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한국의 50大 기업인 6位 辛格浩 롯데그룹 회장

정순태   |   2003-02-17 | hit 2071

1997년 11월, 우리나라 경제가 IMF 구제금융 체제로 접어든 이후 언론에서 「위기타개의 1번 타자」, 즉 최강의 기업인으로 지목한 인물이 롯데 辛格浩(신격호) 회장이다. 그의 內實(내실) 위주 경영철학과 꾸준한 外資(외자) 유치가 국가적 부도 위기를 맞고서야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辛格浩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잘 모르는 사업을 확장 위주로 경영하면 결국 국민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고객이든 협력업체든, 롯데와 거래하면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아야 한다』

롯데그룹은 1999년 말 부채비율이 90% 이하로 예상될 만큼 국내 50대 그룹 가운데 가장 튼튼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辛회장은 우리나라 식품산업, 유통산업, 관광산업의 선진화에 선도적 역할을 해낸 기업인이다.

辛회장은 19세의 나이로 단돈 83엔을 호주머니에 넣고 일본으로 건너가 남다른 열정과 창의력으로 일본 제1의 식품기업을 일으켰다. 이어 韓日(한일) 국교가 재개된 1967년, 그는 서울역 앞에 롯데제과를 설립함으로써 母國(모국) 투자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총 50억 달러에 이르는 외화를 국내에 들여 왔다. 그리고 투자금액에 대한 단 한푼의 果實送金(과실송금) 없이 그 원리금 모두를 모국에 재투자함으로써 지금 롯데는 매출액 부문에서 재계 9위의 기업군으로 자리잡고 있다.

「辛格浩 경영학」은 자신 있는 업종을 선택해 이를 전문화·집중화시켰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그는 일단 시작한 사업이 同種(동종) 업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다른 분야를 엿보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時流(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기업가임을 증명해 주는 대목이다. 자기류의 고집이 없는 사람은 결코 제1류가 될 수 없다.


弱者가 最强으로 등장한 逆轉 드라마


현재 롯데는 백화점·마그넷 등의 유통부문, 제과·음료 등의 식품부문, 호텔·테마파크 등의 관광산업부문 등 주력 회사들이 모두 그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롯데의 경쟁력은 시장개방과 함께 물밀듯 몰려오고 있는 巨大(거대) 다국적기업에 맞서 국내시장을 지켜내는 보루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호텔롯데, 롯데월드, 롯데리아 등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순수 국내 브랜드 업체로서 同種 업계의 다른 업체들과는 달리 외국에 로열티를 전혀 지급하지 않는다.

辛格浩 회장은 1922년 10월4일 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끼니를 걱정하는 농가의 5남5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일제 치하에서 배움에의 열망을 불태우던 청년 辛格浩는 1941년 잇단 흉년의 위기에서 무단가출이란 비상한 결단을 내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 우유 배달과 막노동 등으로 고학생의 생활을 했다.

辛格浩 청년은 작가 지망생이었지만, 문학으로선 밥을 먹을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인생의 진로를 바꿔 와세다고등공업학교 화학과에 입학했다. 高工 재학중의 그를 눈여겨 보아온 하나미쓰(花光)란 일본인 투자자의 출자로 그는 1944년 커팅오일(선반용 기름) 제조 공장을 세움으로써 기업경영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장을 본격 가동해 보지도 못한 채 미군기의 공습을 받아 공장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었다. 8·15 해방을 맞았지만, 그의 자존심과 오기가 빈손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물자부족 시대의 東京(도쿄)에서 그는 포마드, 크림 등 화장품 제조업으로 재기하여 1년6개월 만에 하나미쓰로부터 빌린 돈 6만 엔을 모두 갚고 보은하는 뜻에서 집 한 채를 사주었다. 그의 恩人(은인) 하나미쓰 노인은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미군 점령시대의 일본에서 그는 가장 미국적인 상품인 껌을 만들어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다.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는 「입 속의 연인 롯데 껌」이란 自作(자작)의 카피에서 보이는 번뜩이는 아이디어, 신뢰와 성실로 끊임없이 도전하여 일본 제1의 추잉껌 메이커로 우뚝 섰다. 그 과정에서 동종 업계의 톱이었던 하리스와의 商戰(상전)은 아직도 유명하다.

원래 하리스는 成人(성인) 대상의 板(판)껌, 롯데는 아이들을 고객으로 삼는 풍선껌을 만들었는데, 롯데가 板껌 시장에 참여함으로써 격렬한 시장 쟁탈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6년간에 걸친 추잉껌 전쟁의 결과는 롯데의 KO 승이었다. 하리스는 껌 베이스(원료)로 합성수지를 썼던 반면 롯데는 세계 최고인 멕시코産 천연치클을 사용함으로써 품질 고급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후 辛格浩 회장은 초콜릿, 캔디, 청량음료, 아이스크림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일본 제1의 종합 과자 메이커로서의 지위를 확보했다.

韓日(한일) 국교정상화 직전, 그는 당시의 경제기획원 장관 張基榮(장기영) 부총리로부터 모국 투자의 권유를 받고 제철소 건설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중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국가 기간산업인 제철·제강 사업을 국영으로 추진하기로 방침을 갑자기 변경했다. 이에 따라 그는 제철소 건설의 주역을 朴泰俊(박태준)씨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는 일본에서 성공한 제과 업종을 갖고 母國에 유턴했다. 한국 식품 산업의 발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역할은 품질의 세계화와 유통체제의 개선이다.


『정열을 갖고 한다면 뭐든지 가능하다』


롯데그룹은 국내에 28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연간 매출액은 9조5천억원 규모로서 식품부문이 3분의 1, 백화점 등 유통부문이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유통부문은 경기 변동에 민감한 반면 식품부문은 불경기와 호경기가 가장 늦게 반영되는 업종이다. 이런 업종 구성에 의해 롯데그룹 특유의 安定(안정) 경영이 가능했다. 지금은 국내 5대 재벌, 30대 재벌 그룹 중에서도 워크아웃(기업 개선작업) 및 퇴출 기업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롯데의 계열사들 중에는 퇴출 기업도 없고, 종업원들의 일자리를 빼앗지도 않았다.

그는 韓日 양국에서 50개 기업을 움직이는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世界人(세계인)이다. 그는 韓日 추잉껌 시장에서 7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 시장에선 세계 제1의 껌 메이커 리글리를 제압하고 30%를 장악했다. 일본 롯데그룹은 종합 과자 메이커 (주)롯데를 비롯한 22개 계열사로 구성되어 있다. 매출액은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에 비해 6 대 4의 비율로 우위에 있지만, 일본 롯데는 아직도 한국 롯데의 젖줄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1988년 辛格浩 회장의 개인재산을 60억~80억 달러로 추정했다. 일본의 땅 값과 엔화가 동반 상승했던 시기에 그는 세계 제4위의 부호로 랭크되기도 했는데, 그후 세계 순위에서 기복이 있었지만 한국 제1의 부자인 것만은 부동이다. 이같은 「辛格浩 다이너스티」의 형성은 그가 특히 東京 일대에 수백만 평의 땅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일찍이 껌을 팔아 돈이 모이면 농가의 아들답게 東京 변두리 땅을 형편 닿는 대로 사들였는데, 이것이 東京 시역의 확장으로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

辛格浩 회장은 78세의 고령임에도 아직 정열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무엇이라도 정열을 갖고 한다면 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요즘 그는 아침 7시에 기상하고, 40~50분 정도 가벼운 체조를 한 뒤 냉수와 온수의 욕탕에 5~10분 정도 들어간다. 이같은 냉온수욕을 매일 2~3회 반복한다. 그리고 매일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7시에 귀가하는 규칙적 생활을 하는 데 마음을 쓴다고 한다.


「롯데월드」, 세계에 심겠다


그가 21세기 산업으로 주력할 부문은 호텔, 테마파크 등의 엔터테인먼트 및 관광 산업이다.

『서울의 롯데월드에는 손님들이 평일에 16만명, 일요일에는 40만명이나 오고 있어요. 단순한 백화점, 슈퍼마켓에는 이만큼 사람이 모이지 않습니다. 신세대는 장 보러 가고, 미용실에 가고, 거기다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때로는 운동을 하거나 영화나 연극을 보는 것이 한 장소에서 이뤄지기를 바랄 겁니다. 그래야 시간도 절약하고, 주차난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롯데월드는 이런 기능성과 편리성이 있는 곳입니다. 최근 외국, 특히 동남아 관광객이 부쩍 많이 찾아오는데, 「우리들에겐 롯데월드가 디즈니랜드보다도 더 갖고 싶은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는 잠실 제2롯데월드와 부산 제2롯데월드뿐만 아니라 東京 롯데월드의 건설도 추진중이다. 東京 롯데월드는 일본 제1의 쇼핑몰에다 스포츠와 시네마 콤플렉스 등을 갖춰 「꿈의 나라」로 만들 계획이다. 그는 롯데월드 사업을 미국, 유럽, 동아시아 등 세계로 넓혀 가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辛회장은 우리나라 관광산업을 미래의 고부가가치 전략산업으로 자리잡게 했다. 관광산업이 주목받지 못하던 1970년대부터 미래를 내다보고 월드 스케일의 호텔롯데를 독자적인 힘으로 건설, 관광한국의 본격적 출발을 선언했던 것이다. 이어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 롯데월드를 세워 미래 전략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관광산업은 외화가득률이 90%에 이르는 알짜배기 산업이지만, 투자 회수율이 낮으며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분야다. 선진국들은 관광산업의 중점적인 개발과 아울러 정책적 지원을 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부지 확보와 투자 재원 조달의 어려움, 낮은 수익률, 운영 노하우의 미숙 등으로 민간투자가 저조한 데다 산업정책의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려 거의 불모지와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이를 극복했다.

辛회장은 관광산업과 관련한 공로가 인정돼 1995년 기업인에게 주는 국가 최고 서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현재 3천 객실과 40개의 연회장을 갖춘 호텔롯데는 1998년의 경우 51만명의 외국인이 투숙했다. 롯데월드는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는 서울의 명소로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손님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조사되었다.

辛회장의 취미는 아마 5단 실력의 바둑이다. 골프는 핸디 12 수준이었으나, 요즘은 핸디 18에 自足(자족)하고 있다. 그는 일본인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의 사이에 두 아들과 두 딸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