭력배)과 같은 준말이나 檢心(검사의 마음), 漁心(어민의 마음)과 같은 新造語를 만들어냄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국어를 오염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데 있다.

로마자도 남용하고 있다. LC(신용장), SOC(사회간접자본), AD(조감독), SF(공상과학) 등의 로마자를 일반용어처럼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외국어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말을 만들어 쓰고 있다. 예를 들면 CM song(광고노래), leports(레저와 스포츠) 등이 그러하다.

이밖에도 「고름우유」 「공격파워」 「귀성전쟁」 「피홈런」 「홈不敗」와 같은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 「학점 인플레」 「농촌 U턴」 같은 비유적인 전문용어의 남발도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과장된 표현도 자주 보인다.

『부총리는 답변을 하면서 절대 고개를 드는 법이 없다. 탁자 위에 놓인 답변서를 낭독하는 게 전부다』의 사례에서 보듯 「절대」 「전부」 등 극단적, 총칭적 표현을 쓰는가 하면 「상당수」 「고작」 「대거」와 같은 모호한 양적 표현 등 과장된 표현도 흔하다. 문장 면에서는 긴 문장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長文은 한 문장에 여러 개념을 담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특히 사건기사, 속보성 뉴스, 경제기사 등에 많이 나타난다.


북한보도, 통일문제보도의 개선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통해 분단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지향하게 될 2000년대의 남북관계 보도, 통일관련 보도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 앞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日本 언론의 中國 관계 보도가 주는 교훈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中-日이 국교를 정상화하기 이전에 정식으로 기자를 교환한 것은 1964년이었다. 中國은 당시에 「폐쇄된 사회」가 갖는 희소가치를 최대한으로 이용, 서방측 언론을 조종했다. 中國에 非우호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사의 입국을 거부했고, 몇 가지 조건을 붙여 특파원의 常駐(상주)를 허용한 것이다. 中-日 기자교환협정에 의해 中國에 특파원을 보낸 日本 언론사는 9개사였으나 그들의 기사는 객관성도 설득력도 없었고 모든 보도가 中國 페이스였다.

1971년 林彪(임표) 공산당 부주석의 숙청설이 떠돌았을 때 그에 관한 뉴스는 日本 특파원으로부터는 한 꼭지도 없었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숙청설을 처음 보도한 AFP통신 기사를 부정하는 코멘트만 송고했다. 林彪의 실각이 사실이라면 日本 특파원들은 이 중대한 사건을 왜 송고하지 않았고, 왜 원인이나 배경을 취재, 분석하지 않았을까. 中國 당국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당시 日本 언론의 中國 보도는 日本 독자들을 오도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언론계의 경멸을 받았다. 日本의 언론비평가들은 日本 언론의 이 치욕의 역사는 기자 교환 시작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파원 파견이 이뤄진 3년 후, 특파원 3명이 文化革命(문화혁명)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추방됐다. 산케이(産經)신문은 특파원 체험담을, 「나는 추방됐다」는 제목으로 연재하려 했으나 내부의 난상토론 끝에 연재계획은 취소됐다. 산케이 기자를 포함한 기자 3명의 추방에 대해 日本 언론사의 편집국장 회의와 신문협회가 항의성명을 내려 했으나 결국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아사히(朝日)신문이 반대한 것이다.

아사히의 반대이유는 「北京특파원이 송고를 못하더라도 적어도 역사적 사실의 확인자로서, 또 후세를 위해서라도 특파원은 주재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역사적 사실의 확인자로서」라는 일견 그럴 듯한 구실은 그 후에 많은 評者(평자)들로부터 조롱을 받았다. 林彪의 실각을 中國정부의 발표 때까지 입다물고 있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의 확인자일 수 있는가, 역사에 대한 위증도 역사적 사실의 확인일 수 있는가 라고 비난받은 것이다.

문제는 南北 언론교류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北韓 보도가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데 있다. 유감스럽게도 南北 頂上회담 이후 우리 언론의 북한 보도, 남북관계 보도에서 그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北韓은 이미 韓國의 특정 언론사, 특정 언론인을 배척하고 있으며, 2000년 8월의 언론사 社長團(사장단) 방북에서 보듯이 南北 언론교류에 정부와 정치력이 개입되었고, 취재기자의 동행이 봉쇄되었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기간 중인 8월16일 서울 강남의 음식점인 삼원가든에서의 남북 가족 동석만찬을 앞두고 북한측이 그날 오후 MBC TV의 특집뉴스에 탈북자가 출연했다는 사실을 들어 만찬 불참은 물론 다음날의 일정도 치를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를 보여 MBC가 「오래 전에 기획된 프로그램이고 일부러 북한의 자극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라는 요지의 해명서를 전달해 17일 일정에 들어갔던 사실 등이 그러하다.

뿐만 아니다. 남북 頂上회담 이후 우리 언론의 남북관계, 북한 보도는 편향보도의 위험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른바 「도배식 보도」나 「냄비식 보도」를 보였다. 또 아직 추측보도가 많으며 확인보도도 게을리 하고 있다는 점도 나타났다. 이러한 정황들로 볼 때 2000년대의 남북관계 보도는 反共 이데올로기의 틀 속에서 북한을 폄하하는 부정적 접근을 해 왔을 때보다 더 어려운 문제들에 당면하게 되었다.

첫째, 남북관계 보도에 있어 「인식의 틀」을 다시 짜야 할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 언론은 1992년에 이루어진 「남북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의 취지와 정신을 남북관계 보도의 「준거 틀」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둘째, 남북관계 보도에서 보편적으로 언론이 추구해야 할 덕목들인 진실성, 객관성, 공정성과 남북의 화해, 협력, 평화, 통일이라는 兩갈래의 덕목을 두고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다. 후자의 덕목들을 일차적으로 언론이 추구해야 할 경우 언론이 추구해야 할 가치(사실 보도 등)들은 부차적인 것이 되거나 무시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정부의 對北 정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언론을 수구언론, 反통일언론으로 몰아세워 비판하거나 침묵을 강요하는 풍토는 없어야만 한다. 비판 없는 남북관계의 일사불란한 보도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넷째,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언론이 지니고 있는 기능과 역할을 북측에 이해시키는 과정은 대단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 과정에서 쌍방간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그 본질을 훼손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합의해야 옳겠지만, 우리 언론의 보편적 가치인 진실성, 객관성, 공정성에 충실한 보도, 우리 언론의 독립성 등을 포기하는 협정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한 언론의 기본가치를 양보하고 얻어내는 언론교류는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정치기사에 있어 聖域, 大選자금의 문제


우리는 민주화 이후에도 과거 권위주의 체제 고유의 문제로 여겨졌던 현상, 즉 「정치기사가 다룰 수 없는 주제와 이슈」가 존재해 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大選 자금을 포함한 정치자금에 관한 보도가 그렇다. 정치인들은 정치자금과 관련한 정보를 비밀로 남기려 한다. 또한 정치자금을 대주는 財界(재계)의 입장에서도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비자금의 조성 경로를 밝혀야 하는 책임을 안게 되므로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신력 있는 기사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객관적인 정보가 절대 부족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 나라 신문들의 정치기사들은 정치자금의 문제에 대해 주도권을 가지고 보도, 全사회적 公論(공론)을 선도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정치권이나 사법부가 내리는 결론을 단순히 옮겨 적는 데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1995년 8월 徐錫宰(서석재) 총무처 장관은 기자들과의 사석에서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한 대화 도중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이 4000억원대의 가명계좌를 가지고 있다고 발언했다. 朝鮮日報가 오프 더 레코드를 깨고 보도를 한 이후 사건이 커지면서 마침내 검찰이 사건 조사에 나서고 야당측이 본격적으로 공세를 전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검찰수사는 조기에 종결되었고 오히려 야당의 崔洛道(최낙도) 의원 구속과 亞太財團(아태재단)에 대한 조사가 실시된다. 형평성과 관련, 여야가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여야의 공방전과 관련, 신문사들은 사법부의 조사결과나 여야 간의 정치 공방전을 묘사하는 형태로 다루었을 뿐 문제가 되는 사안에 대한 독자적인 조사의 노력을 전개하지 않았다.

부정한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는 10월19일 朴啓東(박계동)의 폭로에 의해 전면에 재등장한다. 마침내 盧泰愚(노태우) 前 대통령은 10월27일 재임 5년 동안 약 5000억원의 「통치자금」을 조성, 정당운영비 등에 사용하고 퇴임 당시 1700억원이 남았다고 밝히는 對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같은 날 金大中 총재는 北京에서 자신은 지난 14代 대통령선거기간 중 盧泰愚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을 받아 선거운동자금으로 썼으나 金泳三 당시 후보는 1조원 이상 받았다고 주장함으로써 다시금 大選 자금이 公論의 場으로 나오게 되었다.

검찰은 盧 前 대통령이 재임중 조성한 비자금 중 일부를 1992년 大選 당시 金泳三 민자당 후보와 金大中 민주당 후보에게 제공했는지, 또 이와는 별도로 6共 당시 여야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는지 여부 등 비자금의 사용처에 대해 조사했으나 의미 있는 조사결과를 내어놓지 못했다.

한편 金泳三 대통령은 5·18 특별법 제정 지시 등의 (국면전환용) 방법으로 大選 자금 정국을 풀기 위한 노력을 벌이게 되자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은 大選 자금과 5·18로 분산되었다. 12월 들면서 정국의 주도권은 5·18 관련자에 대한 단죄 의지를 천명하는 金泳三 대통령에게 넘어가며, 신문 논조도 5·18 수사로 넘어간다. 12월15일 검찰은 盧 前 대통령이 민정당, 민자당에 黨운영비로 790억원을 지원해 주었다고 발표했으나 여기서도 大選 자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신문사들도 추가적으로 독자적인 조사를 전개하지 않았다.

金泳三 대통령은 1996년 1월9일 국정연설을 통해 『과거 야당시절이나 대통령이 되기까지 정치활동을 위해 후원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나를 포함한 그 어떤 정치인도 이런 잘못된 관행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大選 자금을 포함한 정치자금의 실체를 사실상 시인했으나, 事案(사안)의 초점인 盧씨의 大選 지원 자금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大選 자금 문제는 그해 4·11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함에 따라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이 시기 大選 자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계기는 오히려 신한국당의 姜三載(강삼재) 사무총장이 제공했다. 姜총장은 10월22일 한 강연에서 『과거 집권여당 사무총장은 큰 사업(국책사업)이 있으면 업자에게 주면서 100억~200억원씩 받아 黨운영자금으로 쓰기도 했다』라고 발언함으로써 한동안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국가이익의 보호에 무관심


언론이 국가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제는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다. 특히 오랜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정권의 안보를 위해 국가이익 또는 국가안보가 정권에 의한 언론탄압의 명분으로 오-남용되어 온 경험으로 인해 이 문제는 논의에서 기피되거나 배제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민주정부가 집권하고 세계시장에서 나날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국제관계나 통상협상 관련 보도에서 국가이익을 보호하는 자세가 요청되고 있으며 언론 또한 이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외국 언론의 경우 국가이익을 염두에 두고 보도하는 자세가 관행처럼 되어 있다. 日本 기자들의 3분의 2, 美國 등 서구 국가 기자들의 4분의 3이 이러한 관행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사례가 그러하다.

2000년 위원회의 간담회에서도 한국 언론이 국가이익을 의식하는 보도를 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경제부장을 역임한 중견 언론인은 그러한 사례로 반도체 가격을 둘러싼 보도를 들었다. 즉 반도체 가격이 폭락함에 따라 반도체 3社가 사전에 서로 減産(감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의를 했고, 그 뒤 가격이 올랐다고 즉각 보도했다. 美國 업체들은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담합해서 소비자 가격을 조정했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한국 언론은 외교 통상과 관련된 문제에서도 국가이익을 감안하는 의식이 부족했다.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의 예만 하더라도 협상은 농산물뿐 아니라 관세, 非관세, 섬유, 서비스, 知的財産權(지적재산권), 보조금, 무역관련 투자, 분쟁해결 절차 등 광범위한 문제를 다루고 있었으며, UR협상을 통해 자유무역체제를 강화하는 것은 세계 12권의 무역국가인 한국으로서도 바람직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언론은 「UR 태풍이 불어온다」는 식으로 농산물, 특히 쌀 문제를 집중 부각시킴으로써 균형감각을 잃고 국제적인 시각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보도를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국은 쌀 문제를 정부와 농민의 대결양상으로 몰고 가면서 막상 UR협상 타결 후의 대책을 다루는 데는 미흡했다.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경우 쌀 생산자와 쌀 소비자의 공동이익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던 日本 언론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자세로 일관했던 것이다.

국가이익과 관련된 보도에서 항상 정부와 언론 사이에 긴장을 일으키는 것이 국가안보와 연관된 국방·군사보도 문제다. 1996년 9월 북한의 잠수함 침투사건 당시 도주한 간첩을 소탕하는 작전과정에서 일어났던 우리 언론의 취재보도가 문제로 제기되었는데, 이런 일(軍 추격로 보도 등)이 재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언론의 개선을 위한 제언


(1)21세기 언론은 언론의 正道를 굳게 지켜야 한다.

언론은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통해 사회환경을 감시하고, 또한 중요한 관심사에 대해 해설을 제공해 줌으로써 의제를 설정하고, 公論權을 마련해 주는 본분을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 언론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시민의 올바른 현실인식에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 주어야 하며, 핵심적인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범람하는 개별의견의 導水路(도수로) 구실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2)언론 자유와 독립은 보장되어야 한다.

한국언론 2000년 위원회는 한국의 언론 자유가 정부의 지속적인 非공식적 통제와 날로 증대되는 大광고주의 영향력 및 언론사 소유주나 경영진과 기타 이해집단의 간섭에 의해서 제약당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또한 언론이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의 외부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자주성을 견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언론과 정치권력 및 기업과의 복합적인 연계는 언론의 독립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게 만든다.

한국언론 2000년 위원회는 언론 내적 통제요인인 소유주나 경영진의 편집, 편성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소유제한이나 편집, 편성규약의 제정을 위한 법제화에는 반대한다. 신문사 지배주주의 소유지분 한도를 정하는 입법은 「과잉금지의 원칙」을 충족시키기 어려우므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유주나 경영진이 종사자들의 양심에 반하는 부당한 간섭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는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언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라야 한다.

한국언론 2000년 위원회는 언론의 자유가 이윤창출을 위한 언론기업의 자유로 誤用(오용)되고, 이를 위해 봉사하는 언론인의 자유로 남용되는 오도된 언론 풍토를 개선하여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의 공익추구를 위한 사명감으로 돌아가기를 권고한다.

(4)보도와 비판의 聖域(성역)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언론 2000년 위원회는 우리 언론계에 보도와 비판하기 어려운 聖域이 존재한다는 데 주목한다. 이는 언론이 스스로 검열을 행하는 행위로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언론 자신이 훼손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배신하는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언론은 보도와 비판에서 언론 스스로 私檢閱(사검열)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5)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한국언론 2000년 위원회는 언론기업에서 시장경쟁의 원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하고 언론기업의 부당 거래 행위는 물론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거나 誤用하는 행위 등을 배제하기 위해 경영의 투명성 확보가 선결과제라고 판단한다. 신문경영의 투명성, 공정성 확보를 위해 발행 부수 공시제도(ABC)가 하루 빨리 실시되고 정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6) 언론인의 직업윤리의 提高 위해 자율적 규제장치를 강화해야만 한다.

한국언론 2000년 위원회는 현재 한국 언론인의 직업윤리의 해이가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 직업윤리의식을 높이기 위해 언론 유관단체의 합의로 강력한 자율적 규제 장치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개별 언론사들이 자체 심의기능을 강화하고 독자의 불만을 처리할 장치를 만들어 시행할 것을 권고한다. 그리고 언론인이 입사할 때 윤리강령과 그 실천요강을 준수할 것을 서약하도록 하고, 만약 위배時 그에 해당하는 불이익을 지체없이 부과해야 할 것이다.

(7)지나친 선정주의적 속보경쟁은 자제하여야 한다.

(8) 남북관계 보도, 북한 보도 자세는 바르게 정립되어야 한다.

2000년 위원회는 남북관계 보도와 북한 보도에 있어서 새로운 자세 정립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통일이 궁극적인 목표지만, 지금은 통일을 강조하기보다 화해와 협력을 통한 남북한 평화구조의 정착을 보도하는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둘째, 북한의 체제와 사고방식 및 생활양식을 이해하는 보도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북한의 실상을 바로 보고 보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공산주의 언론제도가 요구하는 보도관행과는 전혀 다른 한국 언론의 보도관행을 북한 당국이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초래되는 갈등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더라도 한국 언론은 자유 민주주의 언론제도의 관행에 충실하여야 한다.

넷째,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는 보도자세가 요청되지만 그 방법과 수단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야 하며, 公論權을 통해 국민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언론이 기여해야 한다. 이러한 기능 수행에 있어 당연히 정부의 對北 정책에 대한 비판도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의 對北 정책에 대한 국민의 동의 수준이 높다는 점 때문에, 또는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우려 때문에 對北 정책을 성역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對北 정책에 대해 언론으로 하여금 동조하기를 강요하는 집단압력이 있어서도 안 된다. 2000년 위원회는 화해와 협력의 지향성으로 인해 남북관계 보도나 북한 보도에서 언론이 또 다른 편향성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남북관계 보도나 북한 보도에 있어 무엇을 보도하고 안 할 것인가의 선택은 전적으로 언론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 이 점을 새삼 강조하는 까닭은 그러한 선택의 판단이 북한 당국의 요구에 좌우되는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지향성과 사실보도는 엄격히 구별해야 할 것이다.

(9)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언론에 대한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언론 2000년 위원회는 민주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언론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면서 정부는 언론에 대해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10)정부기관지는 없애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언론제도에서는 정부 기관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 2000년 위원회는 대한매일신문은 민영화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대한매일을 정부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공약 가운데 하나라는 점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11)시민사회는 언론에 대한 꾸준하고 애정 있는 감시를 지속해야 한다.

언론이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고 그 권력을 오용하고 남용하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하며, 그 일은 언론 소비자인 시민사회의 몫이기도 하다. 따라서 언론에 대한 꾸준하고 애정 있는 강력한 사회적 감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에 의한 사회적 감시는 합법적 절차와 합리성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어떠한 물리적 힘의 사용도 배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