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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썼다」는 조선족 형제의 한국인 비판書 비판

정순태   |   2003-03-03 | hit 4956

1999년 9월 일본에서 「한국민에 고한다」(출판사: 東京 소재 祥傳社)라는 책이 발간되어 일본인 독자를로부터 꽤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은 「在日(재일)한국계 중국인 형제에 의한 통곡의 조국 비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내용은 「조국을 생각한다」는 자락을 깔고 「낯뜨거운 한국의 치부」를 폭로 비판한 것이다.

저자는, 1962년 중국 요녕성 심양에서 출생하여 동북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요녕교육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중 1991년 일본에 유학, 1994년 同志社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히로시마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한 후 현재는 韓·中·日(한·중·일) 비교문화 및 인류학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소개된 金文學(김문학)씨와 함께 일본에 유학한 그의 동생 金明學(김명학)씨이다.

그러나 이 책은 공동집필이라기보다는 金文學씨의 단독집필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한국민에게 고한다」는 책과 내용이 거의 비슷한 「한국인이여 상놈이 돼라」는 題名(제명)의 책이 작년 8월에 金文學씨의 단독 저서로 국내에서 발간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국내에서 발간된 「한국인이여 상놈이 돼라」는 국내 독자의 정서를 고려한 듯 한국인에 대한 매도의 정도도 다소 부드럽다. 목차의 순서도 좀 다르다.

「한국민에 고한다」의 내용을 보면 「(한국의) 아버지를 죽여야 가정이 산다」 「한국은 유교주의의 노예민족」 「김치가 절대로 세계적인 식품이 될 수 없다」는 등 사뭇 도발적이며 자극적이다. 제목만 보아도 그렇다.

「어른의 나라 日本, 아홉 살짜리 아이들의 나라 韓國」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없는 이유」 「재능의 발휘를 저해하는 획일적인 문화풍토」 「北京의 골프장은 한국인 출입금지」 「자기는 머리가 좋다고 으스대는 바보들」 「남에 대한 격렬한 차별」 「화교가 없는 세계 유일의 나라」 「美人이 아니면 백안시당하는 사회」 「중국 조선족에 대한 믿기 어려운 학대」 「자기 비판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 나라」 「김포공항 입국심사대의 무례함」 「왜 다리가 내려앉고 백화점이 무너지는가」 「기술자를 냉대하는 한국의 풍토」 「문화국민으로 자찬하는 不可思議(불가사의)」 「중국의 호텔에서 본 한국인의 추태」 등으로 한국에 대한 비판보다는 독설에 가깝다.

이 책의 비판 혹은 독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 스스로도 자주 거론하는 것이긴 하지만, 한국인에 잔뜩 실망한 조선족 3세가 「한국인에게 맞아 죽을 각오로 썼다」고 하고 이에 대한 일본인 독자들의 관심도 비상한 만큼 밖에서 본 오늘의 한국인을 점검한다는 차원에서라도 그 본문 내용을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음은 주요 내용.


한국인이 중국인에게 구타당하는 까닭


▲돼지우리 속에 갇힌 한국은 우리야말로 세계 제일의 우수한 민족이라는 한민족 중심주의에 빠져 고도의 자신감과 우월감에서 세계를 보려고 한다. 최근 한국에서는 한민족이 고대 유라시아 대륙에 대제국을 세웠다, 중국의 한자도 사실은 우리 민족이 처음 창제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마저 나타나고 있다. 孔子(공자)도 한민족이고, 秦始皇(진시황)도,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도 한민족이라고 떠드는 사람도 있다. 「21세기는 한반도의 세기」라고 큰소리 치는 지식인도 적잖다.

▲한국 지식인들이 한국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소리 높이 찬미할 때 구사하는 상투적인 수법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경시한 다음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다.

▲중국인에게 구타당하는 한국인을 나도 몇 번 목격한 일이 있다. 몇 년 전 술집에서 조선족 아가씨에게 100달러짜리 지폐를 자랑스레 내보이며 「너희들 중국인들은 100달러짜리 미국 돈을 본 적도 없지」하고 으스대던 서울 남자가 내 친구에게 얻어맞았다. (중략) 내 친구가 서울 남자를 밖으로 끌어내니까 주위에 있던 중국인들도 몰려들어 발길질을 했다.

▲심양의 조선족 거주지역에서 조선족 남자 두 명에게 피 터지게 구타당하고 개처럼 끙끙거리며 도망치던 한국인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 입국할 수 있는 초청장을 마련해 준다는 구실로 여러 차례 조선족의 돈을 사기해 먹은 것이 드러나 목덜미를 잡힌 것이다. 그때 바로 내 옆에 있던 경찰관 친구에게 왜 가만히 있느냐고 물으니 『저런 한국놈은 맞아 죽어도 싸다. 이런 일은 늘 있기 때문에 경찰도 귀찮아 보고도 못 본 척한다』고 대답했다.

▲조선족의 수도라고 일컬어지는 延吉(연길)에서의 일이다. 부산 사람이 혼자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곁에 하나도 아닌 조선족 젊은 여자 둘로부터 시중을 받고 있었다. 물론 술 상대뿐만 아니라 그녀들의 가슴과 궁둥이를 싫도록 만진 것은 물론이다. 뽐내며 술을 마시면서 이 남자는 자기 집은 부산에서도 열 손가락에 들 정도의 부자로서 자가용차도 5대로 모두 외제라고 자랑했다. (중략)

그런데 이처럼 3시간 가까이 술을 마신 뒤에 팁으로서 건넨 돈이 얼마인가 하면 1인당 한국돈 1000원이었다. 중국 위안으로 치면 7~8위안 정도인데, 중국에서 팁은 보통 50위안 이상이 상식이다. (중략) 그녀들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지폐를 갈갈이 찢어 남자의 얼굴을 향해 그것을 내던졌다. 그 술집 주인과 그의 친구들이 그렇게 심하게 중국인을 바보로 만든 한국인, 그것도 超노랭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몰려들어 그 부산 놈의 멱살을 잡았다. 그후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언제 어디서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큰소리로 떠들고, 화내기를 밥 먹듯하고, 욕을 무의식적으로 달고 다니고, 자기 집 안방처럼 방약무인의 난폭한 행동을 일삼는 한국 남자들을 무슨 신사라 하겠는가.


成形수술해야 할 것은 한국인의 의식구조


▲처음 명동에 나갔다가 여자들의 진한 화장을 보고 물장사를 하는 일본 호스티스의 모습이 여기선 일반화되었구나 하고 혀를 찬 적이 있다. (중략) 한국 여성의 「美에 대한 집념」은 참으로 눈물겹다. (중략) 그러니 얼굴에 자신 없는 여자가 성형수술을 하는 것쯤은 별스런 일이 아니다. 미인이 아니면 백안시하는 사회, 얼굴이 예뻐야 대접을 받는 나라 한국. (중략) 지금 성형할 것은 여성의 얼굴이 아니라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가치관, 그리고 한국사회다.

▲한국에만 있는 흥미로운 일이 있다. 대통령이 새로 취임할 때마다 대통령 문장이 새겨진 시계가 항간에 나도는 모양인데, 그런 손목시계를 자랑하는 친구를 여럿 보았다.

▲IMF 사태가 터지고 난 뒤 쏟아지는 실업자들도 얼마든지 육체노동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체면 때문에 못한다는 것이다. 외국 노동자, 중국 교포들이 한국의 3D 업종을 도맡아 하고 있지 않은가. 지독한 체면 차리기와 지독한 게으름, 이것이 오늘 한국 사회의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이다.

▲서울에서 만난 중국 신문기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지금(IMF 사태 당시) 한국인의 정신상태는 옛날 식민지 시대의 모습과 너무 유사합니다. 한국인은 일이 잘될 땐 극도로 自高自大(자고자대)하고 일이 잘 안 될 땐 극도로 자포자기하지요. 한국인에게는 극단적인 성격말고는 중국인과 같은 중용적 이원론이 없습니다』 (중략)

중국에서 자란 젊은 기자가 한국인을 이렇게 예리하게 본 데 대해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중략) 한국인에게 신바람이 식으면 흐늘흐늘 무기력한 지렁이가 되기 십상이다.


아버지가 죽어야 韓國이 산다


▲유교의 고질병에 걸린 (한국의) 아버지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개성을 충분히 살릴 수 없으며 한국 사회의 창조력은 키워질 수 없다. 孔子가 죽어야 한국이 살 수 있다고 외치기 전에 우선 아버지가 죽어야 한국이 살 수 있다고 외치고 싶다.

▲한국인들이 일본 문화를 논할 때 이구동성으로 하는 판에 박은 말이 있다. 「일본 문화는 원래 독창적인 것이 없고 모방하여 여기저기서 좋은 것만 따오는 문화」라며 아류의 문화, 저속하고 무절제한 별볼일 없는 문화로 비하시키기 일쑤다. 이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문화의 원리와 체질을 잘 모르는 일면이 있다고 본다. (중략) 그렇다면 나는 한국인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들은 왜 좋은 것은 못 따오고 나쁜 것만 따왔는가?』

▲마늘 냄새가 한국의 국제화를 막는 장벽이라 해도 좋다. 마늘을 즐겨 먹고 김치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사는 완고함이 국제화 시대를 사는 한국인의 세계화 의식을 막아버리고 있는 것이다.

▲여러 해 전 월드컵 축구 아시아권 진출전에서 한국팀이 일본팀에게 완패하자 온 나라 안이 들끓었다. 「이건 나라 망신도 엄청난 나라 망신이다」 「제2의 일제 식민지 시대와 같이 일본에게 당했다」 운운하면서 한국이 떠나갈 듯했다.

▲방방곡곡에 범람하는 태극기, (버스의) 차창에 붙은 태극기를 바라보면서 나는 중국의 문화혁명 시절을 떠올렸다. (중략) 한국인에게 한 가지 묻고 싶다. IMF 국난이 터진 다음에 급기야 태극기를 범람시키면서 애국, 애국, 제2의 건국 하고 떠드는데 그럼 그전에는 다들 무얼 했는가.

▲한국에 갈 때마다 뉴스 보기가 무섭다. 매일같이 대형 교통사고요, 가스폭발사고요 하면서 크지도 않은 땅덩어리에 반갑지 않은 소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빨리빨리를 서두르니 세계 교통사고 제1위를 기록하는 상황도 나름대로 이해가 간다.

▲전여옥씨는 「일본은 없다」는 책에서 일본인을 대신하여 한국을 욕하는(在日 한국인 유학생으로 「치맛바람」의 저자인) 吳선화씨를 치어걸처럼 일본인에게 이용당하고 있고, 결국 그 옛날 일본이 군국주의와 군대의 사기를 위해 강제로 끌어와 하수처리장 역할을 강요한 종군위안부와 같다고 지적했다. (오선화씨는) 渡日(도일) 8년 만에 「치맛바람」을 집필하여 일약 베스트 셀러 작가로서 浮上(부상)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에 의해 탄생된 최초의 공정한 그의 책이 한국인론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나도 (중략) 객관적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꼬집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노벨상에 대한 한국인의 콤플렉스


▲한국인의 노벨상 콤플렉스는 실로 대단하다. 마치 받아야 마땅한 것을 못 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지식인이 많다. (중략) 나는 서울의 교보문고에 들어설 때마다 야릇한 분위기를 느끼곤 한다. 정문에 들어서면 통로 양쪽에 세계의 역대 노벨 수상자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그런데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브로 등 40개의 초상화 가운데 얼굴 없는 액자가 덜렁 걸려 있다. 그 밑의 글이 흥미롭다.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래의 한국인 수상자를 위해 특별히 비워놓는다는 설명이다. 나는 그 얼굴 없는 액자의 설명을 보면서 가볍게 웃곤 한다.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이 생각나서다. (중략) 획일적이고 고정된 「틀의 사회」에 갇혀 자유분방한 환경이 없는 한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인은) 일본을 의식하지 않으면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 될 정도로 일본의 일거일동에 신경을 쓴다. 결국 정신적인 事大(사대)의식을 스스로 만들어 일본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눈치를 보고 반응을 보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우리나라가 이제 몇 년만 있으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나는 한국에서 늘 이 질문 아닌 질문을 듣는다. (중략) 한국의 이런 일본 따라잡기 의식에 편승해 일본인이 쓴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라는 책도 나와 한국인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않았는가.

▲서울에서 모 회사 부장한테 들은 말이다.

『IMF 때문에 기름 값도 올라 차 굴리기가 힘들다. 하지만 차를 안 쓰자니 남들도 다 타고 다니는데 체면이 안 설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잘 아는 일본의 한 회사 사장은 불경기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자가용을 세워두고 줄곧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는 말을 해주었더니 그 부장은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어떻게 자전거로 회사에 나갈 수 있느냐, 창피해서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사모아 어장에 출어하는 한국 어선에 승선한 중국 조선족 선원 李씨는 갑판장으로부터) 『혹시 암캐 항문에서 빠져 나온 거 아냐』라는 모욕을 받았다.

갑판장은 이어서 머리를 맨주먹으로 마구 치며 구타를 가했다. (중략) 이같은 조선족 선언들에 대한 폭설과 폭행, 죄인 취급은 하루도 빠짐없이 행해졌다. (중략)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선상반란자라는 누명을 쓰고 사모아 경찰소에 구류될 처지로 전락한 조선족 선원들. 이미 쌓인 빚더미에 1인당 20만 위안의 손해배상까지 첨부되었으니 3代를 내려가도 못 갚을 거액의 빚만 떠안았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우리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선장을 죽이고 죽자』

조선족(6명)은 이성을 잃은 야수가 되어 뒤를 생각할 여유를 잃었다. 결국 그들은 선장과 갑판장을 비롯한 11명(한국인)을 살해했다. (중략) 한국 법원은 여섯 명의 조선족 전원에게 사형을 판결했다. 이 동족 살해사건과 판결 소식이 조선족 사회에 전해지자 200만 조선족 사회는 분노에 떨었다.

▲이제 중국 조선족과의 관계에서 한국이 심각한 피의 교훈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와 있다. 200만 동포도 포용 못하는 한국이 북녘의 수천만 동포를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어 있는가. (중략) 지금도 (한국에서 막노동을 하며 갖은 멸시와 폭행을 경험한) 어느 조선족의 말이 너무나 선명하게 귓가에 울린다.

『한국놈아, 네 얼굴에 침을 뱉으마!』


왜곡·과장·저주, 그러나…


「한국민에 고한다」를 읽으면 곳곳에서 심한 과장과 왜곡을 느낄 수 있다. 예컨대 박사학위를 10여 개나 가진 한국 사람을 몇 명이나 만났다는 대목, 모 회사 부장이 순전히 체면 때문에 자전거 출퇴근을 하지 못한다는 대목, 새파랗게 젊은 중국 신문기자가 일제 식민지 시대의 서울과 IMF 사태 당시의 서울 표정이 똑같다고 코멘트한 사실에 동의한 대목 등에서 그러하다.

이런 경우를 보면 저자는 한국의 실정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매우 자연스럽지 못한 작위성도 엿보인다. 세계 어느 사회에도 저질 인간은 있게 마련이고, 그들이 그 사회나 나라의 대표성을 가질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적시된 사례들이 한국 사회의 일부 현상으로서 개선되어야 할 점이거나 한국인 다수가 반성해야 할 대목도 없지 않다. 또한 오늘의 중국 조선족이 한국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자료로서의 의미는 있다.

이 책에 대해 저자는 「어디까지나 내가 모국인 한국 사회를 객관화시켜 바라본 思考(사고)의 산물」이라고 주장했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그는 G7의 반열에 오른 일본과 비교해 한국의 후진성을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건국 이후 50년간에 이룬 한국의 성취도 결코 평가절하될 수 없는 것임을 저자는 애써 무시하고 있다.

그는 처음부터 대한민국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반감을 가진 사람인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조국」이라고 일컫는 나라의 국호를 「大寒民國」이라고 훼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왜 그런 정서를 갖게 되었는가? 나는 조선족 어린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의 내용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확인한 조선족 초등학교의 교과서를 보면 特務(특무:기관원)들의 감시를 피해가며 反체제 운동을 하는 「남조선」 학생들의 행위를 찬양하거나 6·25 전쟁 때 중공군 병사의 「영웅적 전투」를 칭송하는 등의 내용이 많다. 거기서 대한민국은 그들에겐 「조국」이 아니라 절대적인 敵國(적국)이다. 그런 책을 배우며 성장한 조선족이 한국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평안도 출신의 조선족 3세라는 필자에게 「조국」이라면 대한민국이기보다는 으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차원에서 외국인으로서 그의 한국 비판은 그의 자유이나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비판」 운운은 너무 상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