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기사

[인터뷰] 金文洙 경기도지사

『韓中해저터널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사업』

글 정순태 기자  200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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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1호선을 타면 서울 시청역에서 水原驛(수원역)까지는 1시간10분 거리, 수원역에서 경기도청까지는 택시로 10분 걸렸다. 지난 2월29일 오후 4시30분,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金文洙(김문수·57) 경기도지사와 만났다. 키 172cm, 체중 64kg의 날씬한 몸매이지만, 악수를 하면서 느낀 그의 손바닥은 의외로 묵직했다.

1951년 경북 永川(영천) 출생, 대구 경북중·고교 졸업, 1970년 서울大 경영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2학년 때인 1972년에는 학생시위와 관련해 대학에서 제적당했다가 복학했지만, 민청학련사건 관련으로 3학년 때(1975년) 다시 제적당했다.

학교에서 제적되어 노동운동을 하던 시절에 그는 공해관리기사, 안전관리기사, 열관리기능사, 환경관리사 등 8종의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했다. 1978년에는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이 되었고, 1981년 구로공단 세진전자 노조위원장 설난영씨와 결혼했다. 1985년 仁川 5·3직선제 투쟁 때는 구속되어 2년6개월을 복역했다.

1993년 金泳三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대학 제적자들을 복교조치했다. 그는 마흔세 살의 나이로 서울大 경영학과에 복학, 입학한 지 25년 만에 졸업했다. 그때 그의 나이 마흔넷이었다.

그는 신한국당에 입당한 이후 피어났다. 1996년 신한국당 부천소사지구당 위원장, 15代 국회의원 당선, 1997년 한나라당(신한국당과 민주당 통합) 원내부총무, 2000년 국회의원 再選(재선), 2002년 한나라당 정무위원, 2003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17代 국회), 2004년 국회의원 3選.

그는 국회 출입기자단에 의해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연속 「의정활동·국정감사 최우수 의원」으로 선정되었다. 2006년에는 「일 잘하는 국회의원 1등」과 「약속 잘 지키는 국회의원 1등」으로 뽑혔다. 2006년 5월 경기도지사로 당선되었다. 정계입문 10년 만의 越班(월반)이었다.

道伯(도백)은 바쁜 직책인 것 같다. 그를 만나려는 분들이 부속실에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곧장 인터뷰에 들어갔다.


東北亞지역 중요 도시와 1일 생활권으로 연결해야

―韓中해저터널을 건설해야 할 필요성은 무엇입니까.

『韓中 교역의 운송수단은 선박 및 비행기로 복잡한 환적 과정 등으로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있는데, 韓中해저터널을 건설하면 물류비용이 크게 절감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韓中해저터널이 건설될 경우 서울-北京 5시간, 서울-칭다오(靑島) 2시간30분이 소요되어 東北亞지역 1일 생활권 형성이 촉진됩니다. 한국은 경제대국 일본, 인구대국 중국, 자원대국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만큼 빠른 결단이 아니면 기회를 잃게 됩니다』

―70여 년 전에 구상된 韓日해저터널이 아직도 논의단계에 머물고 있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韓日 간의 역사적 특수성, 국가재정 문제, 경제적·지역적 이해관계, 국민의 일본에 대한 불신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인 것으로 봅니다. 韓日해저터널은 1930년대 日帝의 소위 「大東亞共榮圈(대동아공영권)」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韓日 정상들 간에 해저터널 건설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어요. 다만, 韓日 간 역사적 특수성 등으로 아직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0년 5월 盧泰愚(노태우) 대통령은 일본 국회 연설 중 해저터널 건설을 제의했다. 1999년 9월 金大中(김대중) 대통령도 일본 방문시 해저터널 건설을 제창했고, 2003년 盧武鉉(노무현) 대통령-고이즈미 총리 간 회담에서도 해저터널 건설의 필요성이 언급되었다.

―일본 후쿠오카 縣지사 아소 와타루(麻生渡)씨는 韓日해저터널의 필요성 여부를 묻는 月刊朝鮮의 질문에 대해 『非현실적』이라고 답변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韓日해저터널과 韓中해저터널을 연결시키면 우리나라가 東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하는 등 시너지 효과가 클 것입니다』

―韓中해저터널은 어떤 공법으로 건설하면 좋다고 보십니까.

『황해는 최대 수심이 76m로서 터널공사 조건이 유리하고, 우리 건설사의 수준이 세계적이어서 기술적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검토사항을 종합하면 해저터널의 25km마다 공기순환 및 대피시설 설치 차원에서 인공섬을 축조해야 합니다(韓中해저터널 개념도 참조). 향후 기술적인 문제를 포함한 구체적인 사업계획 및 세부실행계획을 마련할 것입니다』

―중국경제의 중심은 상하이(上海) 이남 南중국 연안인데, 왜 하필이면 韓中 해저터널이 山東반도의 웨이하이(威海)와 연결되어야 합니까.

『威海는 한반도와 직선거리가 가장 짧아 건설기간, 비용 등을 최소화할 수 있고, 北京 및 上海로의 접근성에서 유리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平澤港은 環황해권 中心港으로 성장할 조건 갖춰

―평택항이 韓中해저터널의 기점 및 對중국 교류의 중심항이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선 중국과 가깝기 때문입니다. 평택항과 威海港까지의 거리가 375km예요. 더욱이 평택항은 반경 100km 이내에 수도권과 중부권, 그리고 100여 개의 산업단지가 위치해 있습니다. 중국경제의 폭발적인 발전과 環(환)황해권 시대에 대응하여, 對중국 물류전진기지 및 環황해권 중심항만으로 성장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평택항의 자연조건은 어떻습니까.

『평택항은 항만 주변이 자연 방파제로 둘러싸여 태풍이나 해일 등의 피해가 거의 없는 천혜의 자연항만입니다』

―서해안은 간만의 차가 극심합니다. 간만의 차를 보면 인천항 10m, 평택항 9m로서 비슷한데, 평택항에서는 인천항과 달리 갑문을 통과하지 않고 5만t급 선박이 부두에 바로 接岸(접안)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평택항의 수심은 11~18m, 평균 14m를 유지합니다. (전자 브리핑 봉으로 항만지도를 가리키며) 해저의 협곡이 이렇게 깊게 형성되어 있어요. 이런 항만조건에 힘입어 지난 1월25일 서해의 항만 가운데 처음으로 美洲정기선 항로를 개설했습니다』

지난 1월25일 이후 평택항에는 4000TEU급 컨테이너선(5만t급)이 입항해 평택-칭다오-닝포-상하이-부산-뉴욕-월밍턴-사바나를 잇는 항로를 주 1항차 운항하고 있다.

―평택항은 국제항이긴 하지만, 아직 철도 인입선조차 깔리지 않는 등 인프라가 빈약한 것 아닙니까.

『평택역~평택항 간 철도를 조기에 깔 예정입니다. 금년 4월까지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끝내고 201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항만배후단지 142만m2 를 2009년에 완공하고, 항만 이용자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15층 평택항 마린센터를 건립할 것입니다』


『韓中·韓日해저터널 연결하면 시너지 효과 크다』

―韓中해저터널에 관한 경기도의 이니셔티브에 대해 威海市, 나아가 중국 중앙정부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현재까지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발표는 없었지만, 중국 국가발전계획위원회를 중심으로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지난 2월17일 威海市를 방문, 왕페이팅 시장을 만나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威海시장은 경기도의 제안을 위(상부)에 보고하겠다고 합디다』

―중국은 自國(자국)의 고속도로망 확충 등 대규모 인프라 구축에 열중하고 있는데, 韓中해저터널에 관심을 보일 여력이 있겠습니까.

『작년 韓中 간의 무역액이 1400억 달러, 곧 2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입니다. 이렇게 東北亞 역내 국가 간 교역비중의 급속한 증가와 함께 기업 간 교류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진일보한 SOC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해저터널은 이러한 부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韓中해저터널에 관해 중국은 아직 우리보다 관심이 적지만, 그 필요성이 인정되면 우리보다 더 빠르게 국가財源(재원)을 집중시킬 수 있는 체제입니다. 현재 중국은 외환보유고 1조5000억 달러로서 세계 제1위입니다』

―지난 2월16일의 船上(선상)토론회 때 金지사의 은사인 安秉直(안병직)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은 韓中해저터널은 건설비용에 비해 효과가 적다고 지적했는데, 그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民資(민자)만 투입되는 것으로 상정한 B/C 분석을 가지고, 타당성이 있다 혹은 없다고 따지는 것은 심하다고 봅니다. 韓中해저터널은 기업의 물류비 절감, 동북아 주요 시장 간의 접근성 확대에 기인한 외자유치 확대, 관광객 증가 등 높은 파급효과가 기대됩니다.

더욱이 韓日·韓中 해저터널이 우리 대한민국을 통해 연결된다면 시너지 효과는 더욱 클 것이며, 우리가 대륙으로, 해양으로 뻗어 나가는 발전의 길이 될 것입니다』


국민적 공감대 필요

―韓中해저터널 건설을 위한 사회적 컨센서스는 어떻게 조성할 생각입니까.

『英佛해저터널은 제안에서 실행까지 200년이 걸렸습니다. 韓中해저터널은 대규모 사업비가 예상되는 만큼 세심한 연구와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검토, 그리고 국민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합니다. 오는 4월 중에 한국·중국·일본의 관련 전문가가 참여하는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유로(英佛) 해저터널은 개통 이래 적자가 계속돼 파산 지경입니다. 韓中해저터널은 흑자경영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英佛해저터널의 경우 전액 民資(민자)로 건설, 높은 이자비용 때문에 해저터널 운영회사는 적자를 보고 있지만, 英佛 사이의 경제적 효과는 굉장히 크다고 봅니다. 프랑스 릴리市에 거주하면서 영국 런던 금융가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韓日·韓中해저터널이 개통되면 국가 간 출퇴근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4년 전에 金지사께서 국회의원으로서 月刊朝鮮을 방문하셨을 때 『李明博(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서울광장, 숭례문공원 등 눈에 보이는 업적이 있는 반면에 孫鶴圭(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일을 많이 하고서도 눈에 보이는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 때문에 국민들은 孫지사가 한 일을 알아 주지 않는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그러해요』


『大權 욕심은 불행의 원인』

―韓中해저터널은, 李明博 대통령이 청계천 복원에 이어 한반도대운하 건설을 주장해 국민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것처럼 金지사가 차기 대통령선거를 의식해 내놓은 작품 아닙니까.

『韓中해저터널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사업이어서 정부에 건의했던 것입니다』

―金지사께서는 과거 민주화운동, 좌파 노동운동을 했으면서도 철저하게 과거와 단절했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지난 60년간의 국가적 성취를 긍정하는 입장, 깨끗한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 서울에 버금가는 광역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점에서 차기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 분입니다. 2012년 大選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냥 해보는 말씀 아닙니까.

『넓고 할 일이 많은 경기도지사직을 수행하기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랍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李仁濟·孫鶴圭씨 등 경기지사 출신으로서 大權에 도전했던 분들이 뒤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경기지사 징크스」는 터가 센 탓 아니겠습니까.

『터가 센 것이 아니라 욕심이 불행의 원인이었습니다. 상황인식을 잘못해 무리수를 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때 획기적인 영어교육 방식으로 주목받았던 坡州(파주) 영어마을 등이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데, 이를 해결할 방안은 무엇입니까.

『영어마을은 체험식 영어교육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으나 적자를 도민의 혈세로 보전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취임 이후 경영합리화를 통해 예산을 절감하고 재정자립도를 높여 왔습니다. 그 결과 2006년 예상 적자액이 332억원이었는데, 실제 적자액은 192억원에 그쳤고, 2007년의 적자액은 다시 50억원 이하로 줄었습니다. 재정자립도가 비교적 높은 파주 영어마을은 직영하고, 안산·양평 영어마을 운영은 민간 컨소시엄과 위·수탁 협약을 맺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원市의 경우 인구 110만 명을 넘어서면서 광역시 승격 주장이 나오고, 성남市·용인市·안산市 등이 조만간 인구 100만 명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도시들의 광역시 독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계 각국이 통합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현재의 47개 縣(현)을 11개 현으로, 3300여 개의 市町村을 1800여 개로 통합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광역시 설치는 경기도와 관련 市의 관계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판단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시대적 흐름은 통합을 통한 대도시권과의 경쟁입니다』


『불합리한 행정규제 풀어 달라』

―경기도는 17代 대통령 인수委에 많은 정책건의를 하셨는데, 그 골자는 무엇입니까.

『돈(예산)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각종 행정규제를 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행정규제의 최대 피해자는 경기도입니다. 경기도는 우수한 인프라를 이용하고 싶어도 수도권정비계획법상의 규제로 변변한 공장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해 외국 기업은 물론 국내 첨단 기업의 투자 포기가 속출하고, 그 손실 금액이 이미 54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과밀과는 상관없는 경기 북부 접경지역을 「수도권」이라는 획일적인 틀로 묶어 규제하는 바람에 대학교 유치는커녕 화장실조차 제대로 고치지 못합니다』

金文洙 지사는 숫자에 밝다. 숨 돌릴 틈 없이 경기도에 대한 행정규제의 불합리한 점을 일일이 숫자를 제시하며 설명했다.

『경기도는 군사시설보호구역에 의한 규제면적(2213km2)이 전국에서 가장 많습니다. 예컨대 연천군은 郡 전체면적의 98%, 파주市는 市 전체면적의 93%가 군사시설보호구역입니다. 연천군의 경우 1983년에 비해 인구가 30%나 감소했습니다』

답변을 하다 보니 화가 난 듯했다. 이어지는 金지사의 말이다.

『미군은 철수하고 기지에 없는데 국가가 기지를 돌려 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염치없는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실례를 하나 들어볼게요. 河南市(하남시)에 있는 「캠프 콜번」 터입니다. 중앙大가 이곳을 좀 사용하려고 했는데, 그린벨트여서 허가할 수 없다는 겁니다.

미군이 있을 때는 그래도 주민들이 술장사·밥장사하면서 생활했는데, 철수하고 나니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규제한 겁니다.

이곳은 사실 「그린」이 없는 그린벨트예요. 지난 50여 년 동안 징발해서 임대료 한 푼 내지 않은 땅입니다』

―八堂(팔당) 상수원보호지역에 대한 규제는 어떠합니까.

『경기도 전체면적의 21%(2102km2)가 환경정책기본법에 의한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불합리한 水系(수계) 설정, 최고 14개 항목의 중복규제로 개발은 물론 정당한 재산권행사조차 어려운 八堂 유역 주민들의 고통은 극심합니다.

규제지역 내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 숙박시설, 음식점, 양식장, 골프장 등의 설치를 금지하고 어업행위를 불허합니다. 동일한 한강 水系인 강원도와 충청도에는 이런 규제가 없는데, 경기도만 규제하는 것은 불합리합니다』

―한강변의 난개발이 심각한 상황인데요.

『수질보호를 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소규모 난개발을 조장해 수질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하수처리율은 94%에 이르고 있지만, 팔당수계지역 7개 市·郡의 하수처리율은 61%이고, 특히 여주군의 경우 40%에 불과합니다』

―경기도는 행정규제의 백화점이군요.

『경기도 면적은 全국토의 10%지만 그린벨트 면적(1251km2)은 전국의 31%입니다. 특히 의왕市의 89%, 하남市의 86%, 시흥市의 75%가 그린벨트로서 건축물의 건축, 용도변경,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변경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희생이 상상 이상이군요.

『서울사람이 죽으면 경기도에서 화장하거나 묻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경기도에 대한 행정규제가 엄격해 꼼짝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억울한 사정을 호소해도 언론에서 잘 취급해 주지 않습니다.

재정자립도가 매년 떨어지고 있습니다. 거래세·등록세가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세입인데, 그것이 1986년 5%에서 2%로 떨어져 재정이 어려워진 겁니다』


『경기도의 경쟁력은 대한민국의 경쟁력』

―金지사께서는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엽니다』고 외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경기도는 인구(전국의 23%), 고용창출과 수출(646억 달러), 5인 이상 제조업체 수(32.6%), 지식기반 제조업체(39%), 총연구개발비(41%), 연수원 수(34%)에서 전국 1위입니다. 경기도의 경쟁력이 곧 대한민국의 경쟁력입니다. 경기도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불합리한 각종 규제를 과감히 풀어 강력한 성장엔진을 再가동시켜야 할 것입니다.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韓中 해저터널을 건설하고, 평택항을 對중국 교역의 거점으로 육성하며, DMZ(비무장지대)를 세계적 평화, 환경상징, 통일과 相生발전의 중심지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좋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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