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기사

日本 역사 교과서 사건과 한국의 대응

즉흥적 대처로 청소년 교류에까지 상처를 입혔다

글 정순태 기자  2003-12-13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韓·日 학생교류의 80% 취소 또는 연기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문제가 韓·日 양국 간의 뜨거운 현안으로 떠오른 금년 하반기 들어 訪韓(방한) 일본인의 증가세가 둔화되는 조짐을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여름방학을 이용한 양국 초·중·고생의 학교방문, 수학여행, 스포츠경기 등 학교 교류 관련 사업의 80%가 취소, 연기되었다.

출입국관리소에 따르면 금년 상반기에 訪韓한 일본인 수는 123만1298명이었다. 이는 전년 상반기에 비해 5.4% 증가한 숫자이다. 그러나 1998년 이후 3년 간 訪韓 일본인의 숫자가 내리 10% 이상의 급증세를 보인 데 비해서는 半減(반감)된 증가율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역사교과서 再수정 요구를 거부하여 양국 관계가 더욱 악화된 가운데 訪韓 예정 일본인의 예약 취소가 잇따랐던 지난 7월 이후의 통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금년 하반기 동향은 8월 한 달을 더 넘겨 보아야 알 수 있겠지만, 訪韓 일본인의 숫자가 전년 하반기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8월은 韓·日 교류에 있어 하나의 고비다.

8월15일은 일본 중학교의 역사교과서 채택 결과가 모두 공개되는 날이다. 이렇게 예민한 시기인 8월13일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기습적으로 강행함으로써 이에 따른 후유증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 국민의 70%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지지하고 있었다. 역사교과서 문제를 둘러싼 韓·日 양국의 갈등은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새역모」 교과서는 慘敗, 嫌韓 감정도 깊어져


국제적 분쟁을 불러온 새 역사교과서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로 약칭)의 교과서에 대한 일본의 세론은 엇갈려 있다. 주요 언론의 시각도 그렇다. 새역모의 교과서에 대해 아사히(朝日)신문과 마이니치(每日)신문 등은 비판적이고, 산케이(産經)신문 등은 매우 우호적이다.

새역모 교과서가 얼마나 채택되느냐 하는 것도 韓·日 양국의 갈등이 수습과 증폭 중 어느 쪽으로 가닥을 잡느냐를 가늠하는 요소로 손꼽히고 있다. 일본 언론의 집계에 따르면 8월9일 현재 일본 전국 543개 공립 중학교 교과서 채택지구 가운데 76%가 교과서 채택을 결정했으나 새역모 교과서를 채택한 곳은 아직 한 곳도 없다. 일부 사립중학교, 도쿄(東京)도와 에히메(愛媛)현의 公立 養護학교(장애인학교)에서만 채택되었다.

공립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는 그 학교를 설치한 自治體의 교육위가 결정하게 되어 지역의 공립중학교의 경우는 市·區·町·村의 교육위가, 養護학교 등은 都·道·府·縣 교육위가 채택권을 가진다.

「새역모」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은 당초 새역모가 목표한 10%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지난 6월10일 새역모가 일본 국민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 市販本(시판본)으로 발행한 「새 역사교과서」는 7월 말 현재 이미 5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새역모의 慘敗(참패)로 韓·日 간의 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갈 듯하다. 어떻든 이번 교과서 분쟁에 의해 한국인에게는 反日, 일본인에게는 嫌韓(혐한)이란 감정의 골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역사교과서 분쟁으로 初·中·高生의 교류가 타격을 받은 것은 韓·日 양국 모두에 불행한 일이었다. 미래 韓·日 양국의 주역들에게 서로를 이해시키는 청소년 교류가 정치 또는 외교분쟁의 도구로 희생당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교과서 분쟁을 둘러싼 우리 정부의 이번 대처는 비판을 모면하기 어렵다.

韓·日 간 학교 교류에 제동을 건 것은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로 약칭)였다. 7월13일 교육부는 韓·日 간의 교사 및 학생 교류사업에 대해 전면적인 再검토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 여파는 심각했다. 우리 관광업계에 따르면 학교 교장들이 상급기관의 의향을 살피거나 교내 전교조 교사 등의 적극적 반대에 부딪쳐 학생교류를 소신껏 추진하지 못한 사례도 많았다. 관광업계의 한 임원은 『교장들이 몸을 사린다』고 지적했다.


교육부의 교류 制動조치가 몰고온 여파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7월20일 현재 역사교과서 문제 때문에 韓·日 교류사업이 중지된 것은 125건. 그 중 학교 관계 사업이 97건으로 80%를 점했다. 내년 열리는 韓·日 공동주최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성행했던 축구의 민간교류도 중지 및 연기 사례가 적지 않았다.

日本의 교류사업 등이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초순부터. 한국측 학교와 단체로부터 중지를 요청해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 교육부가 교류사업 전면 再검토한다는 등의 대항조치를 내린 7월13일 이후 이런 움직임은 가속화되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한국측 학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한다. 「反日운동의 세론이 높아가고 있다」, 「우리 국민감정은 일본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이상 京都신문) 「위로부터 중단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행정기관으로부터 지도가 있었다」(이상 每日신문)

우리 국회도 강경했다. 7월18일, 국회 본회의는 일본의 역사교과서의 再수정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韓·日관계의 전면적인 再검토 등 강경한 대응을 정부에 요구하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결의는 「최근 일본 사회의 국수주의인 경향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정부는 韓·日관계 전반을 전면적으로 再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정부에 대해서는 일본의 대중문화 개방의 중단 및 高官 교류의 중단 조치뿐만 아니라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저지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도록 요구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7월9일 이후 18일 오전까지 사이에 韓·日 교류행사의 중지 및 연기 건수는 115건(일본 공동통신 집계)에 달했다.

7월20일,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금년 8월 일본 삿포로(札幌)에서 개최되는 삿포로컵 국제아이스하키경기대회에 한국대표의 파견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협회는 주니어 클라스의 이 대회에 13~15세의 중학생 선수를 파견할 예정이었다.

경남 昌原市(창원시)체육회도 7월20일 청소년 스포츠단 23명의 일본 기후(岐阜)현 오가키(大垣)市 방문을 무기연기했다.

가고시마(鹿兒島)현에서 7개 市 및 町의 교육위원회 등이 주최하는 小·中·高校의 교류사업도 중지 또는 연기되었다. 가고시마縣 미조베초(溝邊町)에서는 1992년부터 매년 교류를 계속, 금년에도 町內 3소학교, 5~6학년 24명이 8월18일부터 5일 간 부산 등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7월16일 한국측의 학교로부터 「보류해 달라」는 팩스가 왔다고 한다.

시마네(島根) 현립 요코다(橫田)고교는 7월17일 한국에의 수학여행을 중지했다. 1997년부터 한국에의 수학여행을 시작, 금년에도 1년생 165명이 서울 등을 관광하는 외에 浦港製鐵高(포항제철고)의 학생과 교류할 예정이었지만, 포철고로부터 교류 중지를 요청해와 여행 그 자체를 단념했다. 교토(京都)신문에 따르면 한국과 교류가 깊은 돗토리(鳥取)현에서는 돗토리市가 자매도시로 제휴하고 있는 淸州(청주)시가 중학생의 訪日을 중지함으로써 세키가네초(關金町)의 중고생의 訪韓도 연기되는 등 12건의 교류가 중단되었다.

후쿠오카(福岡)현에서는 소년야구 부산 원정 및 여고생의 홈스테이, 이벤트에의 초대 등 11건의 교류사업이 취소되거나 연기될 전망이다. 월드컵 개최지인 오이타(大分)현에서도 고교생의 축구교류 등 10건의 행사가 연기 또는 취소되었다.

부산 해운대신도시 소재 新都고교 1학년 宋모양은 자매관계의 일본 고교여고생과 여름방학을 이용한 상호 방문이 불발로 끝난 것에 대해 몹시 실망하고 있다. 7월 말에는 일본 여고생 5명이 宋양 등 한국 여고생 5명의 가정에서 먼저 2박3일 간 홈스테이를 한 데 이어 8월 초에는 宋양 등 5명이 일본학생 집에서 2박3일 간 홈스테이를 하기로 예정되었는데, 학교측에서 행사 자체를 취소했다. 宋양은 『일본 친구를 맞이하기 위해 일본어 회화를 배우고 (자신의) 공부방을 꾸미는 데 정성을 들여왔는데 억울하다』고 말했다,

역사교과서 파동 속에서도 교류를 추진한 지자체나 학교도 없지는 않다. 경남 梁山市(양산시)와 우호교류협정을 맺고 있는 아키다(秋田)현 혼조(本莊)시에서는 8월2일부터 梁山市 간부 15人을 초대하는 교류회를 예정대로 실시했다.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7월15일 梁山市로부터 온 팩스에는 「한국내의 세론이 부담이 될지도 모르지만, 예정대로 방문한다. 교과서 문제가 양국 관계악화의 근본이 되는 것은 유감」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韓·日합동수업연구회도 7월27일부터 가나가와(神奈川)현 미우라(三浦)시에서 授業例(수업례)의 보고회를 예정대로 개최했다. 이 연구회는 초등학교로부터 대학까지 韓·日 양국의 교원이 참여, 7년 전부터 韓·日 관계사를 공동으로 연구하는 등 「풀뿌리 교류」를 계속해온 단체다.


정부 차원에서 적극 나서지 않아


韓·日 간 민간교류는 거의 全부문에서 타격을 받았다. 예컨대 大田시는 한국과 정기항공노선을 가진 이시가와(石川)현과 1974년부터 매년 음악교류를 해왔는데, 금년 행사는 중지되었다.

교류 취소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번져가자 우리 정부 당국은 곤혹스러워 했다. 교육부 담당자는 『우리의 조치는 정부 간 교류사업의 일부를 상징적인 차원에서 중지한다는 것』이었다고 설명, 민간교류에 파급되고 있는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관광공사 일본팀 康重石(강중석) 부장은 『교류사업으로 방한할 예정이었던 일본 단체의 취소가 매일처럼 들어오고 있다』면서 『교과서 문제가 장기화하면 개인여행에의 영향도 피할 수 없다』고 털어 놓았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8월에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까지 걸려 있어 아직은 예측이 어렵다』고 말했다.

金大中 대통령까지 「진화」에 나섰다. 7월20일 金대통령은 청와대에서의 오찬석상에서 『감정적인 대응을 한다든지 불필요한 분야에서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에서도 왜곡교과서에 대해 바른 시각을 가진 많은 지식인과 시민들의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민간교류까지 중지되는 것에 걱정을 표명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관광업계에서는 정부의 대처 방안이 아직 미흡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관광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에 대한 불만이 많다.

『요즘 문화관광부는 金대통령이 조속 실시를 지시한 「週 5일제 근무제 실시」에 대한 검토작업에 매달리고 있어요. 지금이 週 5일 근무제를 실시하면 관광수요가 폭발한다는 등의 얘기나 떠들 때입니까? 문광부 장관이나 관광공사 사장이라면 일본의 정부기관이나 JATA(일본여행업협회) 또는 JNTO(일본관광공사) 등에 公翰(공한)을 보내 우리측의 방침을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정부 당국이나 유권기관의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합니다. 요즘 일본인들은 한국의 反日데모와 反日감정 같은 게 대단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 일본에선 제 돈 주고 굳이 한국에 가서 욕을 먹거나 위험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의식들이 번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아직 눈치를 보는 것인지, 우리의 책임 있는 기관의 움직임은 매우 소극적입니다』


뒤늦은 대책반 가동


금년 들어 訪韓 일본인의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는 데 반해 訪日 한국인의 수는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출입국관리국 통계에 따르면 금년 상반기에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56만5921명으로 작년 동기에 비해 12.2% 증가했다.

反日감정도 일부의 목소리만 높을 뿐 실상이 과장된 것 같다. 산케이(産經)신문 외신부 구보다 루리코 차장이 쓴 8월1일자 석간 칼럼 「교과서 문제에의 誤認(오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서울은 여름 바겐세일이 한창이다. (중략) 그런데 백화점 여기저기에 일본 브랜드가 흘러넘쳤다. 수년 전만 해도 생각할 수 없던 풍경이었다. 이것도 日·韓 관계 밀월의 때문인 것 같다. (중략) 교과서 문제로 한국 정부가 일본의 대중문화를 닫는다고 해도 시계바늘은 거꾸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서울 여성의 세일 파워가 있는 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역사교과서 분쟁은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1999년 10월 새역모 회장 니시오 간지(西尾幹二) 교수가 왜곡 교과서의 母本(모본)이 되는 「국민의 역사」를 발간하여 일본에서 밀리언 셀러가 되었고, 2000년 8월엔 일본 문부성에 검정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의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대책반(반장 김상권 교육부 차관)이 출범한 것은 금년 4월12일이었다. 여기서 일본의 역사 왜곡 방지를 위한 상설기구 설립 추진 문제가 처음으로 논의되었다.

또한 바로 이날부터 비로소 전문가 분석팀이 가동되어 8일 만인 4월20일 왜곡실태에 대한 검토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4월24일 국사편찬위의 2차 검토결과까지 종료되었다.

그러나 이런 졸속으로는 일본과의 역사논쟁이나 韓·日관계사의 절충에서 우리의 국가이익을 지키기 어려운 것은 물론 국민의 자존심도 방어할 수 없다. 논리적 대응보다 소리만 높은 대응으로 양국 간 민간교류, 특히 학생교류에까지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
Copyright ⓒ 정순태의 역사산책