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기사

[서평] 실낙원의 비극

한 醫務兵의 한국전쟁 체험 日記

글 정순태 기자  2004-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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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의 비극」의 저자 朴南植(박남식)씨는 광복 이후 사상적 고뇌를 겪고 있을 무렵 6·25 전쟁을 맞았다. 당시 20代 청년이었던 저자도 時流에 휩쓸려 이념적으로는 사회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저자는 1950년 8월 대한민국이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에 밀려 낙동강 이남의 좁은 국토만을 남겨둔 채 치열한 방어전을 치르고 있을 때 「비겁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자원 입대했다. 입대 후 1954년까지 4년간의 軍 생활 동안 그는 자신의 체험을 증언하기 위해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하였다. 이 메모와 일기를 바탕으로 저자는 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지나 자신의 전쟁 체험담을 540여 쪽의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醫務兵(의무병)으로 38선을 넘어 금강산을 지나 통천·원산·함흥·신포·청진까지 북한 땅을 밟으면서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사회주의 사상이 북한에서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이 사회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렸는지 상세하게 적고 있다.

함흥형무소와 반룡산 기슭에서 학살당한 수천 구의 시체를 거두는 현장을 비롯하여 이데올로기 대립과 전쟁의 참혹상도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中共軍의 攻勢에 의해 興南 철수로 이어지는 과정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저자는 북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야전병원의 일상, 동료 군인들의 인간적인 측면들을 고찰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그 이면에는 표리가 부동한 사회주의 혁명 및 공산주의에 대한 질타가 內在되어 있고,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에 대한 반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 參戰記는 매일의 날씨와 주변 풍경이 유려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어 마치 文人의 기행문을 읽는 것 같은 맛도 느끼게 된다. 老兵의 이 기록은 우리들을 과거에 사로잡아 두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을 제시하려는 시도이다. 국민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니고 앞날을 열어 가자는 뜻이다. 전쟁 기록이면서 그 밑바닥에는 휴머니티가 깔려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朴씨의 이야기는 月刊朝鮮 2003년 11월호에 「위대한 세대의 증언 ①-1928년생 朴南植의 戰中과 戰後」로 소개된 바 있다.●
Copyright ⓒ 정순태의 역사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