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기사

[書評] 삼국지 강의 1·2권 (易中天 著 / 김영사 刊)

「삼국지」를 바르게 알게 하는 지침서

글 정순태 기자  200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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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貫中(나관중)이 지은 소설 「三國演義(삼국연의)」를 실제 역사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저자 易中天(이중천) 厦門大 교수는 「三國志(삼국지)」, 「後漢書(후한서)」, 「資治通鑑(자치통감)」과 「삼국지」에 대한 裴松之(배송지)의 注 등 검증된 正史와 사료를 통해 「삼국연의」의 오류를 지적했다. 먼저 「삼국연의」에 묘사된 인물들의 품성 및 업적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수정했다.

曹操(조조)는 꾸밈이 없었다. 그의 간사, 교활, 잔인, 포악도 모두 침착하여 서두르지 않았고, 도량이 넓고 대범하며, 솔직한 그의 모습을 나타낸다. 당당한 기백과 지략을 지녔고, 屯田制(둔전제) 시행 등의 업적을 올린 그를 악평한다 할지라도 「사랑스러운 奸雄(간웅)」이다.

劉備(유비)에게 영웅의 기백이 있는 이유는 그에게 영웅의 혼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을성의 대명사」인 그는 군사를 일으킨 이래 오랫동안 순탄치 않았지만, 언제 그의 氣(기)가 꺾인 것을 본 적이 있었는가.

孫權(손권)이 성공한 것은 그가 명분에 사로잡히지 않은 영민한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유비와 동맹을 맺거나 맞서 싸웠고, 조조를 「도적」이라 하였다가 조조에게 신하를 자처하기도 했다. 천하를 호랑이 눈으로 굽어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諸葛亮(제갈량)이 수많은 삼국의 모사들과 달랐던 점은 자신만의 정치적 理想(이상)이 있었고, 그 이상의 실행을 끊임없이 모색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의 역량으로는 거스를 수 없었던 시대의 흐름 때문에 法治主義의 통일왕조를 세우는 데는 실패했다.

나관중의 붓끝에 의해 멍청이로 평가절하된 인물이 魯肅(노숙)이다. 그러나 실제의 그는 사람들에게 깊은 신망을 얻었으며 큰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제갈량보다 7년 전에 이미 손권에게 天下三分의 계책을 건의했다. 「삼국연의」에서는 周瑜(주유)도 속 좁은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正史에 따르면 그는 품성이 고귀하고 시원시원한 멋쟁이였다.

저자는 삼국시대의 3大 결전인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전쟁의 승패를 가른 요인을 正史에 의거해 다각적으로 분석했다. 「삼국지」를 바르게 알게 하는 지침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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