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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評] 古典과 現代 픽션의 對決

정순태   |   2003-03-03 | hit 3915

『진시황이 통일천하를 꿈꾸던 2000년 전…그들이 있었다』

『중국 무협사상 최고의 영웅을 맞이하라!』

거장 張藝謨(장예모) 감독의 중국무협영화 「英雄」의 선전문구다. 秦始皇(진시황)을 제거하려 했던 자객―바로 이 대목에 귀가 솔깃했다. 필자에겐 司馬遷(사마천)의 史記 刺客列傳(자객열전)의 등장인물들 중에서 진시황을 노렸던 荊軻(형가), 특히 그의 知己들이 가장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중국 戰國時代(전국시대)의 종착역이 보이던 기원전 222년, 燕(연)나라의 태자 丹(단)은 조국의 멸망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아니 그보다도 골수에 사무친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秦王 政(정:훗날의 秦始皇)을 죽여야만 했다.

태자 丹과, 秦의 별볼일 없던 王孫 政은 한때 趙(조)나라에서 인질의 설움을 함께하면서 情(정)을 나누던 벗이었다. 그러나 그후에 둘은 격렬하게 갈라져 不俱戴天(불구대천)의 원수가 된다.

政의 아비 子楚(자초)는 어느 날 갑자기 본국 秦으로 귀환하여 서열을 몇 단계 뛰어넘어 왕위에 올랐고, 그리고는 곧이어 病死(병사)한다. 드디어 戰國七雄(전국칠웅) 중 최강국 秦의 왕좌는 政의 차지가 된 것이다.

약소국의 태자 丹은 이번에는 秦의 인질이 되어 秦王의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弱肉强食(약육강식)의 신봉자 진왕은 냉혹했다. 丹은 짙은 배신감에서 이를 갈며 秦을 탈출하여 산 넘고 물 건너 본국으로 도망쳤다.

귀국 후 丹은 진왕을 제거할 만한 자객을 물색했다. 왕년의 협객 田光이란 인물이 그와 절친한 젊은 협객 荊軻를 천거했다. 이어 田光은 형가를 찾아가 태자 丹의 말을 따르라고 간곡하게 설득한 뒤, 암살작전의 비밀을 지킨다는 일념으로 그 자리에서 자결함으로써 젊은 후배를 격동시킨다.

형가가 진왕을 알현하려면 두 가지 禮物(예물)이 필요했다. 하나는 진왕이 탐내는 지금의 北京 일대의 땅을 할양하겠다는 뜻으로 그 地圖(지도)를 헌상하는 것, 또 하나는 진왕이 가장 증오하는 樊於期(번어기)의 목을 잘라 바치는 것이었다. 번어기는 진왕의 逆鱗(역린)을 건드려 홀몸으로 燕나라로 도망쳤지만, 그 일족이 모두 참수당한 비극의 망명장군이었다.

형가로부터 진왕 제거계획을 들은 번어기는 대번에 그 자신의 칼로 스스로 목을 쳐 형가의 壯途를 응원했다. 형가는 번어기의 머리를 들고 지도 속에 猛毒을 묻힌 비수를 감춘 채 진왕을 알현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최후의 순간, 간발의 차이로 비수가 빗나가는 바람에 知己들의 피에 보답하지 못하는 痛恨을 남기고 경호군사들에 의해 난도질당했다.


진정한 英雄을 秦始皇으로 설정한 속셈

張藝謨 감독의 「영웅」은 형가 傳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겠지만, 스토리 전개는 완전 픽션이다. 진왕의 목을 노린 4人의 자객이 전개하는 의리, 사랑, 자기희생을 담은 데다 「天下觀」을 둘러싼 격렬한 갈등까지 가미하여 블록버스터를 지향한 무협활극이다.

결국 破劍(파검: 梁朝偉 扮)은 진왕을 죽일 수도 있던 막바지 순간, 「天下」를 위해 진왕의 목에 칼자국만 내고 스스로 「동작 그만」의 브레이크를 걸었고, 10步 거리 必殺(필살)의 검객 無名(무명: 李連杰 扮)도 진시황에 다가섰으나 역시 破劍이 「天下」를 위해 택했던 길을 답습하고 말았다.

無名이 진왕 암살을 스스로 포기하고 등을 돌릴 때 3000명의 경호대 병사들이 無名을 둘러싸고 내지르는 『따왕, 쓰 뿌쓰』(大王殺不殺: 폐하, 이 자를 죽일까요, 말까요)라는 엄청난 볼륨의 함성이 관객을 압도한다. 드디어 無名은 메뚜기떼처럼 날아드는 화살 소나기의 표적이 되어 쓰러지고 만다. 無名에 대한 秦王의 恩典은 「영웅 칭호」 下賜와 國葬을 베풀어 준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무협영화가 강조하고 싶은 진정한 영웅은 온 天下를 피로 물들이며 一統한 秦王, 즉 秦始皇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지도자에게 복종하라』는 全體主義 이데올로기의 거대한 합창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중화인민공화국의 아버지 毛澤東은 2000년에 걸친 역사적 평가와는 정반대로 秦始皇에 대한 예찬론자였다. 그런 그는 文化革命 기간을 통해 철없는 紅衛兵을 부추겨 수천만 명을 때려 죽이고 굶겨 죽였다.

「영웅」은 무협영화로는 재미있다. 제작비가 4000만 달러나 투입되었다고 하지만, 中國이 아니면 불가능할 만큼 스케일이 크다. 엄청난 사람과 戰馬(전마)를 동원, 화면을 꽉 채운다. 촬영기법도 훌륭하고 환상적이다. 영화 중에 나오는 馬車나 군복도 秦始皇의 廬山陵(여산릉)에서 출토된 그것과 모습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영웅」은 설 극장가에서 관람객 동원 제1위를 기록했다(2월1∼2일 조사). 그러나 그것은 張藝謨 감독의 기대처럼 블록버스터의 반열엔 오르지 못했다.

이제 우리나라 젊은 관객들에게도 「목에 힘 주는 영화」나 「피아노줄 活劇」에는 좀 면역이 된 것 같다. 필자에겐 차라리 史記의 자객列傳을 巨匠(거장)의 솜씨로 脚色(각색)했다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감동적인 名畵(명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