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기사

[심층인터뷰] 韓國言論史의 석학 鄭晉錫 교수

『지금은 韓國言論의 위기…親정권 방송부터 改革해야』

글 정순태 기자  200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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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일 토요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반포본동에 있는 반포플라자 빌딩 5층 사무실에서 鄭晉錫(정진석·65) 교수와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길이 막힐까봐 지레 걱정되어 좀 서둘렀더니 30분 일찍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1970년대 중반에 지은 구반포아파트단지 남쪽 귀퉁이에 위치한 상가 건물이다. 아직 사무실 문은 잠겨 있었다.

9시50분, 그가 나지막한 5층 아파트의 모퉁이를 돌아 빌딩 현관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열 살쯤은 젊어 보였다. 얼른 현관으로 내려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의 사무실로 올라왔다.

그는 한국언론사 연구의 제1인자이다. 때로는 기존의 학설을 뒤엎고, 때로는 언론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는 10여 편에 달하는 주요 논문, 16권에 달하는 저서로만 유명한 학자가 아니다. 개화기 이후 8·15 광복에 이르는 기간에 명멸한 신문들을 이 도서관과 저 도서관에서 찾아내 마디마디를 엮은 影印本(영인본)을 만들었고, 언론관계 문헌색인 작업과 자료집을 만듦으로써 한국언론사 연구의 「고속도로」를 훤하게 뚫어 놓았다. 그는 부지런하고 겸손하다.

『그런 작업은 몸으로 때워야 하는 작업인 만큼 재능이 부족한 저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방송·신문·잡지 등의 현업을 두루 섭렵하고 학계로 진출한 분이다. 그런 만큼 언론계에서는 발이 넓은 인물로 소문났다. 필자도 지난 30여 년 언론계의 말석에 일했던 탓으로 그와 몇 번 만났다. 그때마다 기자는 그의 일에 대한 열정과 해박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다만 이렇게 녹음기까지 틀어 놓고 하는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에게 질문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우선 언론 현안에 대한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17代 국회 개원을 앞둔 요즘, 여권의 실세들이 이른바 「언론 개혁」을 자주 거론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집권당의 개혁과제준비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언론사 소유 지분문제와 관련하여 시장점유율 15% 이상의 중앙 일간지에서는 大株主(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15~20% 이상 持分을 갖지 못하게 하고, 해당 언론사 의사결정에 다수의 株主가 참여케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언론개혁이라면 당연히 방송개혁이 시급한데, 그런 건 거론하지도 않고,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에 그 칼끝을 겨냥하고 있어요. 지금, 방송이 신문보다 영향력이 크고 문제점도 많아요. 관련 법안이 실제 어떻게 나올지 아직은 모르지만, 신문사의 소유지분을 제한하겠다는 것인데,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기본질서에 도전하는 改惡입니다』

―신문사 대주주의 소유지분을 제한하는 방법으로서는 어떤 것이 예상됩니까.

『첫째, 신문사 대주주의 주식을 강제로 빼앗아 제3자에게 분산시키는 방법이 있겠지만, 이것은 너무 과격한 것이라 실행에 옮기기 어렵겠죠. 둘째, 자본금을 늘려서 지금 대주주의 소유 지분을 낮추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셋째, 대주주의 지분을 1년 안에 얼마 팔고, 다음 1년 안에 또 얼마 팔라는 따위의 점차적 매각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기본질서에 도전하는 改惡

―그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조중동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거죠. 그런데 특정신문의 소유지분을 분산시키면 저절로 개혁이 되고 좋은 신문이 될 것이냐? 저는 부정적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신문·잡지의 소유나 경영을 내수시장의 차원에서만 볼 수 없는 국제경쟁시대죠. 예를 들면 미국의 大출판사가 국내시장에 진출하여 한글판 리더스다이제스트·뉴스위크를 발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라이선스 출판물로 로열티가 나가는 판인데, 좁은 시각으로 자꾸 쪼개기만 하면 국내 언론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겁니다』

―대주주의 지분과 발행부수를 깎으면 違憲 아닙니까.

『시장점유율을 제한하여 보고 싶은 신문 못 읽게 하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KBS나 MBC에 시청률 30%가 넘는 인기 드라마가 있다면 그것도 못 보게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특정신문의 발행부수를 깎아서 평준화시키겠다는 것은 자유경제 원칙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더욱이 오늘날 신문은 여론 형성을 독점하는 매체도 아닙니다. 우선, 막강한 방송도 있고, 인터넷도, 잡지도 있습니다. 신문의 종류도 굉장히 많지 않습니까.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런 다양함을 생각하지도 않고 자꾸 신문만 들여다 보고 「조중동, 너희들의 시장 점유율이 지금 70몇%다」라고 하는데, 그것도 과연 그런지 아닌지 정확한 데이터조차 없습니다』

―아직, ABC(신문부수 公示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지 않으니까요.

『신문개혁을 하려면 우선 ABC부터 실시해야 합니다. 광고주들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신문들의 발행부수를 알아야겠다」고 요구해 오지 않았습니까. 언론개혁을 하려면 우선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하거든요』

―거기에 대해선 신문사마다 입장이 조금씩 다르죠.

『여권의 개혁에 동조하는 신문사들은 ABC는 하지도 않으면서 시장 점유율 제한을 외치고 있어요. 특정신문의 소유지분을 분산시키고 시장 점유율을 깎아서 작은 신문들이 동등한 목소리를 내도록 인위적으로 만들겠다는데, 이러면 시장경제 아니지요』

―조중동의 시장 점유율을 줄인다고 해서 다른 신문의 부수가 늘어날 것으로 보십니까. 현재 신문을 구독하는 家口는 전체 家口의 절반을 밑도는 48% 정도입니다. 이 48% 중에서 조중동을 보는 가구는 38%, 나머지 10%를 다른 신문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발행부수가 적은 신문의 부진이 조중동 탓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령 조중동의 시장 점유율을 70%에서 50%로 끌어내리면 다른 신문의 판매부수가 그만큼 늘어나느냐,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신문 구독은 독자의 선택이며 품질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신문시장은 더욱 축소될 겁니다』


방송개혁이 언론개혁의 핵심

―방송은 신문보다 훨씬 비대하고, 문제점도 많지 않습니까

『언론개혁을 하려면 먼저 방송부터 개혁해야 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 방송에 대한 규제기구가 있습니다. 신문에 대해 규제기구가 있으면 그건 독재국가죠. 신문은 자기 색깔을 낼 수 있지만, 방송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 전파 자원은 有限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지상파 방송은 한 지역에서 열 개, 스무 개, 백 개, 이렇게 들어설 수 없습니다. 과학의 발달에 의해 위성방송, 디지털방송, 케이블방송이 생기긴 했지만, 아직도 채널은 제한적입니다. 그러니까 전파는 全국민의 재산이에요. 이런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방송사가 정부로부터 특정기간에 사용한다는 허가를 받아 사용하고 있을 따름이죠』

―그것이 바로 신문과 방송의 큰 차이점 아닙니까.

『신문 자유의 제1조가 뭐냐 하면 「발행의 자유」입니다. 신문 발행을 허가제로 한다는 것은 신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겁니다. 예컨대 日帝가 우리의 國權을 강탈하고 나서 약 10년간 한국 사람에게 신문 발행을 못 하게 하고 총독부의 기관지만 발행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유고 뭐고 없는 武斷統治를 했던 것 아닙니까』

―신문과는 달리 방송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허가제입니다.

『우리나라에 KBS, MBC, SBS, EBS, 이렇게 4개의 지상파 방송이 있습니다만, 국민의 자산인 전파를 위탁받아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은 공정성을 지켜야 합니다. 특정 정파나 이념집단의 목소리만 대변해선 안 되는 거죠』

―KBS와 MBC가 벌인 盧武鉉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보면 편파보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KBS와 MBC는 공영방송이죠. 특히 KBS의 경우, 시청료를 전기료에 부가시켜 징수합니다. 현대생활에서 전기 안 쓸 수 없죠. 斷電조치를 할 터이니까, 시청료 안 낼 수 없어요. 이렇게 KBS는 국민들로부터 세금에 準하는 돈을 받아 운영하는 겁니다. 그런 KBS가 특정 이데올로기나 특정 정파만 비호해선 안 되죠. 그런데 KBS가 지난 총선 때 공정했습니까. MBC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방송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윤리성을 높여 良識이 있는 방송이 되게 해야 합니다』

―자칭 개혁론자들은 조중동의 경우 광고수입이 전체수입의 70∼80%나 된다 면서 이런 걸 문제로 삼아야 한다는 거예요. 즉, 광고주의 입김이 경영주를 통해 편집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MBC와 SBS의 경우 완전히 광고료로 운영됩니다. 신문보다 광고의존도가 훨씬 높은 거죠. 그렇다면 방송이야말로 광고주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할 것 아닙니까. KBS 제2채널도 광고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방송의 경우 방송광고공사(KOBACO)가 있어 광고주의 압력을 차단하는 장치가 있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KOBACO가 방송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KOBACO가 어떤 기관입니까. 정부의 강한 영향력下에 있지 않습니까. 또한 방송 스스로도 시청률 때문에 광고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언론개혁을 어디서부터 해야 하는지 自明하지 않습니까. 언론개혁의 핵심은 방송개혁입니다』


정부 지원의 신문 공동배달제는 사회주의적 발상

―現 집권세력은 신문 공동배달제를 도입하고 이 제도의 실현을 위해 언론 창달기금을 만들거나 현행 문예진흥기금의 일부를 떼내어 지원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신문 공동배달제가 바람직한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A신문과 B신문이 어떤 특정지역에서 공동배달을 하면 경제적일 수도 있는 겁니다』

―자칭 개혁론자들이 말하는 신문공동배달제는 배달회사를 만들어 모든 신문을 거기서 배달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제가 40代 중반의 나이로 가족까지 데리고 영국에 유학할 때 거기서 중학교에 다니던 저의 아들이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아들이 이 집에는 A 신문, 저 집에는 B신문을 넣었고 주간지까지 배달했어요. 영국에서는 신문의 가정배달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아요. 대부분 街販을 사 봅니다. 신문사나 잡지사가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들끼리 알아서 공동배달을 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선 배달 신문을 받아보는 구독자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문제인 겁니다. A, B, C, D… 이렇게 10개 신문이 있다면 어떤 신문은 마감이 늦고, 또 어떤 신문은 수송이 늦을 경우 보급소의 배달이 그 몇 개 때문에 늦어질 것 아닙니까. 그러면 독자의 입장에선 좋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죠. 경쟁체제가 아니면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여러 신문들이 여건에 따라 이 지역에서는 A와 B가 공동배달하고, 저 지역에서는 A, B, C가 같이 하고, 또다른 지역에선 B, C끼리만 자율적으로 하면 됩니다. 이걸 전국에 걸쳐 일괄적으로 한다면 문제가 생기는 거죠.

『전국에 신문보급소가 수천 개 될 겁니다. 이것들을 인위적으로 통폐합할 때 영업권 등 재산상의 문제, 실업자 문제가 생기는데, 이걸 어떻게 할 겁니까. 요즘, 신문보급소는 신문배달뿐만 아니라 신문 안에 광고전단을 끼워넣는 영업 등으로 나름의 수익기반을 갖고 있습니다. 광고전단도 중요한 생활정보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 신문보급소를 제멋대로 통폐합하면 나중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신문 공동배달제가 성공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지난번에 기자협회보를 보니까 시범적으로 다섯 개 신문사가 공동배달제를 시작했다는 거예요. 각 社에서 1억원씩인가 출자해서 5억원짜리 공동배달 회사를 만들었는데, 그 관리운영비로 3억원을 벌써 써버리고, 2억원만 남았다는 겁니다. 2억원으론 움직일 수 없으니까 어느 신문사 사옥 지하에다 사무실을 차리고 공동배달에 관한 연구를 한다고 합디다. 내막은 잘 모르지만,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거죠』

―집권당 관계자는 신문 공동배달제를 전면 시행하려고 언론창달기금을 만들거나 현행 문예진흥기금의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親정권 신문을 공동배달제에 의해 많이 보도록 유도한다는 것은 불공정 행위일 뿐 아니라 독자의 선택권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경쟁은 점점 위축됩니다. 만일 정기간행물법을 그렇게 고친다면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사회주의 하자는 겁니다』

―신문 공동배달을 지원하기 위해 문예진흥기업을 轉用 지원하거나 별도의 기금을 조성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재원을 낭비하는 것 아닙니까.

『신문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신문만 중요한 겁니까? 예컨대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서는 우유배달도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신문보다 우유 공동배달을 국가가 지원하라, 낙농농가도 살리고…. 이런 주장도 나올 것 아닙니까』

―그런 제도가 시행될 경우 외국언론도 똑같은 특혜를 요구할 터인데, 그때는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지금은 공정경쟁을 중시하는 WTO 체제니까요.

『그런 부작용도 당연히 예상해야 하는 겁니다』


비판을 받아야 할 방송이 되레 신문을 매도

―요즘 방송이 신문에 대해 비판이 아니라 매도하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신문에 대해 왜 이런 것은 왜 보도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느냐는 비난까지 해요. 이것은 신문은 그 성향에 따라 뉴스 가치를 달리한다는 점을 무시하는 겁니다. 공적인 채널을 사용하는 방송이 신문에 대해 이런 걸 보도했느니 안 했느니 시비를 걸어서는 안 됩니다. 몇 달 전 KBS의 PD들이 조선일보를 안 보겠다는 결의를 했다던데, 우리는 아무리 KBS가 싫어도 시청료를 내야 합니다.

오늘날 TV 안 보고 살기도 어려워요. 왜냐하면 家長이 옛날처럼 「나는 TV 안 보니까 절대 켜지 말라」고 할 수 없잖아요. 아이나 아내가 본다는데 말릴 수 없죠. 신문에 대해서처럼 구독 거절하고 딱 끊어 버리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겁니다. 따라서 방송은 공익성과 윤리성을 갖추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하며 국민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공무원도 신문이 비판했다고 해서 보복 차원에서 세무조사 같은 것을 해선 안 되죠.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개혁하자는 사람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언론에 대한 통제라면 朴正熙·全斗煥 군사정권 때가 지금보다 더 심하지 않았느냐고 말합니다. 군사정권 시대가 더 심했으니까 지금 우리가 민주화로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되돌아가려 해요. 「국민의 정부」라던 金大中 정부 때 「언론비밀문건」이라는 것들이 잇따라 폭로되었습니다. 그 시나리오를 보면 끔찍합니다.

방송과 親與 매체를 통해 족벌언론의 社主를 혐오하는 여론을 조성하고, 그런 기회에 社主를 구속하며, 세무조사를 할 적에는 여러 권력기관에 분점되어 있는 권한과 기능을 통합 조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비밀리에 추진하여 조중동을 平定한다는 따위였습니다. 부분적으로 그 시나리오대로 된 게 많았잖아요. 나중에 한겨레신문 기자가 그 내막을 속속들이 밝힌 책을 냈죠. 그때 권력에 영합하여 일선에서 세무조사를 지휘했던 국세청장은 뭐가 켕겨서인지 멀리 외국으로 도망쳤습니다. 세무조사를 할 때 방송 등 親정부 매체들이 얼마나 신문들을 매도했습니까』


조중동의 매출액 합쳐도 KBS 하나보다 작아

―방송이 엄청나게 비대해졌고 영향력도 대단하죠.

『지금 두세 개 신문들이 각각 200만 부 나간다 어쩐다 하지만, 방송의 영향력에 비하면 별것 아니에요. 예컨대 조중동 셋의 매출을 합쳐도 KBS 하나보다 못합니다. 그런 방송이 신문 비판 프로그램을 하나 제작하면서 무려 30명이 넘는 취재팀을 투입시킨답니다. 그 인력은 신문 문화부의 전체 인원을 웃도는 겁니다』

―우리나라 방송은 전통적으로 정권에 영합해 왔는데, 최근에는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정권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방송이 언제 한번 야당 쪽에 서본 적이 있습니까. 언제나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前非를 추궁당할까봐 그런지 새 정권에 더욱 충성합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기득권을 능숙하게 지킵니다. 그야말로 自社 이기주의 표본이었습니다. 이런 방송이 비판 신문에 대들 자격은 없는 것입니다』

―최근 TV 방송의 특집을 보면 親北反美的 성향이 뚜렷합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요즘 일부 기자들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편향된 자기 이념에 바탕한 기사를 보도하고 있습니다. 방송이 좌파에 점령당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공영방송이 한편으로는 퇴폐적 사회풍조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연예인의 차림새는 그렇다 치고, 여성 앵커나 아나운서들의 의상이 너무 화려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세계 어느 나라 공영 TV 방송이 그렇게 호화롭습니까. 국민들에게 위화감·열등감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NHK나 BBC 등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여성 앵커나 메인 아나운서의 차림새가 지나치게 화려합니다. 시청자에 대한 예의로서 단정하게는 입어야죠. 그러나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盛裝은 문젭니다. 그리고 젊은 미인만 앵커로 나오는데, 연륜이 쌓인 듬직한 여성 앵커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대의 旣得權者

―現 정부가 비판 신문에 너무 적대적이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정부가 비판받는다고 무너질 정도는 아닙니다. 예전과는 달라요. 북한에게 퍼주기만 하고 對北협상에서 양보만 해도 체제가 무너지지 않아요. 그런 자신감 때문인지 盧武鉉 대통령이 공산당을 합법화하는 시대가 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정부가 그런 정도의 힘과 안정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도 비판적 신문에 적대적인 것은 언론의 비판기능을 이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盧武鉉 대통령은 「신문은 강자이고, 나는 약자이다」라고 말했지 않습니까.

『語不成說이에요. 예를 들면 대통령의 친형 盧健平씨에게 투기와 수뢰 의혹이 있다고 해서 기자가 취재에 나섰지만, 건평씨가 취재에 불응하니까 등기부등본 같은 것 몇 개 떼어 보는 정도에서 끝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대통령은 신문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면 수사할 수 있고, 비밀리에 사찰도 하고, 세무조사도 할 수 있잖아요. 신문의 힘이 있다면 그것은 독자의 지지를 받을 때만 그런 것이고, 수사권이나 기소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통령은 비판 언론을 존중하지는 않더라도 그냥 놔두고 제 갈길을 뚜벅뚜벅 가면 되는 겁니다. 저는 現 정권이 비판 신문을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시각이 원초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은 최고의 旣得權者이에요』

―지금, 우리나라 언론을 성향별로 구분하면 親정부적 언론과 비판적 언론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 親정부 매체수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홍보하는 기관으로는 국정홍보처 하나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비판 언론이라면 두세 개 신문 정도입니다. 소수의 비판 언론은 동업 언론들로부터도 몰매를 맞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것이 한국 언론의 위기입니다』

―얼마 전 서울 용산 어딘가의 주상복합아파트 분양 때의 일입니다. 청약금 3000만원을 넣어서 당첨되기만 하면 전매차익이 1억5000만원까지 된다는 소문에 많은 사람들이 청약은행 앞에 장사진을 치면서 밤을 새우더군요. 경쟁률이 수백 대 1이었어요. 그런 현상에 대한 방송 앵커들의 코멘트를 들으니 기가 막힙디다.

「세상에 돈도 많군요」 라고 마구 빈정거리는 겁니다. 그런 말을 내뱉는 앵커를 보니 그녀 자신은 짙은 화장에 명품 의상으로 잔뜩 멋을 부렸더군요. 청약금 3000만원을 못 가진 사람, 우리 사회에 물론 많아요. 못 가진 사람들은 화가 날 겁니다. 그러나 닭장집에 살거나 깡통을 차야만 꼭 서민입니까. 그날 은행 앞에 줄을 선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서민입니다. 퇴직금 얼마 받고 회사에서 나왔는데, 낮은 금리 때문에 생활이 안 되니까 그러는 분들도 많습니다.

『방송이 우리 사회를 그렇게 편을 갈라선 안 되죠. 정부가 「1회에 한 해 전매 가능」이라는 발표까지 하는 바람에 마치 로또복권을 사는 심정으로 몰려간 것 아닙니까. 은행 앞에 줄을 선 분들을 감히 비난할 수 있는 자, 과연 누구입니까. 진짜 부자는 밤 새우며 줄을 서지도 않습니다』


어느덧 권력화하여 오만해진 방송

―일부 방송기자나 앵커가 마이크만 잡으면 시청자에게 설교를 하려 드는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방송이 어린이날 같은 때 계도성 특집을 방영하는 것은 좋은데, 어린이를 내세워 「어른들은 질서도 안 지켜요」, 「어른들은 담배 꽁초도 길거리에 마구 내버려요」라는 식으로 비난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기성세대를 불신하도록 만드는 거니까요』

―KBS 사원의 평균임금이 연간 8000만원이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KBS 측은 일단 부인을 했지만, 자료로 뒷받침되는 해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KBS의 임금이 적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언론內 신문과 방송을 비교할 때 방송 쪽의 급료가 월등히 높습니다. 그렇다면 방송사야말로 기득권층이죠.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이 기득권층이 아니고, 거꾸로 조중동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기득권층 또는 守舊라고 해요. 방송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더욱 정권에 영합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어느덧 그 스스로가 권력화해서 無所不爲로 오만해진 겁니다』

―많은 일간지들이 현재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의 경영상태와 논조 사이엔 어떤 相關關係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문은 경영이 안정되어야 외부의 영향이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할 수 있습니다. 현재 신문사의 경영상태가 매우 어렵습니다. 방송과 뉴미디어 때문에 신문 보는 시간은 자꾸 줄어들기 때문이죠. 신문의 종류도 많습니다. 게다가 무료로 배급되는 社報, 전문지, 지하철신문 같은 것이 엄청나게 늘어나 일간지들의 입지가 좁아진 겁니다. 특히 지방 신문들은 대부분 적자입니다. 정부가 지방신문발전법을 만들어 국회에서 통과되고 그 시행령을 만드는 단계입니다. 많은 중앙지들도 은행빚에 허덕이고 있어요. 어떻든 정부의 지원을 받는 신문은 정부비판의 논조가 약해지게 마련입니다』


朝鮮·東亞일보는 정부 없던 시절의 정부 역할

―1920년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정부가 없었던 시절에 정부의 역할을 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문자보급운동, 이순신 장군 유적 보존운동, 농촌계몽운동, 생활개선 운동을 벌였습니다. 특히 1929년부터 1936년에 걸쳐 전개했던 한글보급운동은 우리 언론사상 양대 캠페인의 하나였습니다』

조선일보는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는 표어를 내걸고 1929년 7월14일부터 전국 규모의 「귀향 남녀 학생 문자보급운동」을 시작했다. 조선일보가 1930년 발행한 문자보급 교재 「한글원본」은 현재 3종이 남아 있다. 조선일보는 1934년의 경우 「문자보급교재」 100만 부를 인쇄하여 최대 규모의 문맹퇴치 운동을 전개했다.

동아일보는 1928년 4월1일을 기해 「글 장님 없애기 운동」을 벌였다. 이에 앞서 3월17일자 동아일보 사설에서 「과학적인 문자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9할이 문맹으로 있음은 일대 치욕」이라며 문명퇴치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930년대에 들어오면서 조선·동아의 논조가 약화되기 시작하죠.

『쇼와(昭和) 군벌이 대두하여 정치를 완전 장악함으로써 이른바 「다이쇼 데모클라시」 시대가 종말을 고합니다. 이후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킵니다. 戰時니까 계엄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시기를 親日강요기라고 부릅니다』

―1940년 조선·동아가 폐간당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습니까.

『日帝의 전쟁준비 때문이었습니다.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1939년부터 일본에서도 1縣1紙 정책을 추진되었습니다. 한반도에도 그렇게 됐어요. 일본 신문들도 통폐합하던 시절이니 조선·동아가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일제 패망 당시 우리말로 발행되던 일간지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광복 직후 左翼신문의 주도권 장악

―1945년 광복 직후 좌익 신문들이 득세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좌익언론인 조선인민보·해방일보·중앙신문이 주도권을 장악한 것은 그들이 노조를 장악하고 인쇄시설을 先占했기 때문었습니다. 美 군정 당국은 처음엔 좌익세력을 그냥 두면 되는 것으로 잘못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좌익·우익 간에 대립이 심해지고 좌익의 파업 선동 등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니까 규제하기 시작한 거죠』

―조선공산당 기관지인 「해방일보」 지하에서 위조지폐를 찍은 정판사 사건은 사실로 보십니까.

『저는 사실로 봅니다. 조선호텔 건너편 近澤빌딩은 원래 일제의 「조선은행권」을 찍던 곳이었어요. 조선공산당이 거기서 해방일보도 인쇄하고, 위조지폐도 찍었습니다』

―광복 후 조선·동아가 뒤늦게 복간되었는데, 공산주의에 반대한 두 신문의 당시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때는 조선·동아가 주도적 영향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여러 신문들 중에 하나였죠. 일제 때부터의 전통도 있고, 인맥도 있긴 했지만, 영향력 면에서 좌익지에게 밀렸어요』

―자유당 정권 시절의 反독재 투쟁기에서 한국 언론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이 야당지, 서울신문 등이 여당지, 조선일보가 야당 쪽에 좀 가까운 중립지였어요. 그때 발행부수 2위의 경향신문이 1위의 동아일보를 추격하던 형세였습니다』

―4·19 이후 민주당 정권의 언론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완전한 불간섭주의였습니다. 왜냐하면 4·19 학생혁명의 원동력은 신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학생조직이 지금처럼 전국에 걸쳐 종횡으로 연결되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문들이 치열하게 反독재 투쟁을 벌이고 부정선거를 규탄하니까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마무리를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당 정권은 신문의 자유를 100% 보장했어요.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안 되던 시절에 신문이 100개나 발행되고, 통신사가 200개에 달했으며 민족일보 등 좌익신문도 등장하여 百家爭鳴(백가쟁명)의 시대가 되었는데, 사이비 기자도 횡행하여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5·16 이후 군사정권의 언론정책은 어떠했습니까.

『5·16 후에 들어선 군사정부는 신문사와 통신사를 대대적으로 정비했습니다. 일간지는 자체 윤전기가 없으면 폐간, 통신사는 자체 무선시설과 外信과의 계약이 없으면 폐간이었습니다』

―사이비 기자뿐만 아니라 無보수 기자도 많았지요.

『1964년 기자협회가 생기면서 제일 큰 목표가 無보수 기자 일소, 생활급 보장 등이었습니다. 1960대 후반까지도 免稅點 이하의 월급을 받는 기자가 전체의 25%에 달했어요』

―언론에 대한 군사정부의 특혜는 무엇이었습니까.

『용지가 귀할 때인데, 정부가 언론사들로 하여금 외국에서 공동으로 수입하게 하고 거기에 면세조치를 해주었어요. 신문을 독립된 기업으로 육성해야 사이비 기자도 없어진다는 등의 명분을 걸었습니다. 그런 특혜를 받으면 신문이 권력에 약해지게 마련입니다. 이런 체제가 1987년까지 지속됩니다. 군사정부의 언론정책은 「당근과 채찍」이었어요』

―1980년도 언론인 해직사태와 언론사 통폐합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12·12 사태 후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저항하는 기자 등을 해직시키고 언론사를 통폐합했습니다. 물론 정당성이 없었던 겁니다』


盧武鉉 대통령의 언론관

―盧武鉉 대통령의 언론관을 어떻게 보십니까.

『역대 정권이 음성적·구조적인 방법으로 언론을 탄압했지만, 盧武鉉 대통령은 특정신문에 대해 「組暴 언론」이라고 공격했습니다. 우선, 그런 감성적 용어 사용은 대통령으로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盧대통령은 언론을 적군과 우군으로 양분하여 비판적 신문과는 인터뷰도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 없는 겁니다. 청와대란 私邸가 아닙니다. 누구는 들어오라 또 누구는 안 만나겠다고 할 수 없는 겁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면 보복적인 차원에서 감정을 표출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金大中 대통령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강행할 때 盧武鉉 장관은 「언론과의 전쟁 선포」, 「국유화」를 거론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대통령이 되었다 해서 바뀌겠습니까.

『원래 盧武鉉 대통령의 캐릭터가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구체화되어 이른바 「언론개혁」을 추진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워요』


親日派 청산작업의 노림수

―최근, 盧武鉉 정권이 「언론개혁」과 더불어 「친일파 청산」을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왜 그런다고 보십니까.

『최고 친일파는 나라가 망한 지 두 달 만에 日本 천황 메이지(明治)의 생일에 遙拜(요배)를 했던 純宗이며 소위 「李王家」 였습니다. 왕조시대의 나라 주인이 그렇게 되었는데, 지금 와서 누구를 탓할 겁니까. 일제 때 해외로 망명한 사람 제외하고 創氏改名 안 한 사람 몇이나 됩니까. 물론 親日派는 더 규명되어야겠지만, 그것은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 학자들의 몫입니다』

―친일파 청산 문제 거론의 노림수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크게는 보수층에 대한 견제이고, 좁게는 조선·동아를 겨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지고 보면 조선·동아는 1940년 강제 폐간을 당해 주식회사를 청산했고, 광복 후에 사실상 새로 생긴 겁니다. 거기에 비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바로 서울신문이 되었습니다. 紙齡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일제의 어용방송이던 경성방송도 청산된 바 없이 지금의 KBS가 되었습니다. 그 시설·재산·인력이 중단 없이 그대로 이어온 것입니다』

―1930년대 이후 조선·동아의 논조가 현저하게 약화된 것은 사실 아닙니까.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후세의 역사가들이 지어낸 말입니다. 현실정치에서 펜이 칼보다 강할 수 없습니다. 언론이 정치의 영향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거나 대등한 관계 운운하지만, 그렇게 되어야 바람직하다는 이상론이지, 권위주의·독재주의 정권 밑에서 언론은 정치의 하부구조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오늘날도 親정부 매체가 큰소리 치고, 비판 언론이 고통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盧대통령은 남의 가슴에 못박지 말아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에서는 나치에 부역한 언론인들을 가혹하게 처벌하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 점이 친일파 청산문제를 거론하는 측에서 傳家의 寶刀로 휘두르는 논리입니다.

『프랑스가 독일軍에게 3년 동안 점령당한 것과 우리나라처럼 王이 항복하여 35년간 식민지가 된 것은 상황이 다릅니다. 1930년대라면 20여 년 식민통치를 받아온 시점입니다. 한일합방 때 10代 소년이면 30代의 사회 중견층이 되었는데, 그동안 식민교육을 받았으니 민족의식이 흐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1930년대 넘어오면서 일본에서 군벌이 대두하여 일본內에서도 언론이 극심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런 엄혹한 환경 아래 식민지에서 신문을 만들었어요. 抗日 논조의 약화가 잘한 게 아니라는 점을 백번 전제하고 하는 말이지만, 해외로 망명을 떠나지 않고 신문을 발행하는 한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盧武鉉 대통령은 說得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언론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습니까. 그의 話法을 보면 대통령답지 않게 卑語를 남용하고 특정 언론사를 직설적으로 공격하는가 하면 특정인의 인격을 공공연히 모독하여 前 대우건설 南사장의 경우 자살로까지 몰아갔는데, 그래도 괜찮은 겁니까.

『그것은 盧대통령이 자신이 약자여서 핍박을 받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핍박을 받는다는 말입니까. 방송은 항상 友軍이고, 親與 신문이 압도적으로 많지 않습니까.

조선·동아 정도의 비판 신문에 발끈하는 것은 說得 커뮤니케이션과는 인연이 없는 모습입니다. 대통령은 남의 가슴에 못박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鄭선생께서는 방송·신문·잡지의 현업을 두루 섭렵하고 학계로 진출하여 언론사 연구를 평생과업으로 삼으셨는데, 요즘 기자들에 대한 충고의 말씀을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6년 동안(1988∼1994) 언론중재위원을 하면서 기자와 취재대상의 중간에 서 보니까 활자와 매체의 무서움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記事에 의해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은 파탄에 이를 수 있는 겁니다. 특히, 기자가 권력에 영합하거나 이데올로기에 편향되어 敵과 동지를 구분하면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는 것입니다. 언론인은 훗날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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