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기사

창간 25주년 기념 기획 연재 ② - 三星의 세계 一等主義 연구

李健熙의 用人

글 정순태 기자  200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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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전·단정·섬세하면서도 집념이 강하고, 똑똑하게 보이면 그는 틀림없이 三星맨이다』

업계에 오래 출입한 경제부 기자들은 三星 임직원의 典型(전형)을 대체로 위와 같이 표현한다. 三星맨은 유별나게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 李健熙 회장은 말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랑스러운 三星의 일원임을 잊지 말고, 겸손하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거래상대와 협상하는 과정에서도 무조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면 안 된다. 모두가 三星人다운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나갈 때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우리의 목표는 반드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三星맨의 엘리트 의식은 철저한 社內(사내) 교육, 업적에 따른 과감한 승진과 최고 수준의 연봉 지급 등에 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三星의 인사 담당 임원이었던 R씨는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사람을 뽑지 않으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으면 어떻게 능력이 계발되겠는가? 능력 있는 사람에게 권한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핵심人材로 자랄 수 있겠는가?』

三星은 1957년 국내 기업 최초로 공개채용 제도를 실시해 왔다. 당시만 해도 우리 기업 풍토에서 공채는 대단히 혁신적이고 선진적인 제도였다.

공채는 두 가지 측면에서 「人材 중시」라는 三星의 경영이념을 실천하는 수단이 되었다. 공채를 통해 널리 人材를 구하고, 緣故(연고)채용을 배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緣故채용의 배제는 조직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바람막이 구실을 해 왔다.

三星은 국내 어느 기업보다 훨씬 높은 청렴도를 유지해 왔다. 예컨대 三星 계열사의 船積(선적) 담당 직원들은 海運船社로부터 받은 리베이트를 회사의 공식 수입으로 삼는다. 리베이트 제도는 海運船社가 단골 확보 차원에서 운송작업을 완료한 일정기간 후 수취한 운임의 1~2% 정도를 貨主 측에 되돌려 주는 「모험항해」 시대 이래의 오랜 관행이다. 그런데 국내 거의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리베이트 머니가 船積 담당 직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등 非공식적으로 처리되어 왔다.

三星은 달랐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三星의 船積 담당 직원은 船社로부터 받은 리베이트 머니를 반드시 회사에 입금시킨다』는 것이다.

하청업자가 명절에 三星의 실무자들에게 무심코 구두 상품권을 돌렸다가 거절당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이다. 三星의 內規에 따르면 하청업자와 함께 식사를 하더라도 음식값은 三星 임직원이 지불하도록 되어 있다.


조직에 대한 로열티

三星은 채용에 있어서 다른 기업과는 달리 면접을 중시한다. 학과성적 對 면접 성적의 반영 비중은 30% 對 70%. 그 까닭의 첫째는 응시자가 三星의 기업문화에 잘 적응할 것인지를 가려내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三星맨의 조직과 오너에 대한 로열티(충성심)는 남다르다.

필자는 1990년부터 약 3년간 이웃에 사는 三星전자 K부장의 승용차에 편승, 함께 출근하면서 오너에 대한 그의 로열티에 대해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컨대 그는 이런 얘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先代회장(李秉喆)님께서는 참외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내가) 龍仁 자연농원에 근무할 때의 일인데, 어떡하면 先代 회장님께 더 맛있는 참외를 드릴까 곰곰이 궁리했어요. 그런 끝에 제일제당에서 설탕 만들고 난 찌꺼기를 좀 얻어다가 그걸 비료처럼 참외밭에 뿌렸습니다. 그렇게 자란 참외는 糖度(당도)가 아주 높았어요. 한번은 先代회장님께서 내가 키운 참외를 맛보시고는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정말 보람을 느꼈어요』

「안 보이는 곳에서는 나랏님에게도 욕을 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三星맨들은 「안 보이는 곳」에서도 오너에 대해 極(극)존칭을 붙인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그는 한결같았다. 그러던 그가 理事로 승진한 지 두어 달 만에 갑자기 별세했다. 아직 40代 초반이었던 그의 死因(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가족과의 주말 나들이 중에 갑자기 닥친 불행이라 업무 중의 過勞死(과로사)는 아니었지만, 새 직책에 대한 긴장감이 누적되어 그를 急死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였다.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K이사의 사망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장남이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나섰다. 그때 K이사의 부인은 남편의 장례식에서 남편의 직장동료가 했던 말이 퍼뜩 생각났다.

부인은 남편의 옛 직장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그때 그 말」을 상기시켰다. 어떻든 K이사의 아들은 곧 三星전자의 사원으로 채용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代를 이어 근무하는 직장―듣기에 매우 흐뭇한 미담이다. 그러나 위의 逸話(일화)는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三星은 인간미가 물씬한 일터라기보다는 「냉정한 조직」이라고 해야 더 진실에 가까울지 모른다.

李秉喆 회장 시대의 50년간, 三星의 인사정책은 信賞必罰(신상필벌)이었다. 「信賞」은 능력과 업적을 유도하는 「당근」인 만큼 결코 三星의 專有物(전유물)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必罰」이 조직의 청결성 유지라는 차원에서 三星 특유의 제도로서 발전해 왔다.

三星의 人材 양성에 있어서 중시되는 「부정·부패 배제의 원칙」은 『부정·부패는 개인을 망치고 기업도 망친다』는 先代회장의 신조에서 나온 것이었다. 三星은 조직 내에 부정과 비리가 뿌리내리지 않도록 철저한 사전 예방과 사후 통제를 실시해 왔다. 그 「채찍」의 역할은 회장비서실(지금의 구조조정본부)의 감사팀이 맡아 왔다.

감사팀은 회장의 명에 의해 예고 없이 계열사의 경영상태를 감시하는 암행 기능을 갖고 있다. 감사에서 「잘못」이 적발되어 하루 아침에 보따리를 싸고 三星을 떠나게 된 임직원들이 적지 않다.

三星은 信賞必罰을 통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보람을 느끼게 하는 반면, 직무 태만이나 과실에 대해서는 응분의 징계를 내려 조직의 규율을 지키고 활력을 유지해 왔다. 이러한 원칙은 형식적으로 운용되는 다른 기업과 달리 매우 철저히 시행되었다. 三星이 「냉혹하다」는 세평을 듣게 되는 까닭이었다.


『뒷다리만 잡지 않는다면…』

李健熙 회장 시대에 들어 三星의 인사정책은 信賞必罰보다 「信賞必賞(신상필상)」으로 다소 부드럽게 변화했다. 罰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잘하는 사람이 더 잘하도록 종전보다 더 큰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는 정책이다. 李健熙 회장은 1993년 6월 「新경영 선언」 당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달리다가 힘이 들면 길가에 주저앉아 쉬어도 좋다. 다만 열심히 달리는 사람의 뒷다리만 잡지 마라. 뒷다리만 잡지 않으면 평생 먹여 살리겠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밀어닥치자 李健熙 회장은 결국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성실한 三星맨들도 다수 직장에서 쫓겨났다. 당시 「청룡도」를 휘두른 CEO들은 「三星 조직의 유연성을 확보한 功臣」으로서 아직도 중용되고 있다. 이후 곧 삼성은 前無後無한 전성기로 진입했다.

2004년 국내 50大 상장기업 가운데 「직원 1인당 연봉 上位 15개社」에 들어간 三星 계열사는 4개社에 달했다. 三星전자는 매출 1위, 순익 1위의 기업답게 각종 고용 및 임금 관련 지표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三星전자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7130만원이었다. 이는 50大 상장기업의 평균연봉(4744만원)보다 50% 이상 높은 것이었다. 三星전자의 평균 연봉은 5년 전의 3170만원에 비해 무려 2.25배로 늘어났다. 반도체·휴대폰·디스플레이 사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밀고 끌어 준 덕택이었다.

지금 三星전자의 효자 중의 효자 제품은 플래시메모리다. 영업이익률(영업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수치)이 무려 60%다. 1억원어치를 팔면 6000만원이 남는다는 얘기다.

플래시메모리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플래시메모리가 소요되는 MP3 플레이어,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등의 모바일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플래시메모리는 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모바일 기기의 저장장치로 많이 사용된다. 반면 D램 반도체는 전원을 끄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임시 저장장치이기 때문에 개인용 컴퓨터(PC)에 주로 이용된다. 黃昌圭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1개월 전에 『PC 시장은 가고 모바일 시장이 다가온다』고 밝힌 바 있다.

플래시메모리의 호조에 힘입어 금년 1분기(1~3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매출액은 4조4000억원, 영업이익률은 1조5200억원(이익률 33%)으로 알려졌다.

三星 계열사 중 연봉이 높은 회사는 1위의 三星전자 이외에도 8위의 三星SDI(5700만원), 9위의 三星중공업(5640만원), 14위 三星물산(5490만원) 등이었다.


美 GE방식과 日 도요타 방식을 융합한 경영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5년간(1999~2004) 가장 많은 인원을 채용한 회사도 三星전자였다. 三星전자의 근무 인원은 5년 사이에 2만2549명(57.3%)이 늘어나 총 6만1899명에 달했다.

반면, 三星 계열사 가운데 「직원 평균 근속 연수 상위 15개社」에 든 회사는 하나도 없다. 가장 많은 인원을 채용하고, 가장 많은 임금을 주는 三星전자의 경우 평균 근속연수는 6.8년으로 1999년의 7년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순위로는 50大 상장기업 중 42위로 하위권이다. 평균 근속연수가 18년을 웃도는 KT&G(18.7년)와 포스코(18.0년)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긴 기업일수록 새 일자리를 늘리는 데에는 소극적인 경우가 많았다. KT&G는 지난 5년간 610명, 포스코는 108명의 일자리가 되레 감소되었다. 바로 이런 면에서는 기업의 사회 기여도가 낮았던 셈이다. 그러나 리쿠르트 회사의 한 간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IMF 외환위기 이래 회사원의 의식은 「평생직장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자기생존을 우선하는 평생직업의 개념」으로 바뀌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래 다닐 수 있는 기업을 선호하는 복고풍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급여가 다소 떨어지더라도 본인과 회사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회사를 고르는 것이 오히려 좋은 선택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三星전자의 한 인사 담당 직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三星은 여전히 선호도 제1위의 기업이다. 그러나 三星맨의 근속연수가 짧다는 것은 조직의 유연성 면에서 플러스지만, 직원의 로열티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는 분명히 마이너스 요인이다. 三星전자는 뽑기도 많이 뽑지만,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나가기도 많이 나가는 회사다.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을 어떻게 조화시켜 최선의 인사정책을 마련할 것인지, 이것이 문제이다』

과거 三星人은 그가 어느 계열사에 근무하든 같은 직급이면 같은 월급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三星의 봉급체계는 「勝者獨食(승자독식)」에 가깝다. 이러면 「조직에 대한 로열티」가 엷어지게 마련이다. 최근 「한 방향 三星」이 유별나게 강조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약점의 보완책으로 보인다.

三星의 전통적 기업문화는 조직 충성도와 종신고용을 핵심으로 하는 일본식이었다. 그러나 李健熙 체제 이후의 三星은 미국 GE 방식과 일본 도요타 방식을 융합한 경영으로 평가되고 있다. 성과주의 도입 등은 「GE 방식」이고, 조직 충성도를 높이면서 관리경영을 중시하는 것은 「도요타 방식」이다.

이제껏 三星의 「師父」는 GE와 도요타였다. 그러나 최근엔 글로벌 일류 기업들도 三星의 방식을 배우려 한다. 심지어 도요타까지 三星의 성과급 제도와 유연한 고용 제도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三星경영 따라하기」

三星경영을 배우려는 움직임은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유행이다. 「每經이코노미」의 보도이다.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LG그룹은 지난해부터 부쩍 三星경영 배우기에 열심이다. 임원들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하거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 등이 「三星경영 따라하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三星전자가 LG전자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얘기가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동부그룹과 코오롱그룹도 三星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왜 이런 붐이 불었을까. 「三星을 배우면 저절로 발전한다」는 판단에서다.

三星경영을 뒤늦게 배우는 곳은 한국 정부이다. 기획예산처의 간부 70여 명은 지난 1월 三星인력개발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기획예산처는 三星의 사업부 제도에 관심이 높다.

통일부는 「통일 포털」 온라인 시스템 구축에 三星그룹의 社內 인트라넷인 「My Single」과 三星경제연구소의 홈페이지를 모범답안으로 삼았다. 감사원은 三星의 성과급 제도와 연봉제에 관심을 보인다.

외교통상부 외교안보연구원은 지역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따라 배우기 위해 三星인력개발원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금융결제원은 三星의 新개혁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강연회를 개최했다.


과거의 「經營이념」은 「創業이념」으로 변해

경영이념은 기업의 문화를 좌우한다. 과거, 三星그룹의 경영이념은 「事業報國(사업보국), 人材第一(인재제일), 合理追求(합리추구)」였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創業이념」으로 변하여 三星의 社史 속에서나 거론되는 遺物(유물)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까닭은 무엇인가? 우선, 「事業報國」은 그 용어에서 받는 느낌부터가 지역적이고 국수적이어서 글로벌 시대엔 어색한 개념이다. 현재, 三星은 세계 57개국에 사업장을 둔 다국적 기업이다. 뿐만 아니라 三星맨의 3분의 1에 달하는 7만 명이 외국인이다. 이런 해외진출과 인력구조에서 「事業報國」은 무리한 요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人材第一」이라는 경영이념도 그것을 너무 교조적으로 적용할 경우 三星을 메마르고 편협한 조직으로 변질시키기 쉽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新세대들이 등장하는 시대적 상황下에서 「人材第一」을 지나치게 추구할 경우 三星맨을 「인간미 부족」症에 걸리게 할 우려도 있다.

「合理追求」도 盡善盡美(진선진미)한 경영이념이 될 수 없었다. 치열한 기술경쟁, 급변하는 경제환경에서 합리추구를 위해 지나치게 신중을 기하다가는 기회 손실의 위험을 부르게 마련이다. 과거 三星만큼 매사에 철저한 사전 페이퍼 워크와 수많은 점검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에 이르는 기업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그 결과, 三星은 완벽주의 문화에 젖어 경쟁기업과의 시간싸움에서 패배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오늘날처럼 기회를 先占해야 하는 여건下에서는 좀더 도전적이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빠른 기술의 변화는 더딘 움직임을 더 이상 용납하지 못한다. 「합리추구」보다는 혁신과 도전이 덕목이 되는 시대에 돌입해 있는 것이다.


李健熙의 경영이념, 『人材와 기술을 바탕으로…』

李健熙 시대 三星의 경영이념은 『人材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 인류사회에 공헌한다』로 바뀌었다.

여기서 「人材와 기술을 바탕으로」 대목을 앞장세운 것은 人材육성과 기술우위 확보를 중시하겠다는 뜻인 동시에 人材와 기술의 조화로 경영 전반에 걸쳐 시너지 효과를 증대하겠다는 의도다.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를 창출하여」라는 대목은 고객에게 최고의 만족을 제공하는 글로벌 일류 기업의 위치를 확보하겠다는 의미이다. 「인류사회에 공헌한다」는 마지막 대목은 「존경받는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영이념과 더불어 三星의 가치관을 형성했던 또 다른 軸(축)은 三星맨의 일하는 자세와 방법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 「三星人의 정신」이었다. 三星의 기존 사원정신은 「도덕정신·창조정신·제일주의·완전주의·공존공영」이었다.

이 다섯 가지 가운데 제일주의와 완전주의는 상당한 문제를 발생시켰다. 제일주의는 三星맨들에게 「우리가 제일」이라는 자만심을 표출시켜 불필요한 사회적 미움을 받게 했으며, 특히 국내시장 지향적인 제일주의는 경쟁업체들의 격심한 반발과 견제를 자초했다. 완전주의는 기회 선점 및 공격적 경영의 장애요소가 되었음은 앞에서 지적했다.

「三星人의 정신」도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고객과 함께한다. 세계에 도전한다. 미래를 창조한다」

「고객과 함께 한다」는 대목은 인류 전체를 고객으로 인식하겠다는 선언이다. 「세계에 도전한다」는 대목은 三星을 초일류 기업의 반열에 올려 세계를 리드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미래를 창조한다」는 것은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창조하는 탐구자세를 의미한다.

디지털 시대로 표현되는 21세기는 지식·정보·창의성이 중시되는 지식경제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의 핵심자원은 과거 산업시대처럼 토지·지하자원·자본이 아닌 「인적자원(Human Resources)」 또는 「인적자본(Human Capital)」으로 표현되는 사람, 즉 人材이다. 우수한 人材를 얼마나 확보하고 양성하느냐가 한 기업, 나아가 한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1세기는 두뇌전쟁 시대」

20세기가 「경제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두뇌전쟁의 시대」라 할 수 있다. 두뇌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의·스피드·지식이 중요하며, 이는 결국 「사람, 人材」의 문제로 귀결된다. 즉, 총칼이 아닌 사람의 머리로 싸우는 두뇌전쟁에는 뛰어난 人材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므로 이 시대를 이끌어갈 우수 人材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해 가면서 그런 人材들이 창조적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三星은 창업 이래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신념으로 일관해 왔고, 그것이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957년, 국내 최초로 공채를 실시했던 기업도 三星이었다. 三星인력개발원은 1982년에 개원한 「호암관」에 이어 1991년 「창조관」을 개원함으로써 人材양성을 위한 세계 제1의 인프라를 구축하게 되었다.

지난 3월31일, 필자는 경기도 용인시 포곡면 가실리에 위치한 三星인력개발원(창조관)을 찾아갔다. 창조관의 복도에는 다음과 같은 어록들이 게시되어 있다.

『국가와 기업의 장래가 모두 사람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은 맹백한 진리이다. 이 진리를 꾸준히 실천해 온 三星이 강력한 조직으로 人材양성에 계속 注力하는 한, 三星은 영원할 것이며, 여기에 배출된 三星人은 이 나라 국민의 先導者가 되어 萬邦의 인류행복을 위하여 반드시 크게 공헌할 것이다』(1982년 6월24일 李秉喆 회장 발언 중에서)

『21세기는 교육과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바른 교육과 참된 문화가 새로운 시대의 승자를 위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1995년 5월18일 李健熙 회장 「닛케이 포럼」 강연에서)

『디지털 시대는 총칼이 아닌 사람의 머리로 싸우는 두뇌전쟁 시대라 할 수 있으며, 뛰어난 人材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 갈 경영인력, 기술인력을 체계적으로 교육해 나가는 한편으로, 그런 人材들이 창조적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두뇌天國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2000년 1월3일 李健熙 회장 신년사 중에서)


『三星인력개발원은 三星사관학교』

三星인력개발원의 신태균 상무를 만나 三星의 人材양성 전략을 물었다.

『결국 사람입니다. 人材야말로 기업의 핵심 자산이면서 경쟁력의 원천입니다. 따라서 21세기 人材전쟁 시대 최고의 화두는 「人材양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三星은 人材양성의 필요성을 일찍이 감지, 사원교육비를 일본 기업의 2배, 미국 기업의 3배 정도 투입해 왔습니다』

―三星인력개발원의 교육 방침은 무엇입니까.

『三星인력개발원은 그룹의 경영철학을 전파하는 구심점으로서의 교육 기능을 강화, 三星의 핵심가치에 대해 신입사원으로부터 임원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즉, 三星人의 가치관과 행동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키는 가치공동체 및 문화공동체 구현에 힘쓰고 있습니다』

―三星인력개발원을 「三星사관학교」라고 하더군요.

『三星은 2001년부터 경영방침을 초일류 기업을 위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 등으로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신뢰경영, 미래경영, 글로벌경영을 전략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三星인력개발원은 초일류 三星, 한 방향 三星, 글로벌 三星을 실현할 人材를 양성하는 三星사관학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三星은 어떤 사람을 人材로 봅니까.

『三星이 제시하는 人材像은 「인간미와 도덕성, 그리고 조직에 대한 강한 로열티를 바탕으로, 해당 분야에 대한 세계적 수준의 전문능력과 글로벌 종합 경영역량을 갖춘 21세기 초일류 글로벌 三星을 주도할 人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三星이 바라는 人材像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三星인력개발원은 다음 네 가지 人材像을 제시하고 있다.

<創造人: 변화 주도의 꿈을 지니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의지·정열·자신감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며, 창의적 사고, 도전정신으로 지식경제사회를 리드하는 人材.

學習人: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핵심역량 확보를 위해 꾸준히 배워 나가는 人材.

世界人: 글로벌 역량과 소양을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人材.

社會人: 인간미와 도덕성을 겸비한 사람으로서, 타인과 협조할 줄 알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人材>

―人材양성 체계는 어떻게 짜여 있습니까.

『그 핵심축은 SVP, SLP, SGP라는 3大 프로그램 체계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핵심가치 공유를 통한 「한 방향 三星」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 SVP, 차세대 리더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SLP, 글로벌 三星 실현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 SGP입니다』

三星의 교육은 우선 양적으로 많다는 특징이 있으며, 질적으로 우수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신입사원 입문교육

「SVP(Samsung Shared Value Program)」는 신입사원에서 과장·차장·부장·임원 등 신규 승격자 및 경영진의 보수교육까지 체계화된 프로그램으로 실시되고 있는 교육이다.

『三星 교육의 특성은 엄하고 강한 정신교육에 있습니다. 절도 있는 자세와 예의바른 태도가 몸에 배도록 단련합니다. 교육에만 전념하도록 면회·외출·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등 외부와 철저히 단절시킵니다. 일과는 오전 5시30분에 시작해 저녁 6시까지 진행되고, 저녁 식사 이후 밤 11시까지 자율학습 또는 교양강좌를 합니다』

이 가운데 SVP 신입사원 입문교육은 25박26일의 합숙과정을 통해 三星人으로서 기본자질을 익히고 기업 가치관을 갖춘 三星인 육성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연간 평균 참가인원은 5000명이다. 2004년에는 7000명으로 급증했다.

『三星에서는 특히 신입사원의 입문교육을 중시합니다. 신입사원 교육을 제대로 해야 조직생활을 잘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경영이념과 三星人의 정신을 함양시켜 三星人으로서의 자신감과 긍지를 배양케 합니다』

교육내용 중 「한계능력배양훈련(MAT: Marginal Ability Training)」과 「판매능력개발훈련(LAMAD: Life Adjustment and Marketing Ability Development)」은 이제는 국내 다른 기업들도 뒤따라 하는 고된 훈련이다.

MAT는 한 팀당 20여 명으로 편성되어 20km를 강행군하는 것이다. 훈련목적은 조직의 단합. 각 팀은 讀圖法(독도법)을 이용, 미리 설치된 3~4개 포스트를 발견해 나가야만 하는데, 각 포스트 밑에는 여러 가지 지시사항이 적힌 문제지가 묻혀 있다. 문제지의 내용은 「포스트 이동 간에 팀원들의 가족 이름을 모두 외워라」, 「각 회사의 주요 경영정책을 암기하라」, 「21세기에 도전하는 당신의 실천 의지를 율동으로 표현해 보아라」, 「개구리 세 마리를 잡아와라」 등이다.

다음 포스트에는 심사요원이 대기하고 있다가 문제를 얼마나 풀었는지 점검하여 점수를 매긴다.

LAMAD는 판매의 중요성 인식, 사회생활의 적응력 배양을 위해 실시된다. 마케팅에 대한 사전교육을 받은 신입사원들은 三星 제품인 카세트·녹음기·카메라·MP3 등을 지니고 경기도 곳곳의 변두리 지역에 분산 투하된다. 분산 투하된 2인1개 組는 소지한 물건을 판매한 다음에 멀리 떨어진 집결지에 도착해야 한다.

훈련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물건을 팔지 못하면 돈이 없는 만큼 점심을 굶은 채 장거리를 계속 걸을 수밖에 없다. 집결지에서는 각 조별로 도착시각과 판매실적을 체크한다. 물론 실적에 따라 상금이 수여된다.

三星의 발전사와 人材제일의 철학, 초일류 기업 三星을 지향하는 줄거리로 구성된 3막8장의 연극 「드라마 三星」도 이색적인 프로그램이다. 三星의 신입사원들은 李秉喆·李健熙 회장 또는 당시의 CEO와 임직원 등으로 분장한다.

연극 준비 때 프로 연극배우가 연기를 지도하여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고, 시대상을 반영하는 소품 및 배경화면을 활용하여 극적효과를 올린다. 총 8개 팀이 競演(경연)하는데, 이를 통해 신입사원들은 三星의 역사와 전통 및 경영철학을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이 밖에도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창의력 배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실시된다.

교육은 70~80%가 체험식·참여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특한 전통은 지도선배(Mentor) 제도의 시행이다. 입사 3년차 중에서 우수자를 「지도선배」로 선발해 2주간의 교육 이수, 1주의 사전 준비 후 후배의 지도에 참여케 하여 모범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지도선배는 신입사원 20명당 1명씩 배치된다.

신입사원 5000~7000명은 매년 6월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에서 개최되는 2박3일 코스의 하계수련대회에도 참가해야 한다. 이 대회에는 각 계열사 CEO, 신임· 영입 임원 500여 명도 합류한다. 아이디어 콘테스트, 응전시합, 등산 등을 통해 CEO에서 신입사원까지 三星의 핵심가치를 공유하게 한다.


차세대 리더 키우는 早期교육

「SLP(Samsung Business Leader Program)」는 우수 人材를 조기에 발굴하여 三星의 미래 지도자를 키우는 과정이다. 액션러닝 등 현장의 문제해결형 프로그램을 통해 비즈니스 역량을 강화하는 데 교육의 초점을 두고 있다.

SLP 임원 양성 및 고위경영자 양성 과정에서는 CEO들이 교육에 직접 참여하여 피교육자들과 함께 경영전략을 토의하면서 人材를 검증한다. 그 과정은 SLP 지도선배 양성→三星 MBA→SLP 차·과장 과정→SLP 임원 양성→SLP 최고경영자 양성 등으로 짜여 있다.

특히, 三星 MBA 제도는 1995년부터 매년 우수인력을 해외 名門 비즈니스 스쿨 및 국내 주요 경영대학원에 2년간 파견하여 경영과 기술, 국제화와 경영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복합 전문가로 키우는 과정이다. 현재까지 양성된 인원은 500여 명에 달한다.

「SGP(Samsung Global Expert Program)」는 글로벌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임직원들의 글로벌 역량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교육이다. 글로벌 전문인력 양성 프로세스는 지역전문가 양성 과정, 주재원 양성 과정, 해외 法人長 양성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국어 교육은 효과적인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100명의 전문 강사진과 외국어 전용 시설을 기반으로 교육대상의 특성, 양성목표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 대상자는 주재원 파견 발령자, 예비 주재원, 지역전문가 파견 발령자, 해외업무 담당자 등이다. 매년 4회에 걸쳐 10주 합숙과정(주재원 파견 발령자는 4주 합숙)이 개설된다. 과목은 영어·중국어·일어·스페인어이며, 교육생 8명에 강사 1명씩 배치한다. 교육장소는 제1외국어생활관(호암관), 제2외국어생활관(국제경영연구원)이다. 특수언어 교육은 외국어大에 위탁하고 있다.

1991년부터 실시되어 온 지역전문가 제도는 21세기 국제화의 첨병으로서 국제감각을 지닌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全세계 55개국에 약 1년간 파견, 현지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생활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와 商관습을 익히게 하는 제도이다. 현재까지 3060명이 양성되었다. 1인당 소요비용은 약 1억원이다. 이 제도는 주재원의 人力풀 기능을 겸하고 있다.

三星 교육은 그룹과 계열사가 분담하고 있다. 교육 분담 비율은 그룹차원의 교육(三星인력개발원에서 담당)이 30%, 계열사별 교육이 70%이다. 그룹 차원의 교육은 기본교육 중심이고, 계열사별 교육은 220개 과정의 전문교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의 힘이 성공의 밑받침

이러한 교육의 힘이 三星의 성공에 밑받침이 되어왔다. 예컨대 三星은 반도체 사업이라는 그룹 차원의 대형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200여 명의 사원에게 집단훈련을 실시했다. 「반도체인의 십계명」을 제정해 외우게 하는 등 철저한 정신교육부터 시켰다. 매주 시험을 실시, 60점 미달자는 스스로 반성문을 쓴 뒤 읽게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인력이 오늘날 반도체 사업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최근, 필자는 신입사원 입문과정을 막 수료한 三星 신입사원에게 「피교육기간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개발원 구내식당에서 하루 세 끼씩 먹은 밥』이라고 대답했다. 인터뷰를 끝낸 후 신상무에게 『구내식당 밥을 한번 먹어 보자』고 청했다. 그날 메뉴는 삼계탕과 추어탕이었다.

―역시 부잣집 음식은 다르군요.

『被교육자란 원래 춥고 배고픈 것 아닙니까. 先代회장님 때부터 개발원의 방침이 「잘 먹이고 잘 재우자」입니다』

숲 속에 자리 잡은 창조관은 참으로 아늑했다. 1991년 준공 때 「아름다운 건축물」로 큰 상을 받기도 했다. 2인1실의 被교육생 침실도 깔끔하고, 강의실도 번듯하다.


李秉喆의 「不可近不可遠」 원칙

여기까지 와서 이웃에 있는 호암미술관과 李秉喆 선대회장이 1970년대에 살았던 한옥, 그리고 그의 묘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 접근로를 물어보았다. 신상무는 젊은 사원에게 필자를 안내하도록 지시했다.

호암미술관의 입장료는 3000원이었다. 젊은 사원은 매표소 앞에서 정차한 뒤 필자에 다가와 「입장권을 사십시오」라고 말했다. 참으로 상쾌한 젊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호암미술관 입구에서 그와 헤어졌다. 호암미술관은 수천 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중 국보 36점과 보물 108점 등 주요 문화재는 남산 기슭에다 새로 건설한 박물관 「리움」에 옮겨 전시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호암미술관은 둘러볼 만한 곳이다.

호암미술관을 나서 李秉喆 회장의 묘소를 둘러보았다. 묘소 옆에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과 인천상륙작전의 모습을 담은 조각품이 설치되어 있다. 생전의 李秉喆 회장은 맥아더 장군을 존경, 장군의 미망인에게 맥아더 기념관에 세울 동상도 증정했다.

故人이 살았던 한옥은 문이 잠겨 있었다. 이곳을 굳이 찾아간 데는 까닭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의 어느 날 朴正熙 대통령이 예고 없이 이 한옥을 방문하여 상당 시간 기다렸지만, 끝내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일이 있다. 왜 그랬을까. 당시 회장비서실에 근무했던 孫炳斗 前 전경련 상근부회장의 증언이다.

『朴正熙 대통령이 두 따님과 함께 龍仁 자연농원 앞을 지나다가 李秉喆 회장의 한옥을 불시에 방문, 주인을 찾았습니다. 그때 李회장은 안양CC에서 골프를 치고 있었습니다. 朴대통령을 맞이할 마음만 있었다면 자동차로 20분이면 충분히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李회장은 비서로부터 朴대통령의 방문 소식을 듣고도 「내가 왜 가노」라면서 朴대통령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李회장은 아무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불시방문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1966년의 「韓肥(한비)사건」 이후 朴대통령과 李회장이 멀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韓肥사건에 대해 李회장은 「정치기류에 휘말린 사건」으로 보았다. 「湖巖自傳(호암자전)」에 따르면 보세창고에 있던 비료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OTSA라는 약품(사카린 원료로도 사용됨)이 정부의 허가 없이 시중에 매각되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현장 사원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韓肥 주식의 30%의 증여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권력구조의 중추에 있던 인물」의 공작과 이에 가담한 일부 매스컴에 의해 마치 「국가적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三星이 과도하게 매도당했다는 것이다.

韓肥사건 이후 李秉喆 회장의 對권력관은 「不可近不可遠(불가근불가원)」으로 바뀌었다. 어떻든 李秉喆 시대의 三星은 「소비재 산업으로 돈만 번 재벌」 정도로 평가절하되기도 했다. 용인의 자연농원만 하더라도 「양돈사업으로 水質을 오염시킨 부도덕한 재벌의 작태」로 일부 언론에 보도되었다. 李秉喆 회장은 매우 억울했던 것 같다. 그는 「호암자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일하는 자에게는, 일하지 않는 자가 항상 가혹한 비판자 노릇을 하는지도 모른다>

李秉喆 시대의 三星은 자주 여론의 비판을 받았지만, 李健熙 시대의 三星은 찬탄의 대상이 되었다(李秉喆 회장에 대한 평가는 그의 死後에 더욱 높아졌다). 이런 점에서 여론과 同行하는 李健熙 회장의 능력은 탁월하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天才를 찾아라』

『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 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 살렸지만, 21세기에는 탁월한 天才가 10만~20만 명을 먹여 살리는 人材경쟁의 시대, 지적 창조력의 시대이다』

2002년 6월5일, 李健熙 회장이 三星인력개발원 창조관에서 三星의 사장단 50여 명에게 던진 말이다. 이날 개최된 「人材전략 사장단 워크숍」에서는 三星이 5~10년 안에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人材를 조기에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핵심人材 확보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되었다.

그렇다면 三星이 원하는 핵심人材는 누구인가. 三星경제연구소가 정리한 핵심人材는 다음과 같은 조건 등을 갖춘 인물이다.

첫째, 향후 樹種(수종)사업을 주도할 人材. 즉,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만들고, 그 아이템으로 수요를 창출하고, 산업 전체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人材를 말한다.

둘째,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人材. 즉, 고정관념을 깨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그것을 추진하는 능력을 갖춘 人材를 말한다. 또한 모범생이라기보다는 시대의 기존 관행이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판을 짜는 人材들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델 컴퓨터의 마이크 델 같은 天才들이 어느 날 아침에 갑자기 하늘에서 하강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李健熙 회장의 강력한 희망사항에도 불구하고 三星의 천재 찾기는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2002년 11월5일, 李健熙 회장은 人材전략 사장단 워크숍을 다시 열었다. 그는 계열사 사장들에게 人材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하며, 우수 人材를 확보·양성하는 것이 경영자의 기본책무라면서 다음과 같이 다그쳤다.

『나 자신도 경영업무의 50% 이상을 핵심인력 확보 및 양성에 집중시키겠다. 사장의 인사평점의 만점을 100점이라고 한다면 40점은 핵심인력을 얼마나 확보했느냐, 또 얼마나 양성했느냐에 둘 것이다』

李健熙 회장이 요구하는 핵심인력은 미래를 움직일 天才를 의미했다. 핵심人材 확보와 양성에 관한 그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人材는 국적을 가리지 않고 채용한다. 특히 러시아와 東유럽의 기초과학자 영입에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둘째, 기존 핵심인력들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人材육성의 한 방편이다.

셋째, 人材의 조기양성을 위해 이공계 학생을 지원하거나 고등학교 3학년생 중에서 미국·일본·중국 등의 유수한 대학에 합격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

이런 지시에 따라 三星 계열사들은 핵심인력 확보를 위한 임시조직을 구성했다. 三星전자의 경우 스카우트팀을 人材개발연구소로 확대 개편했다.


슈퍼급 人材의 연봉은 같은 직급의 3배

三星그룹에는 1만2000명의 석·박사급 人材가 근무한다. 특히 그룹의 主力인 三星전자의 경우 박사학위를 소지한 연구원이 3500명에 달한다. 이런 人材들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수한 연구인력이나 실력 있는 엔지니어라면 실리콘 밸리, 유럽 등 나라나 지역을 가리지 않고 스카우트의 대상이 된다. 三星전자 인사팀은 스카우트된 人材를 「슈퍼급」, 「하이 포텐셜급」, 「A급」으로 분류하여 별도 관리한다. 三星전자內 슈퍼급 연구위원은 400여 명. 이들의 연봉은 같은 직급의 임직원보다 3배나 많다.

2002년 11월5일, 三星그룹은 슈퍼 기술인력 중에서 최고명예직인 「三星 펠로」 2명을 임명했다. 2005년 현재 「三星 펠로」는 6명으로 늘어났다.

제일기획에서는 신춘문예 당선자를, 三星전자에서는 해커나 프로게이머를 특채한 바 있다. 경비업체인 에스원은 TV 드라마 「수사반장」의 모델이었던 서울경찰청 강력과장을 지낸 崔重洛(최중락)씨를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핵심人材에 관한 한 李健熙 회장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한다. 三星은 해외 우수대학 유학생과 현지인력을 대상으로 연구개발·마케팅·금융·디자인·IT 등 경영 全분야에 걸쳐 「국적 不問」으로 우수 人材를 스카우트, 석·박사급 人材를 매년 1000명씩 늘려 가고 있다.

또한 미국·EU·일본·중국 등 세계 주요 거점에 연구소의 설립을 확대시키고 있다. 연고지를 떠나기 싫어하는 현지 우수 人材를 채용하기 위해서다. 러시아·인도·중국 등 기초과학 강국의 人材를 국내 대학에 유학시키는 프로그램도 확대하고 있다.

또 각 분야에서 재능과 끼가 있는 人材를 중·고교 때 조기 발굴, 기업에 필요한 人材로 육성하는 멤버십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국내의 현행 입시 위주 교육 풍토에서 우수 人材를 키우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멤버십 프로그램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2002년 「李健熙 장학재단」이 설립되었다. 李健熙 회장-李在鎔(이재용) 상무가 출연, 현재 그 기금이 5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李健熙 장학재단」의 수혜자는 미국·유럽의 일류대학에 진학한 이공계 학생, 인도·러시아·중국 등지의 인문·사회 및 자연계열 유학생이다. 장학금은 선발된 학부생과 석·박사과정 학생 100명에게 1인당 연간 5만 달러(미국 유학생 기준)를 지급하고 있다.

<기업이 人材를 양성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며, 양질의 人材를 활용하지 못하고 내보내는 것은 경영의 큰 손실이다. 부정보다 더 파렴치한 것이 바로 사람을 망치는 것이다>

위의 구절은 「李健熙 에세이」에서 인용한 것이다. 李健熙 회장은 I자형 人材를 싫어하고 「T자형 人材」를 좋아한다. I자형 人材란 한 가지 분야에서만 정통하고 다른 분야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말한다. T자형 人材는 자기 전문 분야는 물론이고 다른 분야까지 폭넓게 알고 있는 종합적인 사고 능력을 갖춘 人材를 말한다. T자형 人材가 바람직한 이유에 대한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T자형 人材는 입체적 사고, 전체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갖추고 있어서 어떤 임무가 주어지든 I자형 人材보다 훨씬 뛰어난 업무 능력을 발휘한다.

둘째, 앞으로는 서로 다른 기술이나 산업이 결합하여 새로운 분야가 창조되는 「복합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T자형 人材 같은 종합 기술자가 더욱 필요하다.

셋째, 1980년대부터 시작된 경영 합리화와 한계사업 정리가 거의 모든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는 만큼 T자형 人材는 설 땅이 있지만, I자형 人材는 쓸모 없게 된다.

『三星이 처음 「7·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를 실시했을 때 우리 임직원들조차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강행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 사원들에게 자기 계발의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내 나름의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자기 계발을 강조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T자형 人材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경영자 조건

李健熙 회장은 『경영자라면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창조해야 하며, 변화에 대한 뚜렷한 방법을 제시하고, 조직內에 전파할 수 있는 경륜이 요구된다』고 강조하면서 경영자의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하는 21세기 최고경영자의 첫째 조건은 「지혜」이다. 사물과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면서 미래에 대비하는 데는 지혜가 필요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관리의 실패는 언제라도 회복이 가능하지만 지혜 부족에 의한 전략의 실패는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요구하는 경영자 자질의 둘째 조건은 혁신의 추구, 셋째 조건은 정보력, 넷째 조건은 국제감각이다.

李健熙 회장의 用人術(용인술)은 과거보다 훨씬 부드러워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 「벤허」에 말이 이끄는 전차경주가 나온다. 벤허와 멧살라의 말을 모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멧살라는 채찍으로 말을 강하게 후려치면서 달리다 패배한 반면, 벤허는 채찍 없이 말을 몰아 승리한다. 三星에서는 이제부터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지만,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벌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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