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기사

창간 25주년 기념 기획연재 ③ 三星의 세계 一等主義 연구

이건희의 中國시장 공략 10년,『이제 우리는 中國과 同行한다』

글 정순태 기자  200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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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7일 오전 10시에 仁川국제공항을 출발한 여객기는 오전 10시45분(한국시간으로는 오전 11시45분)에 北京(베이징)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새삼, 「中國은 가까워진 나라」라고 느꼈다. 北京의 하늘은 黃砂(황사)로 덮여 있었다. 北京의 黃砂는 곧장 서울의 하늘을 뒤덮는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맑은 날』이라고 했다.

北京공항에서 「中國의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는 中關村(중관촌)으로 직행했다. 도로변 요지에는 三星·LG·현대차의 홍보판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北京은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고 한다. 필자의 눈에도 작년의 北京과 확실히 다르게 비쳤다. 中關村 접근로인 제3순환도로의 길 양쪽에는 20~30층 신축 건물이 林立해 있다.

中關村의 중앙부에 위치한 海龍大廈(하이룽따샤)를 찾았다. 여기서 따샤는 「호텔」이 아니라 「빌딩」을 뜻한다. 하이룽은 이 빌딩의 소유주인 北京海龍資産經營集團을 나타낸 것이다. 「集團」은 우리나라의 「그룹」에 해당된다. 20층 빌딩인 하이룽빌딩의 1~6층에는 첨단 디지털(中國語로 數?) 제품 취급 점포만 입점해 있다.


『三星제품은 세계일류』

먼저, 6층의 33호점 「亦夫科技(역부과기·이푸테크놀로지)」에 들렀다. 三星製의 無人監視(무인감시)카메라 전문판매점이다. 바로 건너편에 日本 소니製 無人감시카메라 전문점이 있다. 판매부의 여성직원 王俠(왕시아)씨에게 물었다.

―三星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가는 어때요.

『우리 고객은 은행·회사·공공기관인데, 대체로 三星 제품에 만족하고 있어요』

―앞에 있는 소니 전문점과 비교하면 판매실적이 어떻습니까.

『우리가 앞서죠』

―소니라면 세계적 메이커 아닙니까.

『우리 中國人은 日本을 별로 좋게 보지 않습니다. 일본은 中日관계사를 왜곡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中國땅 釣魚島(조어도·일본에선 「센가쿠列島」라고 함)를 점령하고 있거든요. 며칠 전까지 北京과 上海에서 反日시위가 벌어졌는데, 上海 쪽이 더 치열했다더군요』

그렇다. 필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 빌딩 6층에 오를 때 동승한 中國人들의 目子가 심상치 않았다. 일본인으로 오해했는지 「르뻔(日本)」인지, 「르뻔런(日本人)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수근거림도 얼핏 필자의 귀에 와 닿았다.

―아이구, 三星이 中國 인민의 反日감정 때문에 재미를 좀 보고 있군요.

『「三星제품은 세계일류」라는 인식이 中國人의 머리에 새겨져 있습니다』

6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면서 매장을 둘러보았다. 中國에 진출한 外資기업의 제품, 외국에서 직수입한 제품, 中國 로컬기업의 제품 등이 치열한 품질 및 가격 경쟁을 벌이는 현장이다. 이곳에는 물론 三星·LG 제품도 여러 점포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三星의 LCD(液晶디스플레이) TV는 화면의 선명도에서, 휴대전화는 종류의 다양성과 디자인에서 경쟁 제품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한국 시장에서는 고전하는 三星製 MP3도 손가락 두 개만 한 것이 무척 앙증맞게 보였다.

1층에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19층에 있는 하이룽그룹의 홍보실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안은 참으로 可觀(가관)이었다. 첨단 전자제품을 잔뜩 실은 카트 두 대가 승객들을 밀치고 들어왔다. 필자는 부딪치지 않으려고 엘리베이터 벽면에 오징어처럼 몸을 바짝 붙였다. 카트를 모는 청년들은 승객들과의 충돌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들이 내릴 층에서 카트를 몰고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인의 모습은 「빨리 빨리」였고, 中國인의 전통적 모습은 「만만디(漫漫的·천천히)」였다. 그러나 이제 北京의 「콰이콰이(快快·빨리빨리)」가 서울의 「빨리빨리」를 웃돌았다. 엘리베이터 안은 활력 넘치는 지금 中國의 축소판이었다.


『애니콜 디자인이 멋있잖아요』

사전 약속을 하지 않았음에도 하이룽그룹 홍보책임자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잠시 기다리니까 눈에 번쩍 띄는 30代 초반의 美女가 필자 앞으로 다가와 명함을 건넸다. 직책이 「總經理辦公室(총경리판공실)의 「公報宣傳主管(공보선전주관) 高曉莉(고효리·카오샤오리)」이다.

회장 직속의 홍보 총책임자이다. 아, 이런 중요 포스트에 이렇게 젊은 여성을 앉히다니!

中國은 과연 급변하고 있다.

―하이룽빌딩에 입점해 있는 점포가 몇 개나 됩니까.

『디지털 제품 취급점만 400여 점입니다』

―하루에 이곳을 찾는 고객은 얼마나 됩니까.

『평일이면 3만 명, 휴일에는 4만 명 정도입니다. 春節(춘절: 음력설), 勞動節(노동절), 建國節(건국절) 등 휴가기간에는 하루 7만 명에 달하는 고객들이 찾아와 주신 적도 있습니다』

―제가 8년 전에 北京大學을 방문하면서 中關村 앞을 지난 적이 있는데, 그때와 비하면 天地開闢(천지개벽)이 되었군요.

『1999년 하이룽따샤가 처음 오픈할 때만 해도 이곳은 로컬기업의 白色家電을 취급하는 한산한 전자상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디지털 제품만 취급하는 빌딩만 7~8개입니다. 하이룽빌딩 동쪽과 북쪽엔 綜合科技(테크놀로지)小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中關村에서 하이룽따샤의 랭킹은 어떻습니까.

『빅 스리(3) 중에서 1등입니다』

―휴대폰은 어떤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십니까(그녀를 통해 구매력이 높은 「新貴族(신꾸이주)」의 취향을 알고 싶었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호주머니 속에서 三星 애니콜을 꺼내 보였다. 그 순간, 그녀의 덧니와 보조개가 드러났다. 그녀의 음성은 그녀의 영어 이름 「캔디 가오(Candy Gao)」처럼 부드럽다. 中國의 전통적 전략의 하나인 美人計(미인계)가 아닌가.

―왜 애니콜을 좋아하십니까.

『디자인이 멋있잖아요』

―모니터는 어떤 걸 사용하십니까.

『LG제품인데, 괜찮아요』

―MP3는요.

『국산(中國製)입니다』

―노트북 컴퓨터는 어떤 걸 쓰십니까.

『淸華大學에서 만든 겁니다(中國에서는 대학이나 軍 등에서도 기업을 경영한다)』

―디지털카메라는 어떤 제품을 갖고 있습니까.

『日製 캐논입니다』

―집에서 시청하는 TV는요.

『中國·미국 合資기업에서 생산한 겁니다』

―세탁기는요.

『하이얼(海爾)입니다(하이얼은 中國 제1의 白色家電 메이커다)』

그녀에게 하이룽그룹의 홍보 책자 한 부를 달라고 청했다. 내용은 그룹 간부의 얼굴 사진만 크게 싣는 등 좀 엉성했다. 中國의 빌딩도 아직은 外觀(외관)에 비해서는 인테리어가 좀 떨어진다. 그야 아무튼 하이룽그룹의 이념도 시대의 흐름과 호흡을 함께하고 있다. 그것은 求新(구신)·求變(구변)·求實(구실)이다.


北京大·淸華大 부근의 「실리콘 밸리」와 서울大 주변의 考試村

中關村에서 北京大·淸華大 등 10여 개의 대학교가 몰려 있는 대학촌 앞을 走馬看山(주마간산)으로 지나쳤다. 北京의 淸華大·北京大와 上海의 復旦大(복단대)· 交通大 등 中國의 4~5개 대학은 이미 「세계 100大 대학」에 진입해 있다. 韓國의 대학 중에는 거기에 끼어든 대학이 하나도 없다. 서울大가 겨우 세계 150大 대학에 턱걸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三星그룹 李健熙 회장은 『21세기는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도 서울의 일각에선 서울大 無用論이 거론되고 있다.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인이라면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北京의 대학촌은 몰라보게 변했다. 흙먼지를 폴록 날리던 대학촌 앞길은 10차선 도로로 말끔히 포장되어 있었다. 대학이 中國의 「콰이콰이(快快)」를 선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까지 와서 가까운 和園(이화원)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을 굳이 찾은 것은 국가경영을 모르는 집권자가 얼마나 나라에 해로운 존재인지, 그 현장에서 느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화원은 淸 멸망기의 최고 실력자 西太后(서태후)가 무려 48년간 國政을 농단하던 別宮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황제가 직접 뽑는 「秀女(수녀)」로 열일곱 살에 入宮하여 咸豊帝(함풍제)의 유일한 皇子 同治(동치)를 생산했다. 1860년 영국군이 北京에 진격하자 함풍제는 熱河(열하: 지금의 內몽골 承德)로 도망쳐 그곳에서 병들어 죽었다. 여섯 살 짜리 아들 同治가 황제에 오르자 그녀는 垂簾聽政(수렴청정)을 했다. 동치제가 재위 13년 만에 죽자 이번에는 세 살밖에 안 되는 光緖(광서)를 황제로 올려놓고 수렴청정을 계속한다(광서제는 서태후의 여동생과 서태후의 시동생이 낳은 아들이다).

서태후는 궁중의 파워게임에는 능란했지만, 국가경영에 긴요한 경륜이 없었다. 그녀가 저지른 최악의 失政은 1894년 자신의 환갑 축하연을 베풀기 위해 해군 증강용으로 英國에서 빌린 거액의 나랏돈을 횡취한 사실이다. 이것이 淸日戰爭(청일전쟁) 때 함대의 포탄 부족으로 패전에 이르게 한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

저녁은 북한 직영 음식점 「해당화」에서 먹었다. 다른 음식점보다 음식값이 3~4배 비싸다고 소문난 곳이다. 과연 그러했다. 나중에 나온 계산서에 의하면 옥수수로 빚은 30도 짜리 소주 한 병 값으로 무려 150위안(우리 돈 1만8050원)이나 계상되어 있었다. 짧은 검정 치마와 흰 저고리 차림의 「金○○」이란 이름의 복무원(종업원)에게 물었다.

―어디 金씨입니까.

『金海金哥(김해김가)입네다』

수년 전만 해도 「복무원 동무」들에게 貫鄕(관향)을 물으면 「우린 그런 것 모릅네다」라고 대답했다. 북한사람도 조금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무원 동무, 「수령휘장(배지)」은 달지 않았군요.

『어떻게 수령님 휘장을 이런 일옷에다 답네까』

「해당화」에서 나와 승용차를 타고 北京의 신흥 아파트단지인 望京(왕징)小區로 달렸다. 조선족 가이드 朴永浩씨가 『동양 최대의 아파트단지인데, 이곳에 「코리아 타운」 이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파트단지 주민 30만 명 중 한국인 거주자가 5만 명, 조선족까지 합치면 6만 명이 몰려 산다고 한다.

과연 「코리아 타운」다웠다. 밤늦은 시간인데도 전주비빔밥, 콩나물국밥, 당구장, 노래방, 룸살롱 등의 한글 간판이 번쩍거리고 있다.

이제, 이런 「코리아 타운」은 上海(상하이), 靑島(칭다오) 등지에도 형성되어 있다. 시가 곳곳에서 한국음식점이 눈에 띈다. 이제 中國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30만명을 웃돈다. 어학연수생을 포함한 유학생은 10만 명에 이른다. 中國에 들어가는 한국인 여행자가 연간 200만 명을 넘어섰다. 대륙을 향한 사상 유례가 없는 一大 민족적 러시다.


『이제는 三星中國 아닌 中國三星』

4월28일 아침, 朝陽區 建國路에 위치한 「中國三星集團(그룹)」을 찾아갔다. 「차이나 머천트 타워 빌딩」 22층 「三星集團中國總部」 회의실에서 李哲禧(이철희) 상무를 만났다. 당초 朴根熙(박근희) 총재와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朴총재가 전날 업무협의차 서울로 날아갔기 때문에 李상무가 대신 필자와 인터뷰했다.

朴根熙 총재에게는 몇 가지 질문을 메모해 中國三星 총재실에 남겼는데, 그에 대한 답변서가 서울로 돌아와 李哲禧 상무와의 인터뷰를 담은 녹음테이프를 풀기도 전에 e메일을 통해 필자에게 전달되었다. 답변의 내용에 있어 총론에 해당하는 朴根熙 총재와의 書面 인터뷰를 먼저 싣는다.

―三星은 中國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中國은 높은 경제 성장과 함께 제대로 대응하면 기회가 많은 전략적인 지역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中國은 지난 25년간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비교우위 산업의 육성과 外資 유치를 통해 자본과 기술을 축적하는 데 성공하여 연평균 9%대의 경제 성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2008년 北京 올림픽, 2010년 上海 세계박람회 등 굵직한 행사를 앞두고 있는 등 향후 높은 성장이 기대되고 있는 중요한 사업 기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한편, 中國은 全세계 500强 기업의 대부분이 진출해 있고, 中國 현지기업이 급속히 성장함에 따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으며, 外資기업에 대한 優待정책 축소를 비롯한 中國정부 정책의 변화 등 불확실성 요소도 증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三星은 中國에 약 90개의 거점을 운영하고 있고, 5만여 명의 인력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中國이 글로벌 경영의 중요한 기지로서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향후 새롭게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중점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中國은 무엇입니까.

『2003년 6월 사장단회의에서 李健熙 회장께서 「한국의 미래는 중국에 달려 있고, 三星의 미래도 중국 시장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어느덧 우리나라의 제1 무역상대국이 미국을 제치고 중국이 되었습니다』

―三星의 中國 진출은 다른 경쟁기업보다 2~3년 늦은 1995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현재, 三星은 한국기업 가운데 中國에 가장 많이 투자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이에 이르는 과정은 어떠했습니까.

『현재, 三星은 전자 사업을 중심으로 16개 관계사 그리고 모직·조선·금융·서비스 등 분야에 진출해 있습니다. 1992년 天津(천진)의 코닝, 동관의 전기, 혜주의 오디오 공장 진출을 시작으로 휴대폰·노트북·LCD·고급 家電제품 등 주요 IT 분야에 진출하였습니다.

현지에서 연구개발·구매·생산·판매·관리 등 경영활동이 이루어지는 현지화 경영의 일환으로 北京통신연구원, 蘇州(소주)·杭州(항주) 반도체 연구소, 上海 디자인연구소, 南京 소프트웨어연구소 등을 설립하고 각 생산법인內 연구개발 기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화재보험·생명보험 등 금융 분야에도 진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三星中國」이 아니라 「中國三星입니다. 三星의 對中 직접투자액은 2004년 말 현재의 누계가 40억 달러입니다. 이것은 한국 기업 전체의 對中 직접투자액의 약 22%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中國의 지도자들이 三星전자를 찾는 까닭

―李健熙 회장이 「中國 시장에서 기회를 놓치면 글로벌 경영에서 百戰百敗한다」라고 강조했는데,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李健熙 회장께서 韓中수교 전에 이미 中國을 방문하였고, 수교 후에도 여러 번 中國을 방문하여 中國의 각계 인사들과 만나고, 中國의 성장 가능성과 중요성을 확인하고 中國시장을 강조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中國은 그동안 경제적으로 급속히 발전하여 아시아 및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한국이나 三星에 있어서 中國은 규모나 중요성에 있어 떼어 놓을 수 없는 현실로 인식하고 있는 데 기인한 것으로 봅니다』

―李鵬(리펑), 江澤民(장쩌민), 朱鎔基(주룽지), 胡錦濤(후진타오) 등 中國 지도자들이 한국에 오면 반드시 三星전자 공장을 방문하는데, 무슨 사연이 있는 겁니까.

『李鵬 총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반도체 등에 관심을 보여 우리 정부가 三星전자 공장을 방문하게 주선하였으며, 그 이후 中國 영도자들이 전자 산업에 관심이 높아 한국 방문 시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자기업인 三星전자를 방문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三星의 中國 시장 진출은 어떻게 추진되었으며, 향후 방향은 어떤 겁니까.

『三星은 中國 진출 초기엔 中國의 노동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생산기지로 출발하였으나 몇 년 전부터 中國이 全세계 超일류 기업들이 모두 진출하는 등 세계 최대 시장의 하나로 성장함에 따라 中國 내수시장 진출을 강화하게 되었습니다(세계 500大 기업 중 400개가 中國에 진출해 있다).

투자 분야도 단순 조립 생산에서 첨단 IT제품, 고급 家電제품 등으로 전환하고 있고 현지에서 연구개발·구매·생산·판매 등이 이루어지는 현지화 경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연구소, 판매 및 유통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고, 전자 분야 이외 보험 등 금융 및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제2의 三星」 건립 추진

―中國 시장에 대한 三星의 향후 핵심 전략은 무엇입니까.

『中國三星은 금년 창립 10주년을 맞아 한 단계 도약을 하기 위해 그동안 추진해 온 현지화 경영을 가속화하여 中國 내에 「제2의 三星」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中國三星은 「中國 국민에게 사랑받고 中國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이라는 비전을 설정하고, 네 가지 중점 전략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첫째, 고객 위주의 경영을 강화할 것입니다. 고객은 우리 사업의 바탕이며 자산이라고 생각하며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일하는 시스템과 자세를 철저하게 바꿔 나갈 계획입니다.

둘째, 三星의 경영이념이고 프라이드인 최고의 人材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자 합니다. 中國에는 우수한 人材가 많아 우수 人材를 확보하고 양성하여 中國이 人材의 집합소가 되도록 해나갈 계획입니다.

셋째, 中國 국민에게 사랑받고 中國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고객들에게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눔의 경영을 추진하여 진정한 中國 기업으로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현재 「희망 공정 초등학교」 건립, 中國 주요대학에 대한 장학금 지급 등 교육 지원, 開眼(개안) 수술, 義足(의족) 지원 등 의료지원, 환경보호 , 각종 봉사활동을 전개해 나갈 계획입니다.

넷째, 李健熙 회장께서 거듭 강조하셨지만 中國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제때에 예측하고 준비해 나가는 능력을 키워 나가도록 합니다. 이러한 전략은 모두 궁극적으로 임직원들이 외부에 자랑하고 싶은 회사,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활기찬 사업장, 근무하고 싶은 직장을 만들고자 하는 中國三星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의 발전과 同行할 것입니다』

李健熙 회장은 『중국 시장에서 기회를 놓칠 경우 미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기 때문에 三星 그룹 차원에서 중국 시장 경영전략을 새롭게 짜도록 지시한 바 있다.


작년 三星의 對中華圈 매출액 240억 달러

다음은 中國三星 李哲禧 상무와의 인터뷰. 李哲禧 상무라면 1992년 韓中국교수립 이전에 이미 대만·홍콩·싱가포르에서 「三星의 차이나 워처」로 활약해 온 三星그룹의 中國전문가이다.

―三星그룹의 對中國 매출액이 급증하고 있죠(三星의 對中國 매출액은 1999년 38억 달러, 2000년 56억 달러, 2001년 60억 달러, 2002년 75억 달러, 2003년 100억 달러를 기록했다).

『2004년 三星그룹의 對中國 매출액은 16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160억 달러에 對홍콩 매출액도 포함된 것입니까.

『對中國 매출액 160억 달러에 對臺灣 40여억 달러와 對홍콩 30여억 달러를 포함하면 三星의 2004년 對中華圈 매출액은 240억 달러에 달합니다』

―어제 中關村을 둘러보았는데, 三星의 마케팅 전략이 구매력이 높은 「新貴族(신귀족)」 계층을 겨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예, 실제로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하이룽따샤의 매장에서 三星의 LCD(液晶디스플레이)의 색상과 선명도가 경쟁사 제품을 압도하고 있던데요.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中國의 휴대폰 시장은 어느 정도입니까.

『금년 1/4분기의 신규 가입자가 1400여만 명이었습니다. 1년에 中國 시장에서 팔리는 휴대폰은 약 8000만 대입니다. 中國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三星 애니콜은 연간 900만 대 판매, 시장점유율 1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三星 애니콜이 노키아, 모토로라 등의 경쟁제품보다 개당 1000위안(우리 돈 12만5000원) 정도 비싸다던데요.

『경쟁사 제품보다 1000위안 정도는 아니고 몇백 위안 비쌀 것입니다. 휴대폰의 경우 화소가 얼마인지, 몇 화음짜리인지, 언제 나온 모델인지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삼성은 低價 모델은 출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高價 정책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가격을 받는 것입니다』

―휴대폰 마케팅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중국인 상무가 휴대폰 판매를 맡고 있습니다. 그는 올해 임원이 됐는데, 이렇게 우리는 현지인 간부 중심으로 하여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朴根熙 총재의 「제2三星 건립 계획」을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예컨대, 최고의 人材와 기술 확보를 실현하기 위해 R&D(연구개발) 부분까지도 여기서(中國三星에서) 다 하겠다는 것입니다. 中國三星 산하에 4개 연구소와 R&D 관련 거점 4개가 있는데요, 이들 연구소뿐만 아니라 생산법인에서도 연구개발 기능을 더 강화, 그야말로 현지 경영체제를 완전히 구축하려는 것입니다』

―三星이 추진하는 中國 현지의 싱크탱크 「SERI 차이나」는 잘 되고 있습니까.

『中國의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中國을 잘 알아야 되거든요. 그동안 우리가 中國을 연구한다고 했지만 체계적이지 못했고, 당면 과제 해결에 급급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三星경제연구소에도 中國연구실이 있지만, 현장에서도 지원해야 하겠다는 판단에서 현장 포스트를 설치하려는 것입니다. 금년 중에 SERI 사무소를 설치하고, 中國人 브레인을 스카우트할 계획입니다. SERI가 설립되면 三星그룹의 해외 주재 경제연구소 제1호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사람들은 三星이 中國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三星의 정보 획득·분석 능력을 그만큼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외부에서 저희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구요. 실제로 三星이 보는 中國이나 외부에서 보는 中國이나 대차 없습니다. 오히려 中國을 연구하는 분들께 저희가 배워야 합니다. 中國에서 일했던 저같은 사람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中國의 성장 지속된다』

―三星에서는 이미 3000여 명을 배출한 「지역전문가」 제도가 있잖습니까. 작년에 양성된 지역전문가 265명 중 거의 절반인 120명이 「中國전문가」이더군요.

『그 사람들은 「지역전문가」가 아니고 지역전문가 양성과정을 거친 「지역전문가 후보」들입니다.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엔 中國전문가가 없습니다. 전문가라고 하면 전망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수준은 이미 드러난 현상을 가지고 분석하는 정도입니다. 미래를 예측·분석·대비하는 전문가는 아직 없습니다』

―日本의 전문가들은 中國의 일당독재, 부정부패 심화, 지역 간 소득격차 등을 들어 그 장래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이고, 미국의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黃禍論的(황화론적) 또는 미래의 패권경쟁국이라는 시각으로 中國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三星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럼 개인적인 견해는 어떻습니까.

『日本은 견제적 입장에서 中國을 쿨 다운시키려는 것 같구요. 中國의 경제력이 20~30년 후에 미국을 능가한다는 예측도 과대포장이 아닌가 해요. 어떻든 中國은 성장 궤도에 올랐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현재 中國에 문제점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어느 시점에선 내부문제로 홍역을 치를 터이지만, 경제발전이라는 큰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中國의 제4세대 리더들이 中國 내부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시의적절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中國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1997년 홍콩 영토의 회복 때까지 약 150년간 세계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고는 하지만, 세계 4대문명(황하문명) 발상지로서 오늘날 세계 인구의 25%를 점하는 대국으로, 세계 제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나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中國이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後發效果(후발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문화적 깊이에 의해 선진국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저는 中國의 저력을 믿습니다』

―수년 전 中國의 東北3省을 여행하면서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경험한 일이지만, 포장도 안 된 자갈길 상태인데 톨게이트만 지어 놓고 고속도로 사용요금을 챙기더군요. 이런 건 언론이 살아 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에요. 鄧小平 이후 中國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하고 있다지만, 비판받지 않는 공산당 1당 독재下에서는 이런 부조리가 개선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中國을 하나의 나라로 보면 안 됩니다. 영국·프랑스 같은 서부 유럽, 체코·헝가리 같은 중부 유럽, 루마니아·불가리아 같은 동부 유럽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문제 아닙니까. 廣東省의 주민소득이 인근 貴州省의 17배라는데, 이런 소득격차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어떻게 하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까.

『中國은 넓은 나라인 만큼 한국이나 일본처럼 한꺼번에 무엇을 이룰 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鄧小平의 先富論, 즉 點→線→面의 순서로 사회발전을 성취하려는 겁니다. 먼저 일부 지역(주로 연안 지역)을 자라게 하고, 그것을 線으로 연결시키고, 다시 線과 線을 연결시켜 面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富國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三星과 중국 家電체인 1위 國美와의 전략적 제휴

中國三星 李哲禧 상무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三星과 「전략적 제휴」 관계인 中國 「國美」의 백색전자 제품 北京 量販(양판) 체인 빌딩을 찾아갔다. 國美그룹은 中國 국내시장 체인업계의 연속 3년간 3위, 家電체인 1위를 연속 4년간 기록하고 있는 유통재벌이다. 中國三星 기획팀 鄭文鶴(정문학) 과장의 소개로 國美의 北京 책임자 王利群씨를 만났다.

―國美가 三星과 전략적으로 제휴한 까닭 무엇입니까.

『三星은 全품목의 전자제품을 라인업하고 있는 세계적 메이커이기 때문에 國美에겐 최상의 파트너입니다. 國美는 양판체인업체로서의 低價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三星의 고급 이미지를 이용할 필요가 있었고, 三星으로서는 國美의 광범위한 유통망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이 北京 체인 빌딩에서 三星제품의 판매 실적은 어떻습니까.

『이곳의 전체 판매 실적을 보면 三星제품은 2위입니다. IT제품을 보면 휴대폰에서는 三星이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휴대폰에서는 三星이 1위이고, 캠코더의 경우는 소니가 1위, 三星이 2위인데, 고객들의 反日감정 때문에 三星이 곧 1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三星제품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三星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이 좋습니다. 가격 부문에 조정의 여지가 있다면 더 잘 팔릴 것으로 봅니다. 三星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한 체인店長들은 「한국 가보니 신제품이 많더라」면서 「신제품이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더군요』

―한국과 中國 시장에 대한 三星 신제품의 出市 시간차는 어느 정도됩니까.

『종전엔 한국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6개월 텀을 두고 들어왔는데, 작년부터는 그 기간이 1개월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國美의 北京 책임자는 필자를 매장으로 안내했다. 드럼형 세탁기가 진열된 코너. 中國 로컬 백색가전 메이커 제1위 하이얼·三星·LG 드럼형 세탁기가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성능은 알 수 없지만, 디자인에서 三星·LG 제품이 하이얼 제품을 앞서고 있었다.

냉장고 코너. 여기선 三星과 LG의 兩門型 냉장고가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 國美의 北京 책임자는 『三星은 高부가가치 마케팅 전략, LG는 광범한 비즈니스網 구축 전략을 구사하는 것 같다』고 대비했다. 그녀는 三星의 3단 냉장고 앞에서 『三星은 신제품 능력이 뛰어나고, 매우 스피디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의 三星전자에 연수하러 갔던 점장들이 「中國 시장에서 3단 냉장고가 잘 팔릴 것 같다」고 건의했더니 불과 6개월 만에 신제품을 출시했다』면서 『다른 메이커 같으면 1년6개월쯤 걸렸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北京大 출신 朝鮮族 신입사원,「三星엔 학습할 게 많아 入社」

필자의 國美 양판점 상가 취재에 동행한 三星 鄭文鶴 과장의 뒤를 신입사원으로 보이는 청년이 따라다녀 눈길을 끌었다. 과연 그는 北京大 중문학과를 금년 6월에 졸업할 예정인 조선족 출신 신입사원이라고 한다. 中國三星 본부 앞에서 鄭文鶴 과장과 헤어지면서 그를 잠시 커피숍으로 불러내 면담했다. 스물네 살의 林成彬씨는 흑룡강省의 鷄瑞(계서)라는 小도시 출신이라고 했다.

―北京大에 합격하려고 과외공부를 좀 했겠네요.

『그럴 집안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10년 전에 별세하고 어머니 밑에 자랐습니다』

―대학 학비는 누가 댔어요.

『세 살 위의 형이 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를 하면서 저의 北京 유학비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공부를 썩 잘했군요.

『그건 아니구요. 운이 좋았어요. 흑룡강省에서 北京大에 60명 들어가는데, 저는 그 속에 들었어요. 中國에서는 소수민족에게 대학입시에서 가산점(10점)을 주거든요』

―고교성적은 학년 1등이었겠네요.

『3학년 50명 중에 문과가 17명인데, 거기서 1등을 했습니다』

―三星에 입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학습할(배울) 것이 더 많을 것 같아서요』

―입사 동기생은 몇 명입니까.

『다섯 명입니다』

―三星의 연봉과 中國 제일의 家電 메이커 하이얼의 그것을 비교하면 어떠합니까.

『첫 월급을 받지 않아 구체적인 것은 모르겠습니다만, 三星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월급을 받으면 어떻게 쓸 작정입니까.

『어머니께 보낼 생각입니다』

―앞으로 꿈은 무엇입니까.

『우선은 부여된 임무를 잘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돈 있다고 자랑 말자」

4월28일 오후 6시45분 北京공항을 출발한 여객기는 2시간 만인 오후 8시45분 「中國의 경제 수도」 上海의 浦東(포동)공항에 도착했다. 浦東지구엔 외자기업의 공업단지를 중심으로 하는 신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마중나온 가이드 卞甫坤씨와 함께 눈에 띄는 한국음식점에 들렀다가 「상하이저널」(上海韓國商會內部交流信息報)이라는 한글 주간신문(2005년 4월 다섯째주)을 발견했다.

40페이지짜리 「상하이저널」의 내용이 상당 수준이었다. 中國 거주 한국인이라면 유익할 듯한 정보가 많았다. 그 특집기사 중 「中國에서 해야 할 50」과 「中國에서 하지 말아야 할 50」을 읽고 흥미진진해서 무릎을 쳤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中國에서 해야 할 50>
1. 中國을 배우고 연구하자.
29. 中國의 고가시장을 공략하자.
35. 능력이 된다면 회계직원은 한국인으로 두자.
45. 음주가무를 자제하자.
50. 서울에서 온 출장자들은 밤에 꼭 호텔까지 안내하자.

<中國에서 하지 말아야 할 50>
2. 中國語를 너무 유창하게 하지 말자.
11. 돈 있다고 자랑 말자.
30. 직원의 몸에 손대지 말자.
44. 밤늦게 배회하지 말자.
47. 中國人에게 한국어 상소리를 가르치지 말자.
48. 골프에 너무 빠지지 말자.

上海의 밤은 휘황찬란한 노랗고 파란 건물 조명으로 요란하다. 북한의 金正日은 이런 上海를 둘러보고 「天地開闢」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中國은 참으로 지역차가 심한 나라이다. 필자가 흑룡강省의 省都 하얼빈市 취재여행을 하면서 겪은 일이 생각난다. 아파트 12층에 있는 취재원을 만나러 갔다가 밤 10시쯤 그 집을 떠났는데, 복도의 전깃불이 가버린데다 엘리베이터도 가동되지 않아 칠흑 속의 계단을 걸어서 내려와야 했다. 中國의 1인당 GDP는 아직 1100달러 수준이지만, 上海나 北京의 그것은 5000~6000달러에 달한다. 되돌아보면 보면 1980년 한국의 1인당 GDP는 1500달러 수준이었고, 88서울올림픽을 개최할 때 한국의 1인당 GDP는 5000달러에 약간 미달이었다.


「地上의 天堂」에 건설한 三星蘇州반도체

4월29일 오전 7시 蘇州를 향해 上海 美林閣호텔을 출발했다. ?寧(호녕)고속도로 등으로 150km를 1시간30분쯤 달려 蘇州 工業園區 톨게이트에 닿았다. 톨게이트 지붕 위에 얹힌 三星의 심벌마크가 그 지붕보다 훨씬 크다. 아무리 크면 좋은 것이 홍보라지만 이건 좀 겸손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蘇州 공업원구는 공업단지라기보다 차라리 하나의 아늑한 대공원이었다. 폭 100m가 됨직한 진입로 양쪽에는 봄꽃이 만발했다. 그 너머엔 엄청난 넓이의 인공호수 건설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蘇州는 中國 역대의 大시인들이 「물의 도시」, 「지상의 천당」이라고 찬탄한 바로 그곳 아닌가. 첨단 IT산업기지답게 굴뚝이나 매연 같은 건 없다. 다만 끊임없이 땅을 파 뒤엎는 건설공사로 먼지가 좀 많이 휘날릴 뿐이다. 면적 70km2의 산업기지內에 공장지역·상가지역·주거지역(아파트단지)도 질서정연하게 구획되어 있다. 톨게이트에 진입한 후에도 한참 달려 三星전자蘇州반도체유한공사에 도착했다. 방정호 총경리와 최완우 副총경리를 만났다.

―蘇州 IT산업기지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싱가포르의 화교자본이 주도했습니다. 中國 정부가 개방·개혁을 부르짖으면서 싱가포르를 배우려고 노력하자, 싱가포르 정부가 호응하여 中國 땅에 월드 스케일의 산업기지를 건설하려고 했어요. 이에 中國의 여러 도시들이 다투어 유치 신청을 했는데, 싱가포르 측에서 長江 델타지역의 핵심부의 하나인 蘇州를 선택한 것입니다. 싱가포르의 화교들도 「하늘에는 天堂, 땅에는 蘇州」라는 말은 잘 알거든요』

―산업기지의 건설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던데, 언제 끝납니까.

『1기 지역은 복합개념의 공단, 2기 지역은 수출자유지역과 주거지역, 3기 지역은 첨단 IT 산업 중심의 기지로 병행 개발되고 있는데, 2007년쯤엔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蘇州 산업기지에 진출한 三星의 생산법인은 몇 개입니까.

『이곳에 三星의 4개 생산법인, 즉 우리 반도체가 1994년 12월에, 이어 家電이, LCD와 컴퓨터가 2002년에 진출해 있습니다』

―三星蘇州반도체(SESS)의 투자액은 얼마나 됩니까.

『현재까지 투자액 누계는 3억 달러, 금년 말까지 투자액 누계가 4억3000만 달러에 이를 것입니다. SESS는 三星전자 본사에서 100% 투자한 법인입니다』

―초기에는 한국內 三星전자 溫陽(온양)사업장의 제품 가운데 낮은 그레이드 부분을 이곳으로 이전시켰습니다. 본사에서는 낮은 그레이드를 더 이상 생산하지 않고 설비를 이곳으로 보내는 대신에 그 공간에 새로운 첨단 설비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2003년 12월에는 이곳에서도 D램 전용라인이 준공되는 등 양산체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溫陽 반도체와 경쟁한다』

―中國에 기술을 다 갖고 들어오면 우리는 무얼 먹고 삽니까.

『여기서는 後工程(후공정)만 하고 前工程(공정)은 안 합니다. 본사에서 웨이퍼를 들여와 조립만 하는 겁니다』

우리가 보통 「반도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웨이퍼」를 가공하여 高集積回路(고집적회로)로 만든 반도체칩이다. 반도체칩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원재료인 「실리콘 웨이퍼」를 만들어야 한다. 이 웨이퍼를 만들기까지를 前工程이라고 하는데, 반도체 산업의 핵심기술이다. 後工程은 웨이퍼 위에다 설계된 집적회로의 回路圖(회로도)를 옮겨 그리고, 칩의 기능을 부여하는 공정과 각 회로를 이어 주는 배선작업을 하는 조립작업이다.

―양산체제는 잘 됩니까.

『溫陽사업장에 새로운 설비가 들어오면 기존의 溫陽 설비를 그대로 이곳으로 옮겨와 플러그만 꽂으면 작동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는 中國 현지에서 기자재나 재료 개발로부터 생산까지 이뤄지는 현지 완결형 경영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溫陽반도체와 蘇州반도체 간에 가격차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SESS는 작년에 품질에 대한 국제인증을 다 받았습니다. 이제는 「Made in」이 아니라 「Made by」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결국은 三星전자 溫陽사업장과 경쟁관계가 되는 것 아닙니까.

『溫陽에서 이미 검증된 생산 기술력을 카피해 가지고 와 양산함으로써 비용절감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구요. 최근에는 溫陽사업장에 신규 도입된 설비와 동일한 설비가 이곳에도 시범적으로 동시에 들어와 신제품을 동시에 생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동시다발적으로 溫陽에도 들어가고 蘇州에도 전략적으로 투입되어 경쟁체제로 갈 수밖에 없는 양상을 띠게 될 듯합니다』

―中國인 오퍼레이터의 능력은 어떻습니까.

『워낙 인력자원이 많은 만큼 자질이 우수한 인력을 뽑아 쓸 수 있습니다. 여사원의 손 끝에서 품질이 나옵니다. 우리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때묻지 않은 모습을 보고 감동하기도 합니다. 임금은 한국의 8분의 1 수준입니다. 비록 경험은 별로 없지만 가르치면 흡수력이 빠릅니다』

―溫陽의 현장사원과 이곳의 현장사원 중 어느 쪽이 우수합니까.

『이곳엔 1년 미만의 신입 현장사원이 45% 정도인 만큼 작업 숙련도에서는 물론 溫陽 쪽이 낫지요』

―SESS의 종업원 남녀 구성비는 어떻습니까.

『모두 2800명인데, 남녀성비는 3대 7 정도입니다』

―조선족은 얼마나 됩니까.

『60명 정도입니다』

―蘇州 산업기지內에는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다수 들어와 있는데, 三星의 임금과 복지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업종에 따라 다른데, 1800여 개 입주 기업 중 上位 30% 안에 듭니다』

―SESS 내에서 어떤 언어를 사용합니까.

『中國語입니다』

―中國에 오신 지 얼마 되지도 않는 方사장께서도 中國語를 할 줄 아십니까.

『지난 2월14일 취임사를 하면서 다음에는 꼭 中國語로 말하겠다고 사원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적어도 공식 연설은 中國語로 한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 후 열심히 中國語를 공부해 지난 4월1일 처음으로 中國語 월례사를 했습니다』

―알아듣던가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다만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여러분과 호흡을 같이하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한다」고 했더니 박수를 많이 쳐 줍디다』

―이제 SESS가 中國에 설립된 지 10년이 되었는데, 현지화는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보십니까.

『현재 과장급 인력은 전부 中國人입니다. 조직·인력 관리를 현지인 중심으로 운영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중국인 중간관리자를 重視합니다. 그들 중 가장 앞서가는 사람은 부장급인 팀장補에 올라 있습니다. 1년 후에는 「補」자를 떼고 제조3팀장으로 승격시킬 방침입니다』

―그가 누굽니까.

『齊學軍(취쉬에쥔)이라는 이름의 SESS 1기생입니다. 浙江大(절강대) 工大에서 반도체를 배운 엘리트입니다. 그의 꿈은 SESS의 총경리(사장)를 하겠다는 겁니다』

―지금 만나볼 수 있습니까.

『지금 三星전자 본사에 가서 한국어를 배우는 등 연수를 받고 있습니다』


中國 소비자 가장 좋아하는 모니터 브랜드

SESS에 이어 蘇州 三星전자 液晶顯示器 유한공사(SESL)를 찾아가 손희창 영업지원부장과 동영화 공정1부장을 만났다. 液晶顯示器는 LCD의 中國語 표기방식이다. 中國內 거래선의 온 사이트(On-Site) 지원, 그리고 모듈 원자재 다원화 및 원가절감을 위해 2002년 蘇州로 들어온 三星의 생산법인이다. 부지 55만m2, 10만m2 규모의 공장이 제1차로 건설되어 2003년 7월부터 양산체제에 들어갔다.

2005년 3월 현재 노트북 PC와 모니터를 중심으로 月 100만 대를 양산하고 있다. 총 투자액 3억 달러. 종업원은 1700명이다.

―라인의 현장사원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까.

『LCD 사업장에는 머리가 좋은 女高 졸업생을 채용해야 하는데, 중국에서는 교사 인솔 아래 학교성적 상위 10% 이내의 우수자들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마치 20~30년 전의 우리나라와 비슷한 모습입니다. 지금 삼성전자 천안 LCD사업장에서는 이런 우수자들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蘇州 산업기지의 부지는 비싸지 않았습니까.

『LCD 제조는 첨단산업이라고 하여 우리에게는 m2당 50달러짜리를 5달러에 교부해 주었습니다. 삼성전자가 華城단지(반도체 생산)를 늘리면서 평당 180만원에 겨우 땅을 매입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특혜를 받은 것입니다. 평당 1800달러, m2로 환산하면 약 600달러 아닙니까』

三星 모니터는 국정보산업개발센터(CCID)가 발표한 「2004~2005년 IT시장보고서」에서 2004년 시장점유율 32.5%, 제1위를 차지했다. 작년 봄, 人民日報가 실시한 브랜드 선호도 조사에서도 中國 소비자가 가장 좋아하는 모니터 브랜드는 三星이었다. 三星은 質과 量, 그리고 현지화에서 일단 성공 궤도에 진입한 듯하다.


「우물 안 개구리」식 發想 버려야

中國 경제 약진의 동력은 외국인 직접투자(FDI)다. 中國은 세계의 기술과 자본을 중국의 방대한 시장과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끌어들이고 있다. 세금우대, 토지 염가 제공, 각종 법규 정비 등 메리트를 내놓음으로써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FDI 유치국으로 떠올랐다. 中國에 대한 FDI는 매년 500억~600억 달러씩 몰려들어 그 누계가 이미 55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세계 500大 기업 중 400개 기업과 그 협력업체들이 中國으로 몰려와 무한경쟁을 펼치는 바람에 과잉생산에 따른 在庫 누적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이제 고가품·프리미엄級 제품이 아니면 中國 시장에서 견뎌내기 어렵다. 中國 정부의 정책도 FDI의 액수보다 첨단기술이 묻어 있는 FDI를 희망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中國은 三星의 첨단기술을 원한다. 李健熙 회장은 말한다.

『우리도 모든 것을 국내에서 결정하겠다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발상을 버릴 때가 왔다』

中國 시장에 핵심기술이 넘어갈 경우 부메랑 현상으로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저하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韓國과 中國이 모두 승자가 되는 방식이 李健熙 회장의 숙제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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